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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2
인권학술회의2001 발표논문
군사주의와 여성:
징병제도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권인숙-

머릿글

1997년의 이회창 당시 집권당 대통령 후보 아들의 징집 관계 파문은 병역비리에 대해 한국 사회의 축적된 분노를 보여주었다. 돈 있고 빽 있는 이들은 다 빠지고 힘없는 이들만 군대 에 가는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한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깊게 자리잡혀 있는 가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편 1999년 12월 23일의 대법원의 군필 남성의 가산점 제도 에 대한 위헌 판결은 남성들의 격렬한 반발과 소송 당사자나 위헌판결을 옹호하는 여성에 대한 마냥사냥식의 대응을 낳으면서 상황이 진행되었다 (주간동아 2000, 1/20. 정진성, 2000).

이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이슈를 다루고 있다. 병역비리는 불법적 또는 특권적 힘에 위한 징집면제자를 낳게 하는 사회부조리에 대한 문제로 군가산점문제는 군필남성의 희생에 대한 사회의 보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한국사회에서 군사 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정도와 그것의 성별화된 현실을 보여줌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두사건 모두 엄청난 사회적 폭발력을 갖고 감정이 깊이 개입된 채로 진행되었다. 이 두 사건의 폭발력이나 놀라울 정도의 민감함은 우선 징집제도가 한국사회속에서 차지하 고 있는 핵심적 위치를 시사한다. 징병제도가 사회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는 그 사회의 군사 화된 정도를 보여주는 좋은 기준이다. 그리고 이 핵심적 제도와 경험이 뚜렷이 성별화되어 서 진행되어왔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여성차별적 제도와 문화에 끼치는 이 징집제도의 영향이 결코 적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 발제문에서는 이 두 사건을 둘러싼 언론의 반응, 전 여성학생운동가들의 인터뷰, 징집과 관련된 연구들에 대한 분석을 활용하여서 남성들의 공통된 징집경험이 한국에서의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깊게 뿌린 내린 성별화된 군사주의의 실체를 같이 진단해 보고자 한다.

도전 받지 않아 온 제도

이회창대통령 후보 아들들의 병역기피를 둘러싼 반응은 한국사회의 세 가지 기본 전제를 보여준다. 첫째는 모든 건강한 젊은 남성은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 모든 남성은 국가방어의 의무를 지는 데 있어 평등하게 취 급되어야 하며, 셋째, 모든 아버지는 아들들이 그 의무를 다하도록 격려하고 책임질 수 있어 야 한다는 것이다.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단상황과 식민지 경험이후 강화된 약소국으 로서의 절박한 방어의식은 군사적 국가방어를 최우선시하는 정책과 이에 대한 논쟁이 가능치 않은 문화를 낳았다. 징집제도의 역사는 이러한 실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징집제도는 1949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병역법이 통과되면서 시행되었고, 1957년 대규모의 개정 (Seungsook Moon, 1998)을 거친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강제 징집제도를 유지 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노릇을 하곤 하는 현실과 비교해 보면 한 국의 징병제도는 병역비리에 대한 잡음 외에는 거의 논란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이 논란 없음의 가장 큰 전제는 그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일반시민들의 태도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변화 없이 유지되었던 것은 국가방어에 대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공감 대 때문이다. 식민지 경험을 거치면서 군사력과 약소국의 위치를 동일시하는 의식이 광범위 하게 자리잡혀 왔다. 또한 한국전쟁이후의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공포이외에도, 자주국방과 경제개발만이 민족생존의 길이라는 박정희식의 논리전개가 아직까지도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 지향성이나 계층성을 떠나서 강하게 존재해온 민족주의도 이런 국가안보중심 적 논리의 한축이 되어왔다. 이러한 광범위한 공감대에 기초한 징집제도에 대한 인정은 한국사회에서 여러 가지 특이한 현상을 나타내었다.

하나회등 정치장교나 군대내 핵심장교들 의 인맥이나 전 군인들의 사회요직 독점 등에 대한 관심과 그 영향력에 대한 의식은 문제의 식은 항상 높았다. 그러나 물리력의 요지로서 뿐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의 중추 기관으로서의 군대, 수많은 징집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군대는 분석이나 관심의 대상이 되 어 오지 않았다. 징병제도 자체도 마찬가지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징병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의견을 물었을 때 인정하는 쪽과 지원제로 바뀌어 야 한다는 등으로 의견은 나뉘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인터뷰한 상당수의 여성들이 징병제도 에 자체에 대해서 생각이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활동가의 말을 들어보자. "징병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글쎄 없어져야 하겠죠. 이상하네요. 한번도 분명하게 그게 어 떻게 되야 하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징병제도에 관해서 뭐 다른 생각을 상상하지 말라고 세뇌당해 왔었던 것 같아요"(1998. 9. 10. 서울).

다른 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징병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상태에서는 전 쟁억지 효과가 있으니까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일반 군중들 중의 하나인 것 같아. 테레비에서 하는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좀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 를 했다면 아마도 다른 결론을 내렸을 것 같아요" (1998.8.13. 서울).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징병제도의 존재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고민을 해볼 자극을 거의 갖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회의 중추기관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 라 모든 이들의 삶과 구체적인 관련성을 갖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의미화, 언술화가 거의 되어오지 않은 한국사회의 징병제도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부분이다. 또한 이런 현상 은 주변의 남자들이 일정기간 군대가는 것과 정치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해온 정치 군인중심의 군대라는 조직과의 이미지가 분리되는 현상을 낳기도 한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대부분이 가족 중에 군대에 관련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아래대 화는 사뭇 전형적이다.

