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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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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3
평화, 여성 그리고 안보
‘지구는 내가 지킨다’의 페미니즘적 재정의(reformulation)


황 영 주(신라대 국제관계학과 강사)



“지구는 내가 지킨다” 내가 본 어떤 신문 광고 : 글의 시작

  내가 한 조간 신문에서 이 광고를 보는 순간 무척 ‘불편’하였지만 (하지만 그 불편은 곧 극복이 되었는데), 곧 이 광고를 글의 은유로 사용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광고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명백하게, 아울러 모순되게 표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으로 이 광고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군사화된 사회코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광고는 자연화되고 일상화된 군사화를 극복할 수 있는 여성들의 쇄신(刷新)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광고가 갖는 자기 모순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속에 배태되어 있는 자기 전복을 함께 본다.

군사화된 사회

  한편으로 나는 이 일상의 광고 속에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고 있는 거대한 군사주의, 군사주의에 대한 숭배, 군사화된 안보, 나아가서는 아이들의 군사화된 사회화 등을 목격한다. 우선, 이 광고는 우리 문화가 가진 자연화되고 일상화된 군사화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광고 속의 아이가 전사의 흉내를 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는 군사화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군사화는 교묘한 과정이다. 우리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집중적인 군사화 과정과 우리가 ‘평화’라고 부르는 ‘전전(戰前)’또는 ‘전후(戰後)’ 또는 ‘전쟁 동안’에도 군사화는 이루어진다... 실제로 어떤 것이든 군사화될 수 있다. 장난감, 결혼, 과학적 연구, 대학의 커리큘럼, 모성, 이 모든 것들이 군사화 될 수 있다(Enloe 1993, 100 권인숙 2000, 149-150에서 재인용, 강조체는 필자에 의함).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의 군사화된 특징은 통계 혹은 실증적 자료로서 증명되기보다는 우리들이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역설적으로 표현된다. 한국사회의 군사화된 특징을 통해 오늘날의 군사화된 사회를 엿보자.
  권인숙씨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한 미국인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서 비무장지대 근처의 무장군인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군사적 긴장감이 절로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에게는 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들이 저렇게도 느껴질 수 있구나 싶어 놀란 적이 있었다”(권인숙 2000, 151). (인로의 제자인) 권인숙씨는 인로가 지적한 사회구성체계로서 군사화 과정에 기왕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한국인이기 때문에) “별 이상할 것도 없는” 군사주의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리 표현하여, 군사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권인숙씨 조차도 자신이 군사주의가 횡행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군사주의의 일상화․자연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휴전선, 군대, (비)무장지대와 같은 명시적인 군사 놀음만이 이 사회가 갖는 군사화된 관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군사주의는 모세혈관처럼 전체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인간은 언어를 매개로 사고한다. 고로,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군사문화적 언어는 곧 군사문화적 사고의 반영이다”(조선일보 2001년 5월 12일자 38면 “군사용어는 이제 그만”)라고 주장하는 이 여성은 우리 사회의 일상화된 군사성에 대하여 적절히 지적한다. ““교과서가 없어? 전쟁터에 나가는 놈이 총을 두고 와? 완전히 군기가 빠졌구먼, 방과 후 단체기합! 억울해? 불만이야? 너희들이 모두 한 배를 탄 운명이란 것 모르나?” 학교에 다닐 때 지겹게 듣던 말이다”(조선일보 2001 5/12, 38면 “군사용어는 이제 그만”). 그래서 이 여성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는 명시적인 전쟁터는 아니지만 묵시적인 전장이다. 묵시적인 전장은 보다 군사적이다. 한국 사회는 승리와 패배만이 존재하고, 흑과 백만이 존재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있다.
  군사주의에 의하여 구조화된 폭력은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것에서 더욱 강화된다. 갈퉁은 폭력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모독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기본적인 욕구는 생존, 복지, 정체성 및 자유로 구별되며 이러한 욕구를 모독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전한다(Galtung 1990, 이재봉 1996, 87-88에서 재인용). 정치적 자유, 인권, 사회 복지 등 거창한 요구(또는 욕구)와 같은 것의 보장이 아닌, 사소한, 이를테면, ‘보행권’ 같은 것에 대한 무관심은 바로 이 사회가 가지는 군사화된 관행과 별로 무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보다 복잡한 코드로 확대 재생산된다. 개인적인 인권은 안보를 위해서 유보될 수 있다. 개인주의는 전체의 단합을 깬다. 집단성과 승리를 위해서 모든 것이 용납되는 군사주의는 그래서 사소한 것이 늘 무시된다. 우리가 갖는 일상적인 관행과 실제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늘 개인이나 소수보다는 집단을 강조했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화해와 평화보다는 긴장과 갈등을 앞세워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광고에서까지 자연화되고 일상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들고 있다.

