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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주의와 여성 (5차) 세미나 자료 -1

적, 여성, 섹슈얼리티

김엘리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정책위원장 (2002.11.7)


본 글은 전쟁담론이나 적의 이미지 창출에서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차용되고 있으며, 여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해석되고 있는지 살피는 데 있다.  


1. 티셔츠의 그림 이야기: 정복의 욕망

며칠 전 송탄을 방문했다. 지난 8월, 서울 국제회의의 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이 송탄의 오산 미군기지촌을 돌아본 일이 있는데, 그 때 눈여겨 본 한 티셔츠 도안이 나의 맘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점 문 밖에 길게 늘어뜨려져 전시되어 있는 그 티셔츠 도안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넋을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아쉽게도 상점 문은 잠겨 있었다. 그렇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은 다행히도 상점의 사장과 만날 수 있는 호기를 가졌다. 여전히 길거리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이 티셔츠 도안은 날 다소 흥분시켰다.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한 여인의 벌어진 사타구니 사이로 각 각의 비행기들이 목표를 조준하고 깊고 낮게 침투하고자 활공하고 있는 이 도안의 이미지는 여전히 우리네 삶의 한 재현으로서 버젓이 세상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 이미지에 집착하며 이 도안과의 재상봉을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지 그 그림 앞에서 바짝 타는 입술의 긴장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그 상점의 사장은 다소 싱거운 얼굴로 날 마주 대하고 있었다. '여자가 왜 여기 왔지?'하는 약간 재미없는 눈빛으로 의아함을 표현하였다.

"한국사람들이 이 티셔츠가 왜 필요하죠? 이건 미군들이 부대별로 구분하면서 입는 유니폼 같은 거예요."
"미군들이 이것을 입나요?"
"그럼요, 다같이 맞추어서 입지요. 이 비행기가 다 모양이 다르잖아요. 이것이 각 부대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거죠."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이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벽이나 수첩에 부쳐둔 핀업 걸들의 사진들이었다. '금발의 미인들은 군인들로 하여금 왜 이 전장에 내가 있어야하는가를 상기시켜주고 힘을 주며, 이 어려운 상황에서 견뎌내게 하는 존재였다'고 회상하는, 퇴역한 한 미국남성의 말은 군대(인)와 여성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밀접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점 점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며, 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일게다. 나신의 여성에게로 침투하는 것이 곧 적의 진지로 향하는 전투의 짜릿함으로 재현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 재현은 티셔츠나 사진이라는 상품을 통하여 유통되고, 이미지가 보여주는 의미는 이러한 유통과 소유의 과정에서 재구성되고 결정되고 확산된다. 자, 군인들이 여성의 나체 그림이 든 티셔츠를 집단적으로 입고 걸어간다고 상상해보자. 참으로 웃기는 일이지만, 잠시 웃음을 참고 생각해본다면, 이 유치함이 갖는 정치적 의미의 무게는 단순히 세상의 유치함으로 또는 상식 이하의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압도적이다.

우선, 집단적 정체성을 표방하고 있는 공통의 티셔츠를 착용함으로써 그들은 동일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남자라는 것, 전사라는 것, 같은 부대의 소속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죽음의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남성성이라고 하는 특성으로 특징화된다. 그들은 민족 또는 한 사회의 시민권을 온전히 가지는 주체로서 남성적 연대감을 형성하며, 고귀한 애국심으로 어린이와 여성, 일반인의 안보를 지키는 선한 수호자이다. 따라서 그들이 갖는 남성성은 개별적 남성의 특징이 아닌,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남성 특권적 권력으로 작동한다.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글래머 여성의 이미지는 이러한 집단적 남성의 시선에서 고정화된다. 이미 누워있는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 주체성이 은폐된 채, 남성을 위해서 준비되어진 여성이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의 핀업 사진이나, 지하철 가판대의 잡지 모델에 박혀진 글래머형의 여성이미지는 대량 생산된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극단적 성적 여성성이 표출된 여성의 재현은 현실적으로 남성들이 갖지 못하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욕망은 그 티셔츠나 사진을 구입하여 소유하는 욕망으로 대치된다. 여성의 재현은 유통되고 소유되는 상품으로서 하나의 교환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군인이 소비자일 경우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민족주의적 의미가 창출된다. 전사들을 위로하는 여성, 위험한 전투의 황량함이 오르가즘의 짜릿함으로, 배출의 즐거움으로 환상을 갖게 하는 여성이 민족주의적으로 필요하다. 다리를 벌리고 '자, 나를 가지세요. 그리고 이렇게 잘 겨냥해보세요'라고 말하는 여성이 국가적으로 요청된다. 그것은 전투력의 향상과 국가의 안보를 위하는 애국적 행위이다.