"군대에 관계했던 가족이 있으세요?"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군대에 갔던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아. 우리 아빠도 군대 갔었고, 오빠도 방위했어요.
내가 학생운동하는 바람에 편하고 좋은데 있다가 밀려났었죠." (1998. 7.22. 서울).

다시 말해서 정치군인으로 이미지화된 직업군인의 삶과 징집된 남자들의 경험을 분리시켜 생각하고 군대를 직업군인의 집단만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반군사독재 운동이 그토록 치열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공통된 징집경험을 사회 다각면에서 의미화하려는 의지를 막는 데 한 역할을 했다.

민족국가와 전사의 희생

이와 같이 징병제도는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도 필요성에 대한 상상이 필요 없는 동의 속에서 존재해왔다. 아마도 유일한 도전이 징병기피를 둘 러싼 병역비리논란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필요성에 대한 논란 없는 동의에서부터 국가방어에 대한 절대화까지 젊은 남성이 국가방어의 의무에 대한 의지를 가질 것에 대한 의미화된 또는 잠재되어있는 요구는 적지 않다. 즉 많은 남성들이 개인적으로는 군대에 가기를 원 하지 않는 현실과,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공공의 힘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 아들의 징집기피 사건이 알려지자, 한국의 신문들은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차이없이 거의 같은 논조로 문제를 다루었다. 물론 어떤 신문도 징집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논조는 없 었다. 기득권을 떠나서 군대가기를 원치 않는 한 개인의 욕구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 려는 신문도 없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징집때부터 숱한 비리가 저질러지는 그런 군 대가 강할 리 없었고, 이런 인식은 군에 대한 민간의 이미지를 크게 악화시킨 한 요인이 됐 다. "며 강한 "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해둬야 할 것은 병역문제가 결코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휴전선에서 그리고 바다와 하늘 에서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음들 앞에 진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1997. 8.1)고 국방의 의무의 신성화를 강조하면서 젊은이들의 동요를 우려했다. 하태훈 교수는 중 앙일보 시론에서 "18세에 달한 대한민국 남성들이 '왜 나만 군대에 가야하나'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여 '어떻게 하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이것이 바로 병역저항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중앙일보, 1997.8.20) 라고 전반적인 신문의 기조를 잘 정리했다. 결국 이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하려는 의지는 이전의 종교적인 힘이나 왕권의 힘 대신 근대적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의 자발적 충성심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Hobsbawm, 1990:85). 이 의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전사이다.

많은 나라와 문화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병사는 민족을 위한 자기희생의 기본모델로 존재한 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죽은 병사가 영웅적 상징으로 곳곳에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 민족주의와 관련된 현대문화중, 무명병사의 무덤이나 기념비보다 더 강한 흡인력을 갖는 상징은 없다" (Anderson, 1991) 고 했다. 질 스틴즈는 영웅전사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가부장 적 민족국가를 세우는 데 결정적임을 지적했다(Steans, 1998).

한국을 방문한 미 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서울 국립묘지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병사의 자 기희생은 남성을 모델로 한다. 따라서 민족을 위한 제일의 희생으로 취급되는 이들 전사적 희생은 군대내나 군대 밖에서 그 사회의 군사화된 남성성을 부양한다. 한국에서는 징집제도 를 통해서 남자의 국가를 위한 자기희생이 일반적 상식으로 자리잡혀 왔고 남성성의 기준이 되는 경험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런 측면은 군 가산점 제도와 더불어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 의 위치를 더욱 공고화하는 특권으로 분석될 수 있다. 남성을 위한 제 2차 학교로서 이 징병제도는 그 효율성을 광범위하게 인정받아 왔다. 명예로운 제대는 십대의 방황과 사회질서 에 대한 저항을 끝내고, 조직화된 시민사회속에서 협조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 있는 남성이 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확인서 같은 역할을 한다.

박 노자는 한국남성 들이 모임의 첫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군대갔다 왔냐라고 묻는 것을 보면서 군대필 여부가 한 남성을 이해하는 최선의 정보로 자리잡혀있는 현실에 놀랐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노자, 2000).

조성숙은 군대에 갈 시기까지 겪는 남자로서 태어난 것에 대한 반복적인 회 의와, 폭력적인 훈련과 어려움은 겪으면서 갖는 고통은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성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조성숙, 1997). 자기를 희생하는 전사라는 담론을 통해서 특권화된 남성성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 한 결과는 남성은 보다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이해를 희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별 논란이 없는 동의가 사회에 뿌리내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여성들의 징집된 군인들에 대한 공통된 태도는 동정이었다

. 박영아는 "군대 가있는 동안, 남자들은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간을 군대에서 쓰는 거잖아요. 내 오빠는 등이 다쳤어요" (1998, 8월 13일 서울). 김 영희는 "그냥 불쌍해요. 너무 불쌍할 뿐이에요" (1999, 3월 7일 뉴욕). 의외로, 단지 두명의 여성만이 군대를 갔다온 이들에게 부여된 특혜를 지적했다.