전복의 도구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이 광고에서 역설적인 (여성들의) 의무(또는 권리)를 발견하게 된다.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커다란 제목 하에 장난끼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우리가 옆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통아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나의 8살짜리 아이였다. 나에게 있어,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아이는 희망과 곧잘 연결된다 아무리 군사화된 담론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곧 이것이 다른 여성적인 의무(양육)와 직접적으로 관련됨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는 내가 지킨다라는 군사주의 담론과는 달리, 아이에 대한 사랑은 ‘전투’ 로봇 위로 초월하여 걸리고 있다.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아이에게 걸 수 있는 어머니의 희망을 부추긴다. 군사화된 담론이 횡행하는 곳이라도 어머니, 나아가서 여성은 “어린이 날 만큼은 어린이 세상으로 만들어”줄 의무를 지닌다. 어린이 세상은 우선 총과 전투헬멧이 필요 없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군사주의보다는 아이들의 순수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곳이어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이 광고가 갖는 (광고를 만든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 전복성에 대하여 주목한다. 광고 안에서 지구를 지키는 거대한 군사주의적 공격과 어린이 날 만큼은 어린이 세상으로 만들어줄 소박한 의무는 서로간에 갈등하고 정치적 담론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군사주의적 공격을 여성이 갖는 작은 의무로 방어하거나 혹은 극복할 수 있는 저항을 함께 발견한다. 아울러 여성이 지구를 지키는 행위는 전투적이고 갈등적인 방법이 아닌 여성(의 존재)이 가진 특질을 표현․보존하는 방법을 통해서 용인된다.

이 글의 목적과 구성

  이 글에서 나는 국제정치학의 논의에서 여성과 평화가 서로 연결된다는 접근 방법은 오히려 기존의 젠더화된 이분법 및 가부장제적 질서를 강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보고, 이를 일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는 적극적 평화, 즉 포괄적 안보 개념을 통해서 여성의 힘갖추기로 대체하고자 한다. 여성의 포괄적 안보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은 기존의 젠더 이분법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사회에서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요건이 된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체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한편으로 너무나 여성적인 하지만 너무나 본질적인은 여성과 관련된 우리사회에서 발견되는 젠더화된 사회적 구성을 살피면서 이를 통해 여성과 평화를 관련시키는 것이 기존의 젠더 이분법을 재생산하고 여성의 수동성을 더욱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의미의 수정에서는 새로운 안보개념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포괄적 안보에 대한 국제관계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한 다음, 그것이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수용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 부분은 여성과 평화가 수동적이며 젠더화된 구성에 의존하고 있다면, 여성과 (새로운) 안보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주체적인 힘 갖추기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너무나 여성적인 그러나 너무나 본질적일 수 있는
유교, 근대성 그리고 군사주의: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계보학