적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여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만난다. 이러한 욕망은 사실, 군대의 현장에 있는 남성에게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남성의 판타지이다. 한 비뇨기과 의사가 성의학 입장에서 남성들에게 전하는 섹스방법에 관한 글에서 이를 엿보기로 하자.  

한국남성들의 성행위는 흡사 '전투'와 비슷하다. 그것도 '장기전'이나 '전면전'이 아닌 '속전속결전'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일단 시작하면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만다. 이는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전투적'으로 살아온 한국남성들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 (중략)...... 최소한 아내에게 '선전포고'는 해야할 것 아닌가. 그러나 때로는 선전포고를 해놓고도 싸움다운 싸움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발기부전과 조루가 대표적이다 (이선규, '남성학 강의: 선전포고하고 전쟁해야지'에서).

위의 글은 섹스를 전투로 비유하여, 한국남성들의 성질 급한 섹스의 습관과 경향을 '속전속결전'로 규정하면서, 아내를 위한 배려로서 전희, 즉 '선전포고'를 권유하고 있다. 선전포고는 전쟁을 치루는 법칙의 예의인 것처럼 아내에게도 느긋한 자신감으로 섹스를 준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런데 이 글은 섹스의 중심을 남성의 성기에 두고 마치 목표달성을 위하여 분기 투쟁하는 장면을 연상케하면서 섹스는 남성적인 사업의 연장선으로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복과 성공, 성취라는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 섹스를 전투의 과정으로 설명을 하여야 쉬운 설득력을 갖는 남성세계는 이미 전쟁이 그들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티셔츠의 그림이야기에서 시작된 섹슈얼리티와 이를 통한 여성의 이미지 재현 문제는 다음의 물음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 과연 군인이 군인답게 되는 주요한 기제로서 어떻게 여성이 인식되고 이미지화되는가? 전쟁담론에서 여성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쟁담론에서 섹슈얼리티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전쟁을 섹슈얼리티로 이미지화함으로써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떤 정치적 효과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전쟁담론에서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차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여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보고자 한다. 먼저 전쟁담론을 주요하게 형성하는 '적'의 이미지에서부터 논의를 출발하고자 한다.


2. 부시의 반테러리즘 정책과 적의 창출

1) 부시의 테러리즘과의 전쟁

군사주의는 적을 필요로 한다. 전쟁과 군대가 성립되고, 존속되기 위해서는 '우리'와 다른, '타자'로서의 적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911 참사가 일어난 후, 미국 부시는 이에 대한 보복전쟁을 선언하면서 세계적 지지를 호소했다. "너희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적이다. (You're with us or against us.)" 세계적 협조를 요청하는 건지, 위협을 하는 건지 애매한 부시의 이 유명한 발언은 2002년 미국의 새해 국정연설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하면서 세계를 아군-적군,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마치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는 자와 이를 위협하는 자와의 대립으로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실로 세계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기치아래 마치 준전시체제의 긴장과 불안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이라크와의 전운이 감돌고, 그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예정설과 함께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사건들이 더욱더 이 전쟁의 근거와 의미를 확고하게 다져주는 양상으로 발전한다.

현재 팔레스틴, 아시아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폭발사건은 미국 행정부가 명명하는 '테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의 정치적 의미는 미국행정부가 명명하는 '테러'와는 사뭇 다른 사회 역사적 맥락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집단간의 사회적 갈등과 소수 종족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된 저항은 미국의 독점권과 불균등한 세계질서에 관한 저항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미국이 정의하는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 미국정부가 테러리즘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적'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배치되어 인식되고 있는가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태생적으로 보편적일 수 없는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테러행위 자체가 일반적 범죄와 다르게, 정치적 행위라고 개념화됨으로써,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읽는가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 안중근의 도시락 폭탄 투하 사건은 일본측에게는 테러행위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독립을 위한 애국적 영웅행위이다. 어떤 시각을 갖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행위는 전혀 다른 해석을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테러리즘의 정의는 테러리즘에 대한 정책 방향 제시에 주요한 관건이 된다. 미국정부는 테러리즘을 다소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국가하부집단, 또는 비밀요원이 비전투원에 대해서 행하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계획적 폭력행위"라고 본다. 연방수사국(FBI)은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을 위하여 정부, 국민 전체 또는 일부를 위협, 강요하는 사람 또는 물건에 대한 불법한 실력 또는 폭력의 행사"라고 정의한다.