대부분은 남성 징집에 대해 남성의 불쌍한 희생만을 주목해서 이야 기했다. 남성의 징집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압도적인 반응은 불쌍한 남성의 희생에 맞추어지고, 남성의 특권에 대해 낮은 인지도를 나타냈던 것은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진 성별화된 사회적 역할의 상식적인 개념화를 보여준다. 즉 성별과 정치적인 경향에 상관없이 남성의 자기희생에 대한 사회적 동의는 군대를 갔다온 남성이나 군대에 있는 남성이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해를 위하여 쓸 수 있는 무제한적인 근거가 한국사회속에 형성되 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산점 대법원 판결이후 행해진 경향신문의 한 통계에 의하면 여성들의 경우에도 반대하는 경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8%/34%)(경향신문, 2000, 1.6).

이 통계에서도 나타나지만 성대결이라는 것을 여성은 모두 대법원 판결에 찬성하고, 남성들은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여성들과 그에 동조하는 여성일부와 여성단체들에 대한 남성 다수의 분노라고 보는 것이 현재의 상태를 더 잘 표현 한다고 본다.

모성과 부성

가산점 논쟁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징병제와 관련해서 거의 유일하게 들렸던 경우 라고 할 수 있다. 가산점외에 여성들의 모습은 주로 어머니로서 그리고 애인으로서 형상화 된다. 우리사회의 어머니와 아들간의 끈끈한 결속력을 생각할 때 어머니들은 징집문제와 관 련해서 특별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 집단이다. 또한 이회창의 경우가 징집문제에 있어 부적당한 부성을 대변했듯이 아버지들도 징집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을 기대 받게 되는 집단이다.

그러나 이회창 사건이 터졌을 때, 신문등의 논단에서 여성들의 자리는 없었다. 이회창 사건을 폭로한 이도, 이를 보도하고 시론을 쓰고 사설을 쓰는 이들도 거의 모두 남성들이었다. 때때로 어머니들은 이들 남성들에 의해서 아들들의 안부만을 염려하는 감정 적인 가장 적절한 분노를 제공할 수 있는 그룹으로 표현되고 이용되었다.

한 논설위원은 분노한 어머니들이 대통령 투표일에 이 후보 아들의 징집기피를 잊지말자라고 표어를 써 놓고 있다고 인용하고 있다 (중앙일보, 1997.8.22) 또 다른 논설에서는 사람들이 징집면제에서의 불법적 또는 부도덕함에 대한 문제를 이성적으로 지적하기 이전에 내 아들은 생사의 위기에 서 고생하는데 너희 아들은 군대에 안 갔다는 도식에 기초한 여성들의 감정적 분노가 더 크 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1997. 8. 27).

일반인들과 신문등의 매체는 사회지도층으로서 모범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야할 이 회창후보가 자식들의 다분히 고의적으로 보이는 징집면제를 막지 못했거나, 이를 위해 자신의 권력을 사용했을 가능성에 깊은 실망을 표현했다. 이런 대중적 반응은 아버지는 아들이 군대에 가서 국가방어의 의무를 다할 것을 격려해야 한다는 부성적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 대감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역할기대와는 달리 어머니는 앞의 논설위원들이 주로 대변했듯이 징병제 도의 감정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경향신문, 1997, 2월 21)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우정의 무대에서의 제일 있었던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어머니가 무대 뒤에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많은 병사들이 자신의 어머니라며 어머니 를 합창하며 무대위에 뛰어오르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나온 아들과 눈물의 포옹을 하면 보는 군인들도 시청자들도 심금을 울리는 듯한 배경음악과 함께 같이 울게 된다.

신기하리 만치 징병제도의 감정적인 부분에서 아버지는 사라진다. 최근에 발간된 두 권의 군대경험을 다룬 책에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이 성찬은 이렇게 수기를 쓰고 있다 "어머님이 이 소포를 받고 어떤 기분이 드실까? 아들을 군에 보내는 어머니는 보통 입대할 때 한번 우시 고, 소포를 받고 또 한번 우신다는 말이 있던 데 ... 우리 어머님도 그러시진 않을까?" (이성찬 1998:25) 또한 이성찬은 훈련이 끝나고 처음 계급장을 다는 연변장 주위에 우는 어머니 들과 부둥켜안은 훈련병들로 가득했다고 회고했다(이성찬, 1998: 206).

만약 대통령 후보가 여성이었고 그 여성후보의 두 아들이 징집이 면제되었다면 여론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 후보에 대한 비판은 이회창후보에 대한 비판의 정도보다는 덜 하였을 것이다. 그 여성후보 의 행동은 절박한 어머니의 자식사랑으로 이해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후 보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이성적이고 책임있는 멤버가 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의심을 받으면 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됐을 것이다.

징병제도와 관련해 모성과 부성의 차이는 부성-국가 방위에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공적 주체와 모성-사적 보조체로 간단히 분류해 볼 수 있다. 양육자와 병사의 성별 역할구 분은 징병제와 관련한 부모의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여성은 모성적 본능에 주로 의지하면서 감정적 인간으로 자식과 관계한다. 반면 남자는 아들이 군대에 갈 것을 격려하므로 서 민족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부성적 본능을 극복하는 이성적 인간으로 표현 된다. 좀 다른 맥락에서 쓴 글이지만 김선주 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군대에 가는 아들에 대한 남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 군대가기가 죽기보다 싫다 했지만 입대날을 받아놓은 아들에게 남편은 군대에 가서 직사도록 맞아야 '사람된다'고 한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농담이라도 이런 말을 하면 정이 뚝 떨어진다" (한겨레신문, 1999.4.8). 군대 제대로 알고가기라는 책에서 장민서와 이예하는 책을 내는 머릿글에서 군대가기 전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일이면 아침 일찍 훈련소로 떠나는 날, 저녁 식탁앞에서, "아프지만 말고, 그저 몸 건강히 지내다 돌아오면...".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후두둑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어허, 아녀자가 밥상머리에서 웬 눈물이여, 남들 다 가는 군대고, 장부가 길 떠나 는데 ..." 무슨 호들갑이나며 나무라시는 아버지의 타박에 바로 고개를 돌리셨지만 어머니의 숨죽인 흐느낌 소리는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까닭모들 뭉클함에 괜스레 젓가 락을 만지작 거린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절대 이 아들이 못난놈이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드리겟습니다. 저 없는
동안 몸 건강히 계십시오. 무사히 다녀오겠습니다' (장민서, 이예하, 1998).