  다시 광고로 돌아가 보자. ‘지구’는 ‘내’가 ‘지킨다’라는 광고의 카피에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군사주의적 담론이 숨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카피에는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근원을 함께 포함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는 실지적인 것보다는 대의명분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차별성과 관련되는 국가이데올로기로서 유교주의가, “내가”는 서양의 주체적인 근대성의 형성에서 인식론적으로 현상학적 주체에서 소외된 여성의 타자화가, “지킨다”는 군사주의가 구성에 있어서 젠더화된 가부장제적 질서를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억압, 소외 및 이용과 관련된다.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의 근원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듯이 유교의 국가이데올로기 수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교가 가진 본래의 원리는 여성을 하위에 두거나, 여성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조선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수용이 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기제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여성의 부덕은 바로 국가의 흥망과 일치했기 때문에, 조선조의 지배계급은 여성에 대한 (도적적) 통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가 무너지는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은 종법 가장제 사회에 있어서는 막대한 영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종법 가장제의 국가 질서를 정당화해주는 유일한 원리가 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 윤리와 가족, 국가, 하늘의 관계를 수용이기 때문이다”(김혜숙 1993, 45). 달리 표현하여 여성과 여성의 부덕(婦德)은 유교적 이념 자체의 수호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했다. 아울러 조선 중․후기 가부장제의 강화는 다시 한번 국가의 안정성(stability)과 관련된다. 특히 정절 이데올로기의 강화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것과 관련된다. “조선시대에 있어 삼강오륜의 체계확립은...개인의 몸을 수양하는 도덕적인 원리의 체계나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확립여부에 국가의 존폐가 걸린 중대 문제였던 것이다”(김혜숙 1993, 48). 국가 이데올로기의 강화는 결국 여성에 대한 배제로 바뀌어 갔고 그것이 오늘날 여성에 대한 젠더화된 사회적 가치의 계보학을 제공한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비단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서양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뚜렷했으며, 그러한 차별은 역설적으로 나(주체/subject)를 강조하는 근대성(modernity)의 확장과 더불어 오히려 강화되었다. 근대의 프로젝트로서 인권, 자유, 이성, 평등의 가치는 남녀 구별없이 무차별적으로 수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가치들은 오로지 백인 남성에만 국한된 것이고 여성들은 주변에만 머물렀다고 지적된다. 페미니즘그룹에서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좋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반항적인 딸의 울음”으로 표현된다. 계몽사상(좋은 아버지)의 여러 가치가 자유, 평등, 자기실현 등의 이념을 강조하고 그것이 무차별적으로 근대인들에게 -물론 남녀구별 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반면,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학파 (반항적인 딸의 울음)는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반하여 서양의 전통에서 여성은 오직 주변에 머물렀다고 주장하게 된다(Benhabib 1991, 130). 이들은 근대(성)의 기초가 되는 이성, 지식 및 자아의 개념 등이 이미 성별차별의 개념에 기초하였다고 강조한다. 쿨(Coole)은 서양의 문화 근저에 존재하는 것은 (수동적인) 여성적 부분과 (우위의) 지배적인 것으로 나뉘어져 왔다고 지적하고, 이는 바로 남성성이 형이상학과 주인(mastery)으로 다루어진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주장한다(Coole 1993, 197). 이러한 점에서 근대 또는 근대성은 여성의 소외와 연결되며, 근대성의 표현에서 남성성(masculinity)은 객관성, 이성, 자유와 질서로 동일시되는 반면에, 여성성(femininity)은 주관성, 느낌, 필요성과 혼란으로 격하된다. 요컨대, 근대(성)의 사회구성 과정은 백인 남성들의 관심, 백인남성들과 동일시하는 실제일 뿐만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이분화 되어지는 성적분리의 과정이다(Peterson 1992, 197).
  군사주의는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통제를 수반한다. 군사주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젠더 위계질서와 관련되어 있으며, 군사화 과정은 이러한 관련성을 통해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군사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끊임없이 이분화시키고, 그 사회 속에서 살고있는 여성에게 젠더화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면서 다시 한번 이왕의 젠더위계질서를 강화시킨다(오미영 2001). 군사주의의 여성에 대한 젠더화된 역할을 강요는 여러 수준의 폭력에서, 보다 명확하게 표현된다(오미영․황영주 2001). 젠더화된 직접적 폭력에서 군사주의는 여성을 주로 성적 대상물로 파악하고 있다. 전쟁은 여성에 대한 직접적 폭력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이다. 전쟁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보호대상이 되지만,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의 폭력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희생자가 된다. 비단 전시에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직접적 강간(위안부, 민족말살적 강간)과 성폭력은 평시에도 군대를 유지하고 그것의 근간이 되는 남성성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다(매매춘, 레크레이션 강간). 아울러 여성에 대한 군사주의의 제도적 폭력은 여성을 군대조직 자체에 배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남성은 군대조직은 남성다움과 남성성을 강화시키는 조직으로 유지시키려 하며, 이에 따라 여성을 군대조직에 포함하는 것을 꺼려한다. 설사 여성의 존재를 군대에서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변적이거나 하위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남성이 군대에서 복무를 한다는 것은 완전한 시민권의 향유, 이를테면 남성 전사(the man-warrior) 모델을 통해 젠더화된 시민권 개념의 기초가 되며, 이때 여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데올로기적 폭력은 군사화를 통해 성립된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무의식적․자발적 동의 과정을 마련한다. 이 폭력은 위에서 살펴본 다른 수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것을 지속,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 폭력은 주로 국가안보 및 민족주의 담론을 통해서 기존 질서, 특히 가부장제적 군사 질서를 옹호하게 된다(오미영 2001).

여성과 평화를 관련시키는 방법의 젠더화된 구성

  (국제)정치(학)에서는 평화를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로 전제하고 있지만, 평화 자체에 대한 관점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평화는 ‘전쟁의 부재(the absence of war)’라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국제정치학 개설 과목 명칭이나 정치학 내의 전공 분류에서도 ‘안보 및 평화’ 만 ‘갈등과 평화’처럼 습관적으로 평화를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평화란 전쟁만 없으면 되는 것이며 전쟁의 반대가 곧 평화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러한 소극적 평화론(Negative Peace)은 결과적으로 분쟁이나 전쟁 갈등을 연구하면 평화는 저절로 연구되는 것이라는 상식을 낳는다(박주식 1996, 1).