테러리즘을 정의하는 데 공통적으로 간주되는 요소는 (1)정치적 동기 (2)민간인에 대한 공격 (3)불법적인 폭력행사 등이다. CIA의 반테러리스트 센터의 부원장으로 일한 바 있는 필라(Pillar)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1)분노의 충동적인 행위이라기 보다는 미리 계획되어진 행위
(2)돈을 얻기 위해 마피아를 이용하는 집단들의 폭력과 같은 범죄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
(3)군사적 목표나 전투부대가 아닌 시민을 겨냥한 행위
(4)한 국가의 군대가 아닌 국가보다 낮은 집단들(subnational groups)의 행위

그런데 펄(Perl, 2001)은 이러한 정의가 전통적 개념에 머물려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들이나, 조직화된 비집단의 멤버 또는 개인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테러리스트들의 행위가 정치적 이유에 의해만 동기 부여되는 것만이 아니라 종교 문화적인 동기, 경제적인 이익에 의해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테러리즘의 양상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국가의 역할과 영토의 개념이 점차 모호해지는 가운데, 전쟁의 주요행위자는 국가만이 아닌, 다양한 정치적, 이념적, 문화적 집단들이 되고 있다. 그 방법에 있어서도 911 사건처럼 '틈새기술을 이용한 비대칭적 수단'으로 맞서고 있다. 더욱이 테러행위의 상징성과 심리적 위협감이 지닌 상당한 영향력과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전쟁의 한 유형으로 취급해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테러리즘이 주는 위협감을 넘어서 더 위압적인 것은 911사건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응책이다. 아프간에 대한 과도한 공격과 불량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의 과장된 강조, 그리고 반테러리즘을 위한 다양한 수단들의 정책화의 실행으로서 반테러법의 국회 통과는 미국의 패권질서 유지를 위한 정치성을 그대로 노출시킨 셈이다. 더욱이 인권의 차원에서 볼 때, 부시행정부의 이러한 대응들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캐나다 국경 강화, 이민자들의 단속, 개인의 언론, 통신 자유권 제약 등은 미국이 내세웠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테러리즘의 정의를 모호하게 만들고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가중시킨 것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이다. 부시는 테러리스트와 이를 지원하는 자들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이를 전쟁의 행위라고 규정지었다. 부시와 미 행정부가 아프간을 공격하고, 소위 불량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명명한 것은 테러 지원국들에게 가하는 엄포였지만, 이는 테러와 전쟁을 모호하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테러가 폭력적이고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면할 수 없지만, 부시행정부가 자행하는 전쟁, 역시 폭력적이고 수많은 살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부시행정부는 그들의 목적이 테러리즘과 차별되는 도덕적 우위성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과연, 미행정부에게 누가 세계평화와 자유와 정의의 기준을 주었는지 의심스럽다.

1984년 8월, 뉴욕파트 애비뉴 유대교당에서 전 미 국무장관인 조지 슐츠가 한 연설은 미국이 테러리즘을 어떻게 보는가하는 점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세계 문명과 정의의 중심이 미국에 있다는 자국중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테러리즘은 현대적 야만이다." "테러리즘은 서구문명에 대한 위협이다." "테러리즘은 서구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위협이다." 이러한 발언에는 테러리즘이 왜 발생하는가, 테러리즘의 주요 대상이 왜 미국이어야 하는가하는 성찰은 전혀 담겨져 있지 않다. 그저 테러리스트(적)들은 짐승과 같은 야만인으로서 위협적인 성가신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역설할 뿐이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을 왜 제거해야 하는가하는 정당성을 합리화시키데 그치고 있다.  
  