물론 애국적인 모성도 존재한다. 특히 전쟁시기가 되면 이런 식의 비전쟁시기의 모 성본능에 의거한 소극적이고 감상적인 모성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Lorraine Bayard de Volo는 국가에 의해서 조종되거나 조작되는 전쟁시기의 모성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이 데올로기 최전선을 따라 전쟁의 동원에 주체이기도 하고 객체이기도 하다. 모성적 이미지는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이용된다. 또한 병사, 병사가 될 남자들, 죽은 전사의 어머니들은 전 쟁에 대한 저항을 막기 위하여 다양한 어머니의 조직에 스스로 가담한다(1998)".

Cynthia Enloe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온 어머니의 역할이 공적인 역할로서 평가되는 계기가 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이 역할에 끌리게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2000). 그러나 감정 적인 집착에 대한 경계, 계속되는 동원을 위한 노력, 미디어 조작은 국가가 전쟁시의 여성을 신뢰하기보다는 위험스런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아버지에 대한 언론등을 통한 동원이나 이미지 조작이 없는 것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즉 애국적 모성은 국 가의 국가방어나 전쟁과 관련된 일에 대해 민족국가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성과의 갈등을 보여주는 측면이 더 크다.

남성화된 전사적 연대감

이회창 사건은 한국사회의 평등한 병무집행에 대한 강한 욕구와 분노를 담고 있지 만, 군대는 남성들 사이의 계층이나 학벌 등을 떠나 군대내의 위계질서로 재편된다는 면에 서 일정한 탈사회적 평등함을 내포한다. 군대밖 사회의 위계를 떠나서 형성되는 이 탈 사회 적 평등함은 남성들간의 독특한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집중적이고 힘 든 훈련을 함께 극복하면서 형성되는 이 연대감은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형성한다. 남성성 이 강화된 전우의식이 그것이다. 이성찬은 이 새롭게 형성된 남성적 연대감에 대해서 이렇게 그렸다.

이윽고 연병장은 눈물바다가 되어버린다. 모두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참으로 기묘한 장면이었다. 남자가 우는, 그것도 명색이 군인인 남자들이 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본적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장병들이 한꺼번에 눈물 흘리는 장면은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동고동락하며 6주의 생활을 같이 했던 전우들... 싸우면서 미운정도 들고 같이 고생하면서 연민의 정도 들고 그래서 깊어진 우정 (1998: 212).

이렇게 형성된 군사화된 남성적 연대감은 이번 군가산점 논쟁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폭발적이고 격렬한 감정적 반응은 일단은 군대에서 자기가 한 희생을 사회가 부정하는 듯한 데서 오는 감정적 반발감 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인 이 직접적 해당사항은 없지만 자신가 함께 고생했던 동료 또는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군대라는 공간을 경험한, 그리고 경험할 동지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에 대한 남성적 연대감 에서 오는 분노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사회의 가부장제의 한 특성인 강한 남성적 동류의식의 한 근거를 군대경험이 획득한 연대감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 집단적 연대감은 단순히 고생을 같이 했다는 데서 오는 연대감만은 아니다. 군 대생활은 민족적 실체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기간이다. 군 대복무기간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은 군대 밖 사회의 관계나 배경에 대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이년 이상의 기간을 국가방어란 이름으로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상상의 공동체 로서의 민족의 실체와 실재를 확인하게 된다. 즉 대한민국의 남자로서의 구체성과 경험적 실재가 다져지는 것이다. 조성숙이 행한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한 군필자들은 대한민국의 남 성으로 정체성을 다지고 확인 당하는 것이 군대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 었다고 했다. 한 군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입대를 하면 지휘관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여러분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남자이기 때문에 군대에 온 것이다" 라든가 "대한 민국 남자라면 군대한번 가야한다" 라는 것이다 (조성숙, 1997: 161 재인용).

성문화

물론 이런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남성집단으로서 재 탄생하는데 공통의 성관념의 형성과 실천도 적지 않은 부분이다. 조성숙은 신참병이 고참병으로부터 다분히 과장되고 폭 력적인 성관념을 배우고 여성의 성의 상품화와 매춘이 자연스런 군대생활의 일부로 받아들 이게 되는 지를 설명했다(조성숙, 1997). 장필화와 조형은 성문화가 다양한 사회적 배경의 신참들을 균질화시키고 군대내의 질서를 따르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분석하기도 했 다(1991).