  평화는 전쟁의 방지라는 국가노력의 산물로 수동적으로 비추어진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에 있어서 국제정치상의 평화 도출하는 방법은 군사/전략적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국제정치학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세력균형(the balance of power), 패권국가이론(the theory of hegemonic power) 및 성숙한 무정부(the mature anarchy) 등의 현실주의적 대안은 군사적 안정, 또는 최소한 전쟁의 회피로 평화가 유지된다는 주장의 요체가 된다. 전쟁의 부재라는 개념은 서구의 역사 전통으로 볼 때 평화를 소극적이며, 비활동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서 연유한다.
  일부 페미니스트 평화 연구가들은 여성과 평화는 상호간에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리어돈(Readon)같은 이는 “가치체계로서 페미니즘은 군사주의의 대칭물(antithesis)” (Readon 1984, Pettman 1996, 113에서 재인용)이라는 주장을 편다. 브록유톤(Brock-Utne)는 여성과 평화의 관련성은 세가지 전제, 즉 비폭력, (아동에 대한) 생명보호 및 전이정치(trans-political)적 행동에서 초래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브록유톤은 사회화 과정에서 여성은 주로 평화적인 가치를 위해, 남성은 주로 전쟁을 위해서 교육된다고 주장한다(Brock-Utne 1990, 32, Pettman 1996, 113에서 재인용). 이들 주장의 요체는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들 보다 평화로운 존재라는 주장, 또는 여성은 주로 양육을 경험하고, 공적인 영역활동 기회가 적기 때문에 평화와 특별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Steans 1998, 118). 이들은 또한 만약 여성들이 평화운동에서 조차 활동하지 못한다면 여성이 설 공적인 영역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죽음과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배제된다고 강조한다(Steans 1998, 120).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평화를 규정하는 전쟁/평화, 적극/소극, 활동/비활동적이라는 이원적 대립관계(the binary opposition)는 서구사회가 가진 근대성의 구성원리로 이해되어야 하고, 이는 또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관계되는 젠더의 구성방식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서구적 젠더의 이해는 문화적으로 결정되어진 이원적 구별에 기초한 것이다. 예컨대 공과 사, 객관과 주관, 자신과 타자, 이성과 감성, 자율성과 의존성 및 문화와 자연이 바로 이원적 구별의 예라 할 것이다”(황영주외 옮김 2001, 24). 이러한 분류에서 앞의 것은 대개 남성적인 특징과 관련되고, 뒤의 것은 여성성과 관련된다. “...이러한 구별의 위계적인 구성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존속시키는 고정되고, 변화되지 않는 특성을 만든다”(황영주외 옮김 2001, 24). 이러한 주장을 전쟁과 평화라는 문제와 관련시키면 전쟁은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분야가 되어 남성적 특질로, 반면 평화는 소극적이며, 비활동적인 것으로 여성적 특질로 구별된다. 이렇게 될 때 전쟁과 평화 이원적 대립은 결국 젠더의 구성방식과 동일해 진다. 그것은 다시 남성이 원하고 만들어 낸 세상으로 재구성된다(Tickner 1999, 46).
  여성과 평화를 등치시키거나 여성의 평화적 우위성을 주장할 때 생기는 문제점은 널리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여성과 평화를 서로 관련시키는 것은 여성의 무력을 갖지 못한 상태(the disarmed condition) 때문에 단지 여성들에게 수동적으로 부과된(imposed)것에 불과하다...” (Caroll 1987, 149-169, 황영주외 옮김 2001, 86에서 재인용).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 실버스터(Sylvester)는 보다 체계적으로 이러한 입장주의자(feminist standpoint epistemology)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만약 여성을 평화와 등치하면 첫째,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에서 타파하려는 능동적인 여성 또는, 일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고, 둘째, 여성들을 일원화되고 수동적인 타자(homogeneous and passive other)로만 인식하게 되고, 셋째, 어머니가 아니거나 양육자가 아닌 여성들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은 고려되지 못하게되어 오직 “성적 차이의 가부장제적 구성”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되는 문제점을 가진다고 지적한다(Sylvester 1993, 110). 그녀의 주장은 “대부분의 세계질서에 실려있는 남성위주의 젠더관계를 알지 못하고서는 세계질서에 대하여 변경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바랄 수 없다”(Sylvester 2000, 3)는 맥락이다. 볼딩(Boulding)의 경우는 평화운동 여성적 특질과 관련된다는 주장은 있지만, 그것이 남성학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평화운동 및 연구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다고 평화운동이 페미니즘적 전략과 결부되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한다(Boulding 1982, 34, Pettman 1996 113에서 재인용). 또한, 1980년대 후반이후 평화연구 경향이 주로 군비통제 및 분쟁관리(conflict management)로 집중되어 있고, 이러한 접근은 결국 권력관계, 특히 젠더관계(gender-relations)에 대한 관심이 포함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Northrup, 1994, Pettman 1996 114에서 재인용).
  이에 따라 평화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먼저 탈현실주의 평화론에서는

...평화를 단순히 전쟁의 부재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basic human needs)충족, 경제적 복지와 평등, 정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가치를 구현하고 보전되는 (것이) 진정한 발전으로 보는 적극적 평화론(Positive Peace)은...정의로운 국제사회질서를 평화의 필수 조건으로 본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적극적 평화의 실현을 가로막는 폭력, 특히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 존재하는 상황을 평화부재(peacelessness)라 규정한다(박주식 1996, 1).