2) 적의 창출

세계가 군사적으로 이원화되고, 새로운 적이 끊임없이 창출되는 이 때에, 눈여겨 볼 점은 군사주의의 메카니즘이 적을 만들고 적에 대한 증오심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인간을 폭력적으로 황폐케 만드는가 하는 점이다. 왜 이슬람세계는 서구문명을 위협하는 야만인으로 전락되는가? 일반 민간인들을 군인으로 바꾸고, 죄의식 없이 적을 죽이고, 나아가 그런 행위를 애국심으로 전환하는 기제는 과연 무엇인가?

킨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와 도구적 인간(Home faber) 못지 않게 인간은 적대적인 인간(Homo hostilis)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서 라틴어 'hostis'라는 말은 내부인(insider)이 아닌 이방인(stranger)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혈연이나 종족으로 맺어지지 않은, 우리와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다름과 두려움이 갈등을 일으키고, 이는 적개심으로까지 발전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다름과 낯설음에서 오는 갈등,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인간의 역사는 이를 '안보'라는 이름 하에서 남성적 힘과 군사력으로 해결하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적 모델로서 신화가 창조, 유포된다.
신화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명한다. '우리'는 타자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타자'는 '우리'의 부정어이고, '우리'의 정체성은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확인된다. 그리하여 누가 우리의 편이고 선하고 강한 존재인지를 밝힘으로써 우리 편인 아닌, 낯선이(stranger)를 죽이는 것을 거룩한 행위로 만든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문명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는 것으로 선전되면서 이슬람권의 폭력적 야만성을 강조하는 언론보도에는 이러한 신화가 숨어있다. 국민의 기아에 무책임한 채 대량살상무기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북한에 대한 비난발언에도 미국과 그의 동맹국이 얼마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선한 존재인지 그 신화가 담겨져 있다.


3) 적의 이미지  

적의 이미지는 참 다양하다. 몇가지 특징 별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적은 잔인하다. 폭력적이다. 양심이 없다. 험악하고 무섭다. 그리고 욕심이 많다. 그래서 '적'은 우리의 가정의 안전을 항상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이다.

2) 적은 문명에 뒤떨어진 야만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의 이미지는 흑인이 원숭이보다 못하다는 차별적 선입견과 함께 흑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재현되고 있다. 인종차별과 적의 개념이 맞물리는 지점이다.

3) 적은 짐승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로 쥐, 뱀, 토끼 모양의 형상을 띠고 있다. 북한이 국가정보원에 의해 양을 탈을 쓴 늑대라든지, 잘 보이면 보이는 도마뱀의 꼬리라든지, 뿔달린 도깨비, <똘이장군> 만화에서 돼지 등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4) 적은 성적 유혹자이자 강간자이다. 순결한 여성을 강간하는 적의 이미지는 마치 민족의 순결을 빼앗고, 정의와 자유를 파괴하는 자라는 이미지로 확대 해석된다.

적이 인간 이하로 그려지거나, 짐승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우리'는 쉽게 적을 증오할 수 있고, 죽일 수 있다. 적은 마음대로 죽여도 좋은 쓰레기 같은 존재이고 악마와 같은 존재이다. 만약 적이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이미지화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쉽게 총을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적에게 우리는 인권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비인간화되고 타자화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이러한 적의 이미지는 '우리'의 그림자가 투사된 것이라고 본다. 융이 말하는 그림자는 자아가 모르고 있는 무의식의 일부인데, 일차적으로 열등한 인격, 나의 부정적인 어두운 면이다. 적은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는 열등한 면을 집단적으로 투사한 악의 원형이다. 그리되면 적은 일종의 괴물로 보이며, 이 괴물을 죽이고 약한 자들을 구출하는 영웅적 행위는 자기희생, 성전, 민족 해방 등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어진다. 유태인의 학살, 마녀사냥, 매카시 열풍, 좌익색출 등은 일종의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의 예이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개개인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를 인식할 때, 집단적으로 투사한 악의 원형의 영향에 휩쓸리지 않을 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3. 적의 이원론적 구조와 여성
  