그러나 이렇게 군사화된 남성성과 성폭력이나 매춘문화와의 관련성에 대한 의식이 나 관심이 내가 인터뷰했던 여성들 사이에서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성문화와 징병제도와의 관련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기대했던 것 보다 낮게 나타났다. 세계 수위로 나타나는 성폭력 발생율의 원인을 물었을 때 많은 인터뷰한 여성들은 징병제도가 원인일수도 있음을 지적하 지 않았다. 인터뷰 자리가 군사주의와 관련되고 군대와 관련되어 많은 질문을 한 뒤였는데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의 폭력적인 성문화와 징병제도의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하냐고 물었을 때 대답은 의외로 풍부하고 구체적이었다. 한 전 활동가는 " 글쎄요, 그런식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그러나 굉장히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588이나 영등포 가는 게 군대가기전이나 휴가 나왔을 때 늘 하는 거잖아 요"(1998.9.9, 서울). 다른 인터뷰한 여성의 반응도 비슷했다. "예, 굉장히 관련이 있을 것 같 네요. 여자를 사는 게 군대가려는 친구들 완전히 취하게 한 다음에 일반적으로 하는 거잖아 요. 창녀촌은 항상 군대랑 가깝게 있잖아요. 다방의 아가씨들도 다 몸을 파니까. 남자는 여자들 몸을 사는데 익숙하니까. 만약 그게 가능치 않으면 강간을 하는 거죠. 남자가 여자를 강간했을 때 죄책감을 느낄만한 상황적인 압력이 별로 없으니까요" (1998.8.31, 서울).

대부분의 인터뷰한 여성이 여성을 성의 상품화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 군대에 간 남자들의 성문화를 많이 들어서 자세히들 알고 있었다. 다만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 군 대간 남성들의 성문화와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성폭력이나 예외가 드문 비대화된 매춘산업의 문제와 연결시켜보려는 의미화와 언술화의 과정이 부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재는 군 대라는 조직과 징병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없이 받아들여왔던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성문화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남성들의 집단문화와 언어 그리 고 공감대 형성에 군대 갔다온 경험이 큰 역할을 함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많 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들만의 집단적 군대경험이 우리사회속에서 어 떤 영향을 미치고, 조직화 되었으며 성별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별로 의미파악이 되거나 언술화 되어 오지 못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이나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 어오지 못했다.

그 중의 한 이유는 물론 여자는 자원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직접적 군대경 험을 하지 않은 다는 것이다. 권오분이 군대경험이 남녀공학대학에서 의미화 되는 과정을 분석한 글을 보면 군대경험과 관련된 질문을 여학생들에게 했을 때 반응은 '군대경험은 갔 다온 남자들에게 물어야지' 혹은 '남자들끼리 하는 이야기이지 여자들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면 어느 정도 여성적인 시각에서 볼 것을 기 대했던 연구자의 기대와는 달리 남성들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인양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권오분 2000: 33). 권오분의 연구는 여성들이 타자로서 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동 조자로서 포섭되면서 군사화되고 남성화된 문화와 언어의 영향권에서 살아온 것을 잘 보여 준다.

결론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남성징병제도하에서 한국인들은 어떤식으로든 이 징병제도 와 관련을 맺어왔고, 경험을 쌓아왔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누나나 여동생으로서 애인으 로서 또는 매춘여성으로서 징집자, 징집 기피자, 징집면제자, 징집예비자로서나 징집과 관련 된 구체적이고 집단적이며 또는 개인적인 이미지, 의견, 기억들을 지난 몇십 년간 축적해 온 것이다. 또한 남성들은 실질적으로 2 년내지 3년의 집단기숙속에서 민족주의 집단주의 반공 산주의, 군사화된 남성성의 형성에 관한 거의 비슷한 경험을 거쳐왔다. 그러므로 남성들의 집단적인 삶의 경험과 다른 이들의 징병제도와 관련된 집단적 경험 모두는 문화, 정책, 국가 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을 조직해나가는데 영향을 미쳐왔다고 봐야한다. 여성과 관련된 부분은 특히 더 그렇다.

법이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만연해 있는 성적 불평등이나 다분히 폭력적인 남녀간의 관계, 백만이 넘는다는 매춘 여성의 존재도 이 징병 제도와 깊은 상관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이런 중추기관의 존재와 그를 둘러싼 집단적 경험 과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장치들이 한국의 군사화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형성과 문화와 제도 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는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도전은 잘 설명되지 않는 많은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 이다.

참고문헌
권오분, 2000, 군대경험의 의미화 과정을 통해서 본 군사주의 성별정치학-남녀공학 사례를 중심으로, 이화여대 석사학위 논문.
박노자, 2000, 인간성을 파괴하는 한국의 군사주의', 우리 안의 파시즘, 서울: 삼인.
백종천, 온만금, 김영호, 공저, 1994, 한국의 군대와 사회, 나남출판.
이성찬, 1998,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 서울: 들녁.
장민서, 이 예하, 1998, 군대 바로 알고 가기, 서울: 정보나라.
장필화와 조형, 1991, 한국의 성문화-남성 성문화를 중심으로-, 여성학 논집 제 8집,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정진성, 2000, 군가산점제를 둘러싼 논쟁, 군복무가산점제도의 쟁점과 실태에 관한 자료집.
조성숙, 1997, 군대문화와 남성, 여성한국사회연구회 편, 남성과 한국사회, 사회문화연구소.