  198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서는 평화를 “국내와 국제수준의 전쟁, 폭력과 교전 상태가 없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 정의를 향유하는 것”(황영주외 옮김 2001, 81)으로 정의했다 1989년 국제평화연구협회(International Peace Research Association)의 ‘여성, 군사주의 및 군축’ 연구 그룹은 이러한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수용, 안보라는 개념을 “환원론적인 군사주의적 안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생태학적 뼈대를 가진 평등, 지속가능성 및 정의에 대한 관심을 포함시키는 것”(Pettman 1996, 114)으로 변경했다. 이것은 물론 구조적 폭력의 제거와 적극적 평화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폭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닌, 생명을 위한 총제적인 접근이며, 변화를 위한 전략” (Steans 1998, 120)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여성의 개인적 시민적 안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국내외 안전보장 체계를 비군사화하는 것이며, 아울러 평화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강력하게 헌신하는 것이다”(Cornwell and Wells 1999, 413). 여성과 평화라는 문제를 기존의 ‘(소극적)평화’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으로 환치시키게 되면 여러 가지 이점들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으로 기존의 젠더구성 방법에서 여성과 평화로 등치되는 본질주의적 접근을 극복할 수 있고, 이는 여성의 기존 권력관계에 대한 변화의지로 표현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다 적극적인 부분에서 여성에 의한 적극적 평화의 모색은 남성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한 배반과 전복을 포함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힘 갖추기로 전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평화는 어떤 방법으로 모색이 되는가?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의미의 수정
포괄적 안보에 대한 논의

  전통적인 국제정치학자들의 안보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부분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편으로 안보의 주체와 대상은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점이다.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로서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실주의적 접근방법은 국가의 존망이 안보의 관건이 된다. 다른 행위자, 예컨대 개인은 결국 국가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국가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에서 개인의 안보는 결정된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국가의 존망은 현실적인 힘, 달리 표현하여 군사력에 의해서 확보되고 지탱된다. 따라서 군사력은 안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일부 비판이론(the critical theory)적 입장을 가진 학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군사/전략(military/strategic security) 안보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최소한 이러한 종류의 안보가 유일한 것이 아닌 함께 고려되어야 할 여러 안보 개념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달리 표현하여, 이들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의 안보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비군사적인 접근방법과 해결방법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잔(Buzan)과 같은 국제정치학자는 군사 안보를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군사안보가 다른 안보 즉, 정치, 경제, 사회 및 환경 위협과 압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한다(Buzan 1983, Constantinou 1995, 154에서 재인용). 토마스(Thomas)라는 학자는 국가 내에서 존재하는 경제 및 생존이라는 차원에서 안보를 살피고 있다. 제 3세계 국가의 경제력을 지탱하는 금융 및 무역의 신장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음식, 식수 및 건강에 대한 확보가 국민의 생존보장(안보)과 관련된다는 입장이다(Thomas 1987, Constantinou 1995, 154에서 재인용). 콘스탄티노우(Constantinou)는 전통적인 군사안전의 보장체로 여겨졌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하여 다루면서 NATO가 새롭게 떠맡아야 할 안전보장이 군사 안보에서 나아가 동구권 국가의 문화/종족 안보, 환경안보 그리고 여성안보(gender security)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Constantinou 1995, 154-157).
  때에 따라서는 또는 현실에서는 군사 안보가 오히려 다른 종류의 안보를 해치거나 심지어 불안정(insecurity)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에너지를 아끼기보다는 전쟁에서 효과성을, 자연을 보호하기보다는 (훈련과 실전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군대는, 군사안보가 환경안보와 양립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는 경우가 된다. 이러한 군사 안보와 다른 종류의 안보가 양립할 수 없을 잘 보여주는 예는 아시아 지역에서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미군의 존재에서 보다 명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콘웰과 웰스(Cornwell and Wells)는 아시아지역에서 미군은 다방면에서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Cornwell and Wells 1999). 한국에서 매향리의 경우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여러 사례를 비추어 보면 군사/전략 안보는 오히려 다른 일상적이며 포괄적 안보에 해를 끼치는 작용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러한 비군사적 또는 포괄적 안보에 “여성적 관심”을 가지고 보다 진전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티커너(Tickner)는 일부 국제관계학자들이 “...군사적 범위 못지 않게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 관한 세계적이며 다차원적인 안보를 그려내는 공유된 안보(common securit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41). 이러한 공유된 안보는 앞에서 지적된 소극적 평화개념을 대체하는 개념, 다시 말해서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수용하는 장이 될 것이다.

  어떤 평화 연구가는 물리적, 구조적 및 생태학적 폭력 제거라는 용어를 안보를 정의하고 있다. 폭력을 고려함에 있어 물리적 폭력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면 전쟁과 평화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평화는 단지 전쟁의 부재(the absence of war)가 아닌 좀 더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평화구축을 위한 필요조건에 대하여 고려해 볼 수 있게 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41, 강조체는 필자에 의함).

