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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중동순방, 평화가 아닌 전쟁을 만든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의 중동순방을 마쳤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평화외교’라는 이름을 붙인 이번 중동순방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겉으로 보기엔 지난 11월 말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의 합의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통한 중동평화 실현’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실내용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만 준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이라크 상황 악화로 업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기에 일정정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느정도 진전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개인 업적이야 세우든 말든 그 사람 몫이지만 업적 욕심 덕분에 중동에 조금이나마 상황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나쁠 게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 대통령이 아주 긴 일정으로 ‘중동을 위해 나섰다’는 이유만으로도 뭔가 ‘가능성’을 기대하는 건 사실 무리가 아니다. 그동안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미국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아니, 오히려 미국이 만들어온 것이기에 그 과실의 책임도 마땅히 미국이 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오가 간 이야기를 보건데, 부시 대통령은 전혀 딴 마음을 먹고 있음이 분명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와 대통령을 만나고 팔레스타인 수반도 만나면서 바쁘게 오갔다. 오고가기 위해 전용기와 전용헬리콥터와 방탄 리무진 20대와 보안요원 400명과 탐지견 15마리를 동원했다. 이스라엘도 전 경찰력의 1/3에 해당하는 1만 5천명의 병력을 그의 경호를 위해 동원했다. 마치 ‘평화의 전도사’를 보호하기 위해. 아마 다음의 말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는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하고도 믿음직스러운 동맹’이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란과 헤즈볼라 및 하마스의 광기(Madness)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아무튼 부시 대통령은 두 나라 정상에게 자기 뜻대로 평화협상을 해주기를 ‘간절히’ 애원했다. ‘고통스러운 양보’, ‘힘든 선택’ 따위의 말을 반복 운운하며 만일 평화협상을 해준다면 ‘엄청난 지원’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그동안 거부해왔던 ‘점령’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이스라엘에게 ‘1967년 점령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놀라운 립서비스도 했다(1월 10일). 팔레스타인에게는 검문소와 정령촌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이스라엘 치안을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센스도 발휘했다.
언듯 오락가락한 말들을 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마스를 비롯한 저항세력들의 단호한 제거에 대해서는 완전통일된 입장을 3자 모두 드러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평화’ 운운하는 순방 기간에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연일 계속되었다. 심지어 동예루살렘에 점령촌 건설이 새로 시작된 곳도 있다. 즉 실제 이들의 생각에는 팔레스타인 평화에는 관심 없고 ‘제발 제대로 통치 좀 하자’는 것으로 모아진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각 나라가 국내 이해관계로 긴밀히 얽혀있는 순회 회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수반은 하마스에게 빼앗긴 영향력을 되찾아와야 하고, 이스라엘 총리도 국내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주도권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중동 지배를 좀 더 확실히 다지면서 업적도 쌓는 1석 2조 이상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기 이해가 중동 지역에 전쟁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하마스를 제거하기 위해 부시는 팔레스타인 수반에게 보안군을 육성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마스에게는 무력저항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파타에게 하마스 진압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에게는 팔레스타인 양보를 대가로 더 많은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이스라엘은 아마 과거처럼, 협상은 협상대로 하되 이행은 하지 않는, 바로 그 방식을 추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시가 이후 방문한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주요 중동국가에게는 마치 중동평화에 대한 지원을 촉구할 듯이 말했지만, 정작 주문한 것은 이란 포위 계획이 핵심이었다. 고유가 문제 협의는 뒤전이었다. 부시 미 대통령은 13일에 “이란은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미국과 아랍 동맹국이 힘을 합쳐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란에 대처하는 공동대응을 중동 국가들에게 강하게 반복해서 피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00억달러짜리 ‘스마트폭탄(통합정밀직격탄(JDMA)) 900기’를 판매할 계획을 순방 순간 미의회에 통보했다. 이집트에게는 가자기구로 유입되는 무기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1억달러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순방 기간에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외교장관들이 이란 추가 제재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식량계획(WFP)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3분의 2에 이르는 약 32만명이 굶주림을 겪고 있고 상황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그들은 가자지구에는 하마스만 있다는 식으로 일관했으며 이스라엘은 17일에 가자지구를 전면봉쇄하고 공격을 계속할 방침을 재확정했다. 이란대통령은 ‘부시는 대결 메시지 전파하는 중’이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총리는 14일에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핵공격을 포함한 군사공격도 불사할 것임을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17일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지대지 '예리코 Ⅲ'를 위협용으로 실험발사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우연적으로 일어났을까? 근데, 왜 하필 부시의 중동평화순방에 맞춰서 더 활발히 일어난 것일까? 이 의문은 중동순방 직전에 백악관이 밝힌 메시지에 드러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순방은 희망의 이데올로기를 선사하는 것.” 즉 자신의 희망대로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본다면, 이란을 포위하는 중동국가 동맹을 형성하자! 이를 위해 미국은 무기를 대줄 용의(혹은 팔아먹을 용의)가 있으며, 그래서 짜증나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란에 대처하기 위해 잠시 꺼져주시길 바란다! 혹은 이스라엘도 이제 팔레스타인보다 이란이 문제니 이란으로 집중해가자! 팔레스타인은 적당한 수준에서 떼어놓고 통치하자! 너무 억지스러운가? 그러나 그들은 확실히 전쟁을 원하고 있다. 쉽게 전쟁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을 뿐.
1월 20일
평화바닥 염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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