Anderson, Benedict, 1996, Imagined Communities, London and New York: Verso.
Enloe, Cynthia, 1989, 90, Bananas Beaches & Bases: Making Feminist Sense of International Politics, Berkeley,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1993, The Morning After, Berkeley, Los Angeles and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2000, Maneuvers, Berkeley, Los Angeles and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Moon, SeungSook, 1999, Unraveling Militarism: Gender Equality and a Controversy over Military Service and Employment Benefits, Presented at the 1999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Conference in Boston.
Steans, Jill, 1998, Gender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n Introduction.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Volo, Lorraine Bayard, 1998, Drafting Motherhood: Maternal Imagery and Organiz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Nicaragua, in The Women and War Reader, edited by Lois Ann Lorentzen and Jennifer Turpin, New York and London: New York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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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속의 군사주의:
여성의 군사주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제17차 춘계여성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中)
                                      
권 인 숙 (Harvard University 한국 연구소 Post-doc fellow)


1. 여성들은 군사주의나 군사화와 무관한 주체로 생각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남자들과 비교해서 군대에도 가지 않고, 비상시에 직접적으로 국방의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성의 주체임을 강조하면서 근본적으로 여성을 전쟁이나 군사주의와는 거리를 둔 존재로서 규정하는 시각도 상당히 넓게 퍼져있다. 그러나 군사화 과정을 단순히 군대 내부에서 한정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것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이런 무관심이나 분리의식은 다른 각도의 분석 거리를 제공한다. 한 사회는 일정한 성별영역구분, 역할구분 또는 바람직하다고 기대되고 요구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의 구분과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군사화 과정도 이런 사회구성의 맥락 속에 함께 자리잡고 있다. 그러하기에 당연하게만 보이는 이 관련 없음이나 여성의 존재적 거리두기의 철학이 오히려 여성의 군사주의와의 관련성과 군사화된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드러나는 것을 가리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런 가시적 관련없음은 군사화가 진행되면서 같이 진행되는 성차별적인 분업, 영역규정, 그리고 기존의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강화유지시키면서 억압적인 여성성을 재생산하는 실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천적으로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의 경우 남자들에게도 군사주의나 군사화는 일상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실 군사주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거의 쓰여지지 않아 왔다. 한국의 남성 정치 평론가를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도 군사주의라는 말에 무척 낯설어 했다. 다른 지식인층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내가 인터뷰했던 여성 모두가 군사주의라는 말을 들어보거나 써본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militarism의 또 다른 가능한 한국어인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다들 히틀러나 2차 대전전의 일본을 떠올리면서 현재 한국현실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낡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고 반응했다. 관계된 말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은 군사문화였다. 군인들의 문화가 사회 지배적인 통치문화로(홍두승, 1995, 변화순, 1995) 접목되고 확산된 것을 지칭하는 이 군사문화는 군사정권 아래서 오랜 세월을 보낸 한국사회의 여러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상당히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군대문화의 시민사회로의 접목이라는 한정적 의미를 깔고 있는 군사문화는 사람들이 내면화시킨 이념이나 가치체계를 설명하는 데는 많은 한계를 지닌다. 즉, 북한을 극단적으로 적대화시키고, 이 집단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심, 그리고 반복되는 전쟁가능성을 통한 긴장감 조성, 국가방어의 신성화, 미군주둔에 대한 대중들의 일반적인 지지, 국민개병제, 30년 이상의 군사정권의 지배가 가능했던 그 토대 등,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이념과 가치체계, 세부화된 문화 등을 포괄하면서 총체적으로 진행되었던 한 사회의 군사화 과정을 군사문화라는 이미 한정되어 쓰여지는 개념으로 설명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 여성과 군사주의에 대한 여러 생각들

1900년 초 이전부터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활동가나 학자들이 전쟁 도발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여성과 군사주의에 대한 구조적인 설명을 꾀하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시작되었다. 루딕 등은 자녀양육 등을 실천하는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전쟁이나 군사주의와 거리를 두게 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평화운동의 주체로서 여성을 자리매김 했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평화를 위한 여성파업"(1961-1970)은 실제로 모성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일어났고, 영국에서 핵미사일 기지 건설에 반대해서 일어났던 그린햄 컴온 운동(Greenham Common)(1982-89)은 여성만의 평화운동이었다. 환경론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본성-평화의 관계를 강조하고, 캐롤 길리건은 관계 중심적인 여성의 자아 형성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은 평화 그 자체나 평화적 해결 방법을 선호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반대의 방향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군대 참여나 게릴라 운동에 전사로 참여하는 것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함을 얻어나가는 중요한 도구로 보기도 한다(Feinman, 1998, Stiehm, 1996, Hervert, 94). 이 관점에서는 동등한 군대 참여를 통해서  쟁취된 성적 평등이 한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두가지 흐름과는 다른 방향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군대조직의 형성이나 유지, 그리고 한 사회의 군사화의 과정이 성별 분업화된 역할과 특정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사회적 형성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면서 진행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쏟고 있다(Enloe, 1993, 1988, Elshtain 1987). 9).    

3. 누가 군사주의자인가?