  티거너는 여기에서 공유된 안보 개념과 페미니즘이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에게서 다차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안보를 고려하는 것은 군사적인 쟁점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 안보는 남성적인 국제정치이론의 주제와 쟁점에서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었지만, 여성적인 가치와 쟁점을 무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유된 안보 또는 새로운/포괄적 안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달리 표현하여 전통적인 국제관계학에서 무시된 주제와 쟁점을 다시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제기된 여러 가치들은 우리 문화에서 여성성과 관련되어 정의된 특질
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 티커너의 지적이다.

지구를 “지키는” 여성들 : 페미니즘에서의 안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일부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앞에서 지적한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포괄적 안보 또는 전(全)지구적 안보라는 개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여성은 단순한 전쟁과 평화라는 이분법에서 수동적인 평화를 지켜내는 힘없는 사람이기보다는 포괄적 ‘안보’를 지켜내는 능동적이면서 힘을 갖춘 ‘여성전사’로 변환된다.

모성애적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여성 또는 여성 전사(women warrior)라는 분명한 구별은 점차로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상, 많은 여성들은 전사가 되는데 그것은 여성이 어머니이자 동시에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ettman 1996, 114).

  티커너의 󰡔여성과 국제정치(Gender in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책의 부제는 “페미니즘관점에서의 전(全)지구적 안보성취(Feminist Perspectives on Achieving Global Security)”이다. 특히, 그는 포괄적 안보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 및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와 관련시켜 국가(군사)․경제․생태의 대안적 안보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달리 표현하면, “...평화달성, 경제정의, 생태학적 지탱은 지배 종속의 사회적 관계를 극복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진정한 안보는 전쟁소멸과 불평등한 젠더를 포함하는 불공정한 사회관계의 제거를 함께 필요로 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166, 강조체는 필자에 의함). 스티인(Steans)의 경우도 안보에 페미니즘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은 이미 주어진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군사적 시각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또는 개인적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또는 실제로 위협이 되는 것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Steans 1998, 105). 그렇다면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에서 안보는 무엇이며, 어떻게 개념화될까?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군사적 안보와 어떻게 관련될까?

국가(군사)안보에 대한 대안적 개념

  종래의 현실주의적 군사적 안보에 대한 접근방법은 주로 국가가 갖는 내재적인 자율성과 독립성을 필요하다는 가설에 주로 근거한다. 따라서 이러한 접근 방법은 주로 국가간의 갈등과 분쟁을 전제로 한다. 첫째, 티커너는 오히려 다차원적인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여성 또는 나아가서 인간이 갖는 협력에 대한 보편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성과 관련된 특질임을 강조한다. “인류에게 상호의존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동체 건설이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국제행위의 또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황영주외 옮김 2001, 171) (협력의 가능성, 공동체의 건설)
  둘째, 기존의 국제정치학 이론은 주로 국내적 질서/국외적 무질서라는 국제관계에 대한 현실주의적 모델, 즉 (국가의) 외부와 내부, 무질서와 질서, 해외와 국내사이의 엄격한 경계구별이라는 가설에 기초한다. 이때 국외는 폭력이 만연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인 반면, 국내는 완벽한 질서와 안전이 보장되는 쪽으로 인식된다. 티커너는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경계구별은 부적당하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 국내적 질서/국외적 무질서라는 이분법은 최소한 여성에게는 타당한 것이 못되는데 왜냐하면 여성의 생활 자체는 국내적 질서라는 공간 안에서도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의 공공영역은 법의 적용을 받지만, 사적영역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정 폭력은 국가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며,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은 이러한 일에 말려들기 싫어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83). 이에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법이 미처 닿지 못하는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의 촉구와 함께 모든 분석의 수준(all levels of analysis)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억압의 상호관련성에 대하여 지적한다. 안보에 관한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폭력과 억압이 국제적, 국내적 또는 가정의 영역이든 상관없이, 상호관련되어 있다고 추정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85). (여성에 대한 폭력의 환기, 각 수준에서의 폭력의 관련성 폭로)

  셋째, 여성들의 시민적 가치는 주로 (군사주의에서)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라는 이분법에서 보호받는 자로만 인정받아 왔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영속화와 관련된다. 티커너는 국가를 위해서, 비굴하게 살기보다는 영광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전통적 시민권 개념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용기에 맞추어진 보다 건설적인 시민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황영주외 옮김 2001, 90). 직접적인 국가의 갈등에 직면하여 여성이 갖는 시민권과 애국심은 남성의 그것과 동일하게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군대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향상을 통한 시민-방어자(citizen-defender)의 개념, 공격성과 전쟁에 기초하는 전통적인 애국심이 아닌 타국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조국에 지지를 보내는 절제있는 애국심(moderate patriot), 정치적 충섬심이나 정체성의 문제를 희생에서 책임으로 이동하는 정치 등이 티커너가 제안하는 젠더화된 시민권에 대항하는 여성적 시민권의 내용이다(황영주외 옮김 2001, 90). (비 군사화된 시민권 개념).

경제안보에 대한 대안적 개념

  한편으로 티커너는 기존의 경제학이 갖는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에서 경제안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작한다. 기존의 경제학에서 “...개인과 국가의 합리성이란 바로 자기 이해를 극대화하는 행동양식을 의미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124).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이란 주로 공적생활의 경험과 관련되는 남성적 특질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여성들의 삶의 경험과 관련시켜 합리성을 ‘보살핌과 책임감의 윤리’까지 포함해야 할 것으로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티거너는 기존의 경제학이 주로 체제에 관심을 두는 가정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대안적인 경제안보는 체제보다는 개인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페미니즘적 관점은 분석의 기초단위로서 개인을 취하지만, 그 개인은 (기존의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합리적 경제인과는 구별되어 규정된다”(황영주외 옮김 2001, 125). 페미니즘에서 상정하는 개인은 기존의 경제활동으로 여겨지는 생산활동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활동(육아, 보살핌)을 포함하는 상호의존적인 개인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이러한 생산과 재생산 활동을 포함하기 위하여 생산이라는 공적영역에서 도구적으로 합리적인 경제인의 세계와 시장 경제 바깥에서 어머니로서, 보살핌 제공자로서, 일생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이 수행하는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들 사이의 인위적인 경계는 무너져야만 한다. 이러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통해 생산이라는 “합리성” 혹은 “효율성”의 세계와 재생산이라는 사적인 세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부여된 가치의 간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갖고 양육하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활동으로 여겨지고, 또한 재생산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여진다면, 이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품 생산의 효율성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황영주외 옮김 2001, 125-6, 강조체는 필자에 의함).

  실제로 여성들은 대부분 국제체제의 주변과 경제적 하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페미니즘적 관점은 여성에 대한 정의를 성취하는 것과 관련된 주제에 우선 순위를 둔다. 달리 표현하여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의의 성취, 안보의 확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할 것이다. 여성 노동가치를 폄하시키는 인위적인 성별분업을 개선하는 방향에서, 생산과 재생산과 연관된 지불과 미지불 노동이 남성과 여성에게 공평하게 분담될 때, 사회․경제 개발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할 때, 여성이 직접 관여하는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공하는 경제적 전략, 무엇보다도 상품과 부을 위한 생산보다는 생명의 생산에 연관된 모델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구축하는 것에서 경제에 대한 대안적 안보는 확보될 것으로 티커너는 주장한다(황영주외 옮김 2001, 126-129).

생태적 안보에 대한 대안적 개념

  티커너의 경우 오늘날의 생태적 위기를 권력과 별개의 문제로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자연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타 인류에 대한 백인 남성의 지배와 분명히 관련시키고 있다”(황영주외 옮김 2001, 160). 환경 위기는 인간들의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에 자연(자원)에 대한 전유(專有)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국가 간의 권력 불균형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버릴 때 현실화된다. “생태학은 위계질서가 소멸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따라서 모든 수준에서의 지배와 싸워나갈 수 있는 입장에 있다”(황영주외 옮김, 2001, 161). 그리고 이러한 위계질서의 소멸은 계급주의를 포함해서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의 극복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남성/여성, 문명/자연이라는 입장은 여성을 남성중심적 문화와 우위라는 시각에서 여성을 가치는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오히려 이러한 문명/자연라는 이분법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에코페미니즘은

  근대국가의 탄생 및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근대과학이 갖는 착취적 태도의 역사적 기초와, 공적 생활에서 여성성을 부적절한 것으로 만드는 젠더 역할의 분리간에 분명한 상호관련성을 드러내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7세기 초기 유럽에서 젠더 역할의 이분화(the dichotomization of gender)는 자연에 대한 근대적(착취적) 태도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국제정치와 경제학의 이론 구성에 중요한 토대로 이바지하였다(황영주외 옮김 2001, 173).

  따라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여성들은 환경파괴의 희생자로써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하여 정책결정 수준, 즉 국가와 국제수준에서 평등하게 참여해야하는 행위자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환경운동의 참여는 일상적인 가족들의 필요를 제공하고 생산하는 자로서의 경험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남성의 참여와 동일한 방법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장기적으로 여성들은 현재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적 태도 또는 근대성의 기계론적 관점에서 탈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관점이 비단 인간과 자연간의 위계적 관계뿐만 아니라, 젠더관계를 포함하는 지배와 종속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점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황영주외 옮김 2001, 162-164).
  티커너의 논의가 주로 기존의 국제정치의 중요한 쟁점, 예컨대 군사, 경제 및 환경의 중심 개념의 대안제시를 통해서 포괄적 안보논의를 진행시킨 반면, 스티인의 경우는 이 안보 논의를 두 가지 쟁점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한편으로 인권접근방법(human-rights approach)은 포괄적이며 전(全)지구적 안보라는 개념이 인권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가정을 갖는다. 이때 인권은 시민․정치적 권리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 이를테면 경제적․사회적 정의를 포함하고 있다(Steans 1998, 124-6). 다른 한편으로 인간중심접근방법(people-centred approach)은 국가중심적 또는 군사중심적인 안보개념을 배격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에서 ‘인간’안보를 추구하는 문제에 관련된다. 인종, 계급, 성별 및 정치적 입장에서 야기된 다양하면서 중첩된 불안정은 다양한 구조적 폭력의 극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Steans 1998, 126-128). 요컨대, 스티인의 주장은 포괄적․전지구적 안보는 주로 공동의 인간(the common humanity)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고 하겠다.