군사주의는 전쟁을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사회적 활동으로 보이게 하는 가치관의 체계로서 또는 전쟁이나 전쟁준비와 관련한 사회적 실천이나 태도들의 총합으로서 이해되어 왔다. 사실상 전쟁이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데올로기로 보이는 이 부정적인 느낌의 군사주의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믿고 내면화하고 따르는 신념들의 일정한 합의 형태를 띠기도 하는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것이 부적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질서를 오랫동안 가졌다고 하는 미국에서 이라크에 미사일 공격을 할 때마다 60% 이상의 국민들이 무조건의 지지를 보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많은 민족분쟁이나 종교적 분쟁이 군사적 대결로 치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청난 내전을 거친 이후에 독립한 알제리에서 아직도 내분을 집단적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전을 겪은 이후 남아프리카에 총기 문화가 크도록 번창해서 매일 19명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Cock, 1997) 군사주의 militarism의 일면적 규정, 즉 군사조직 존립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과 그 조직 성원들에게 힘을 부여하면서 전쟁과 전쟁 준비만을 정당화하기 위해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규정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 규정만으로는 한 사회 내에서 또는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군사적, 집단적 폭력에 대한 전사회적인 지지나 실천을 설명해내기 힘들다. 언제든지 군사적 대결로 치달을 수 있는 흐름과 동력이 내면화된 가치체계, 일상생활에서의 실천 없이 하루아침에 생겨날 수는 없다. 군사주의는 바로 그 내재된 가치체계와 일상적 실천 속에 자리잡은 이념을 의미한다. 재클린 콕은 현대의 민족이나 우방들 또는 집단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명분 하에 갈등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적 폭력(Cock, 1993)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념의 줄기가 군사주의라고 규정했다. 신디아 인로는 이런 집단적 폭력을 가능케 하고 그러한 집단이 유지되고 힘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소위 말하는 전사로서의 남자다움, 그리고 그런 남자다움을 보조하고 보완하는 여자다움의 사회적 형성과 함께 이런 집단의 유지 보존을 위한 훈련과 단일적 위계질서, 역할분업들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여러 제도적 신념적 장치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군사주의를 이해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반 군사주의자와 군사주의자의 경계선이 많이 허물어진다.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 세계질서에서 군사주의를 설득시키고 대변하는 다른 표현들, 국가안보, 국가보위, 민족간의 힘의 균형 등이나 제국주의적 억압 속에서 또는 민족 내부 갈등 속에서 나타나는 게릴라운동,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적인 폭력의 사용과 무장화는 쉽게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부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사주의자를 만나고 싶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가치나 실천이 군사주의와 연결되어서 해석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적으로 군사주의는 민족주의나 가부장제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고, 가부장제나 민족주의 속에 자리잡은 그런 특징들을 강화하거나 보강하는 신념체계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한 특성은 가부장제에서의 역할과 군사주의에 관련된 역할이 여성에게는 특히 큰 차이 없이 겹친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 여성과 군사주의의 관련성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군인부인의 경우, 이들이 군대와 관련해서 하는 역할과, 가부장제에서 형성된 성별분업화된 여성의 역할과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군대라는 조직이 군인부인들의 노동과 협조에 어떻게 기대어 유지 운영되는가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왔다.  
이런 끊임없는 군대조직과 관련된 군인 부인들의 무임노동은 별 문제 의식없이 도전을 받지 않은 채 많은 나라에서 지속되어 왔다. 가부장적인 성별노동분업 속에서 당연한 듯이 형성된 자연스러움이 군인 부인들의 군대 조직에 대한 협조와 무임노동 제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군인 부인의 경우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비추어지는 가부장적인 성별분업이 어떻게 한나라의 군대조직을 지지하고 유지하는데 이용되고, 사실은 필수 불가결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성과 국가안보와의 가리어진 긴밀한 관련성을 비쳐볼 수 있는 좋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은 군사주의가 뼈대로 하는 남성성, 여성성과 큰 차이를 낳지 않는다. 그러나 군사화의 과정은 폭력적이고 전투력의 향상을 중심 목표로 훈련된 남성성을 옹호하고, 폭력적인 면을 가부장적인 남성성에 더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강화시켜낸다. 남성성은 항상 변화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지 사람이 된다"라는 전제를 상당수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제 2의 학교로서의 기능이 상당히 인정되는 편이다..
남자가 강해야 하고 가족부양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힘의 논리에 적응하여 성공을 하여야 한다는 것 등은 가부장적인 남성상 속에서 계속 유지 보존되어온 성질이지만, 군대경험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강하게 재교육되는 한국에서의 기본적인 남성성이다. 아직 높은 성폭력 발생비율이나 비대하게 성장한 유흥산업과 매춘업과 이런 집단적인 남성들의 군대경험과 그 속에서 형성된 남성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검토해 보지 못했지만, 상식적으로 상당한 관련성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규정, 매춘여성과 순결한 부인 등의 비교와 대립 속에서 한편의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성의 상품화와, 한 극의 여성집단에 대한 집중적인 성도덕에 의한 규제는 남성들의 군대 경험 속에서 양성된 가부장적이면서 여성이라는 성을 상품화, 대상화하는데 익숙해진 남성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4. 일상성과 군사화: 그 헤게모니적 실재