여성과 포괄적 안보 : 글의 끝

  나는 한 신문광고의 해체를 통해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평화와 안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의미는 겉으로 보기에 군사적 일상화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이해되지만, 이를 해체시켜 본다면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페미니즘의 적극적 평화 또는 포괄적 안보의 대안적인 혹은 전복적인 전략으로의 역전과 관련된다고 지적하였다.
  여성은 비무장의 존재이기에, 평화와 관련된 존재이기에 여성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일면 타당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흔히 많은 페미니즘 학자들의 비판에서 지적되듯이 기존의 남녀 이분법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수동적인 여성성(passive femininity)을 젠더의 이분화과정 속에서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앞에서 살펴본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의 적극적 평화 혹은 포괄적 안보 개념은 여성(성)을 본질화 시키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극복에 대한 전복적 대안을 마련하는데 좋은 기틀이 된다. 무엇보다도 반군사주의 입장(the anti-militaristic stance)을 포함하는 군사안보에 대한 대안적 논의는 전쟁/평화라는 이분법을 극복해주는 긍정적인 면을 포함하면서, 오히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군사적으로 ‘문제’ 있는 세계로부터 지구 자체(포괄적 안보)를 지키는데 제안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실제적 측면(the practical aspect)에서 포괄적 안보 개념은 아울러 이론적 측면(the theoretical aspect)에서의 가능성과 함께 한다.
  현재의 국제정치(학)의 주요 개념이 국가, 인종, 계급 및 성별간의 지배와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면서도 동시에 (국제정치학의) 학문적 지식과 개념 형성 자체가 바로 힘이 있는 자들(강대국 또는 남성)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고 자연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면,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에서 안보에 대한 대안적 개념은 이룰 극복하는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표현하여, 기존학문의 페미니즘적 재정의(reformulation)의 장이 새로운 안보라는 개념을 통해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적 관점을 기존의 안보 논의에 끼워넣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관점으로 기존의 안보 논의를 재구성(reconstruct)하는 것이다 (Steans 1998, 129).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에 관한 것도, 동시에 남성적 주류에 여성을 부가시키는 것도 아닌, 오히려 존재(being)와 아는 지식(knowing)의 관계를 변환시키는 과정이라고 지적하는 피터슨의 주장은 이러한 점에서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Peterson 1992, 205).
  여성이 주로 근대성의 정치원리에서 타자와 국외자로서 대우받았고, 현재의 국제정치와 안보에 대한 개념이 주로 타자에 대한 배외(排外) 또는 국외자에 대한 거리두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면, 여성은 이러한 타자의 윤리와 국외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내가 지킨다는 광고가 파괴적인 군사주의 구호에서 건설적인 포괄적인 안보로 전환되는 것처럼, 여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전복적인 (또는 역설적인) 아름다운 영혼(subversive beautiful soul)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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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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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리즘과 젠더]8월2일, 8월 16일 발제자 정했으니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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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주의와 여성] 발제자 올려주세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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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스터디] 4차 및 5차 공무모임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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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스터디] 다음(5/17) 공부모임 제안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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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국가폭력과 여성체험 -제주 4.3을 중심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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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5 4712 795
8
  [평화스터디] 공부모임 일정입니다.

평화스터디
2005/04/18 5328 920
7
  4/19 에 전쟁과여성 공부모임하기로 한거요.. [3]

꼬미
2005/04/16 4950 910
6
  [평화스터디] 바깥으로 나가서 배우기 (11월 20일) [1]

평화스터디
2004/11/08 5465 1035
5
  [평화스터디] 2차 공부모임 일정 [1]

공부모임
2004/11/08 5911 1060
4
  평화사상 공부모임 다음 세미나와 2번째 텍스트

공부모임
2004/08/11 6162 1225
3
  >>> 평화사상 공부모임 일정잡아요.+ [1]

염창근
2004/08/03 5348 994
2
  [평화사상공부모임] 첫 모임을 알립니다.

사무국
2004/07/12 4989 910
1
  평화사상 공부모임 일정잡았습니다.

들풀
2004/07/20 584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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