군사주의가 개인이나 조직, 사회운동, 그리고 전체 사회를 형성하는데 끼치는 영향과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군사화는 핵심 개념이다. 즉 군사화는 이념 또는 가치체계로서의 군사주의의 일상화, 사회화를 일컫는다. 군사화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주의의 영향에 관심을 갖고 설명하기 위해서 새롭게 관심을 끌고 만들어져가는 개념이다. 특히 성별화된 군사주의의 영향을 해석해 내려는 페미니스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Enloe, 1982, 1993, Moon, 1998, Chenoy, 1998).
사회화 과정으로서 군사화를 강조할 때 같이 살펴보아야 할 것은, 어떤 의식 상태에서 각 개인들이나 집단이 군사화 과정을 겪고, 가치로서 받아들이고, 또는 실천에 참여하게 되느냐는 것이다. 만약 의식적인 군사주의자가 그리 많지 않다면, 군사화 과정에 가담케 되는 무의식은 이들 과정과 어떤 관련을 갖게 되느냐는 것도 궁금해지는 사안 중의 하나이다. 군사화와 관련된 개념의 의식적 발달 없이 지속적인 군사화의 과정을 거친 한국의 경우 기존에 진행된 연구 중에서 거의 밝혀지지 않은 이 관련성을 밝혀 내는 것이, 그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군사화의 과정 중에는 우리가 군사문화의 확산이라고 해서 문제제기를 해왔던 것도 많이 포함된다. 그러나 상당부분이 집단적인 문제의식 없이 진행되곤 한다. 실제로 지배집단은 군사주의를 표현하는 직접적인 담론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담론들 중에는 우리가 거의 문제제기하지 않고 상식화해온, 다시 말해서 당연하게 여겨온 논리들이 의외로 많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방어의 필요에 대해 어느 정도 공통된 전제나 단일화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 3세계의 국가나 민족의 경우, 제국주의의 식민화를 막기 위한 자기보호를 위한 무력의 확보나, 민족해방투쟁을 위한 적극적인 무장화의 필요성, 또는 일상시에도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위한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 등이 다수의 동의를 즉각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저변에 깔려있는 공통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어떤 식의 기준으로든 군사적으로 가장 긴장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냉전시대가 해체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전쟁 가능성을 떠올리며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2000년 현재는 80년대나 그 이전 70년대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군부가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더 이상 아니다. IMF의 여파인지 아니면 언론에 조금 더 공개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군축 문제도 제법 거론이 되고 있고, 일정하게 동의도 얻고 있는 듯하다. 군의 비리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닌 듯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한국사회가 탈군사화되어 나가는 징표들로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가지 중요한 의문은 그대로 의미를 지닌다. 왜 우리사회에서는 군사주의나 군사화, 또는 이런 개념들을 대체할 만한, 즉 우리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군사주의적 질서를 파헤칠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까, 또는 한국사회같이 군사적 긴장감이 강하고, 북한의 핵보유여부가 계속 논란이 되고 주한미군 주둔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왜 평화운동은 배안시당하고, 반전운동은 반미운동 이상의 의미로 확대되지 못했을까?  
군대의 존재와 그로 인한 힘의 균형, 필요시에는 집단적 폭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동의와 그 이전에 이들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느끼지 않았던 그 사실 속에 군사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들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결국 우리의 민족주의 의식속에 그리고 전쟁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분단 상황을 통해 신성화되어 버린, 가라앉아서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어져 버린 집단적인 국가방어 등에 대한 동의 속에서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화 경험의 하나였던 군사화 과정이 그 구체적인 실체를 별로 드러내 놓지 않고 진보적인 지식인들까지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한국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문제 또는 문화적 흐름을 설명하려고 할 때 군사주의나 군사화라는 시각을 통해서 본 면면들이 우리사회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거나 대변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여성과의 관련성에서 군사주의의 영향력이 유교적 가부장제나 자본주의적 성별분업의 그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건국 50주년을 맞은 이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러저러하게 행해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사회를 평가하고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카테고리로서 군사주의와 군사화라는 개념을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군사주의와 군사화라는 분석틀은 우리가 권위주의나 유교적 가부장제나 또 다른 여타의 분석틀에서도 접근할 수 없었던 국가방위라는 신성화된 전제와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이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정당성을 가지고 존재하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이와 관련된 가치와 도덕이 양산해낸 문제들을 짚어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쉽게 상정할 수 없는 여성과 군사화와의 관련성이 그 두텁게 가려진 장막 속에서 이 사회의 성별분업과, 역할규정과, 그리고 여성억압의 폭력성을 가중하고 있음도 이 분석틀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되고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 야당 집권 후 민주화로 나아가기를 같이 열망하면서도, 박정희 찬양론이 거침없이 등장하는 갈등하는 전환기에 이 분석틀은 참 민주화에 대한 한 좌표를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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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글입니다 Nzxfqip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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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0 0
17
  [내셔널리즘과 젠더]8월2일, 8월 16일 발제자 정했으니 확인하세요.

2005/07/31 6539 1088
16
  [군사주의와 여성] 발제자 올려주세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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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5201 972
15
  [위험한 여성] 발제자 올립니다. [3]

수하
2005/05/26 5629 989
14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3

평화스터디
2005/05/18 5791 903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2

평화스터디
2005/05/15 5199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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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1

평화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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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평화스터디] 4차 및 5차 공무모임 일정

평화스터디
2005/05/15 5196 961
10
  [평화스터디] 다음(5/17) 공부모임 제안입니다. [1]

수하
2005/04/26 4997 843
9
    참고자료: 국가폭력과 여성체험 -제주 4.3을 중심으로- [2]

suha
2005/05/15 4725 795
8
  [평화스터디] 공부모임 일정입니다.

평화스터디
2005/04/18 5338 920
7
  4/19 에 전쟁과여성 공부모임하기로 한거요.. [3]

꼬미
2005/04/16 4961 910
6
  [평화스터디] 바깥으로 나가서 배우기 (11월 20일) [1]

평화스터디
2004/11/08 5475 1035
5
  [평화스터디] 2차 공부모임 일정 [1]

공부모임
2004/11/08 5921 1061
4
  평화사상 공부모임 다음 세미나와 2번째 텍스트

공부모임
2004/08/11 6168 1225
3
  >>> 평화사상 공부모임 일정잡아요.+ [1]

염창근
2004/08/03 5358 994
2
  [평화사상공부모임] 첫 모임을 알립니다.

사무국
2004/07/12 5002 910
1
  평화사상 공부모임 일정잡았습니다.

들풀
2004/07/20 585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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