선-악, 강-약, 문명-원시라는 이원론적 구도에서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남성=보호자, 여성=피보호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도가 강화된다. 안보의 주체자가 되지 못하는 여성들은 사회의 온전한 시민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전쟁과 관련된 포스터나 만화에서 여성을 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킨의 지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실상, 여성은 역사적으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이나 전쟁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적'으로서 여성을 명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을 안보의 주체자로 상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전투를 한다는 것이 영웅적 명예를 절하시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군사적 이원화와 적의 창출은 여성을 타자화시킨다. 일례를 들면, 아프간 전쟁동안 아프간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문제는 미국에게 정당한(just) 전쟁의 하나의 구실로서 전면에 부상되었다.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반인권적인 상황은 전쟁반대의 주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전쟁담론에는 진작 아프간 여성의 삶과 경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탈레반 정권의 원시적인 야만성을 증거하는 상징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억압적이라고 '규정된' 이슬람문화에 의해 출입도 자유롭지 못하고, 정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돌매맞는 불쌍한 피해자로 이미지화 되었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이슬람정권의 구성과정에서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주변화되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움직임은 그동안 생명을 걸고 투쟁을 해왔던 여성들의 노력에 의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전투에서의 '적'의 정복은 극단적 남성성의 표출을 필요로 함으로, 강한 남성다움이 사회의 우위적 가치로 자리잡는다. 전쟁과 관련된 어떤 것을 말할 때, '정복, 강인함'과 같은 이야기들은 남성적인 것으로 고려되면서 칭송되는 반면, '동정, 약함, 패배'와 같은 이미지들은 여성적인 것으로 비유되면서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다. 여성성을 폄하하고 남성성을 권위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부여하는 남성성의 우월의식은 전쟁의 과정과 승패를 묘사하는 은유법에서도 표출된다. 지난 걸프전쟁 당시, 공격은 강간으로 표현되고 (the rape of Kuwait), 이슬람교 식의 절을 하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들려진 엉덩이 뒤로 미사일이 꽂힐 듯한 그림은 침략의 굴욕성을 강간(fuck you)의 이미지로 대신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약자의 속성은 여성성과 동일시되면서 가치절하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고 있는가, 남녀관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를 함축한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들은 단순히 국제관계의 국가간의 정치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성적 은유가 사용되고, 확산되면서 여성의 차별성과 남성의 폭력적 공격성에 관한 사고방식이 사실화, 내면화된다는 점에서 성(gender)의 정치성이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의 폭력성은 단순히 전쟁시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의 가부장적인 성 차별성, 남성의 성폭력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전쟁과 군사주의가 어떻게 여성의 성(sexuality)을 통제하는가하는 점은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서도 목격된다. 여성을 좋은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구분하여 취급하는 이원론적 성의 구조에서 남성들이 보호해야할 '우리'의 좋은 여자가 있다면, 강간을 해도 좋고 물건처럼 다루어도 되는 나쁜 여성 즉, 적의 여성이나 성매매에 있는 여성들이 있다.

지난 보스니아의 전쟁 때, 강간이 적의 종족 말살이라는 군사적 전략으로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다. 적이 보는 앞에서 적의 아내를 강간하고 다른 종족의 아기를 갖게 하는 고의적 강간은 동티모르 독립투쟁운동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인도네시아 군부는 동티모르의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매 6개월마다 동티모르 여성들에게 불임을 위한 강제 주사를 주입함으로써 여성의 성과 출산권을 통제한 바 있다. 남한과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네덜란드의 일본군위안부의 문제는 전쟁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극단적이고 전형적인 사례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만 7천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남한에는 이들을 위한 매춘여성들이 기지촌의 주요 경제를 담당하며 상주하고 있다.


4. 성별화된 반공주의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염원할 때, 그 표현이 남녀의 사랑으로 많이 비유되곤 한다. 오랫동안 헤어져 만날 수 없었던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만나야 한다는 노래(직녀에게)나 철선 끊긴 기관차를 타고 그리운 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읊는 시(녹슨 기관차 가득히 꽃을)가 그것이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듯이, 흔히 북한은 여자로 남한은 남자로 동일시되면서, 남북통합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결혼준비를 잘 해야 하는 부부준비의 노력과정으로 비유된다 (전우택: 2001, 3-4).
사실상, 여성과 남성의 성적인 관계로 은유되는 통일이야기는 여성화된 북한과 남성화된 남한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식민주의 담론에서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서구사회는 남성적 문명의 중심인 주체(Self)로서, 비서구사회는 여성적이고 원시적인 타자(Other)로서 구성되면서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의 관계는 성별화된 성적은유로서 설명된다. 남성화된 지배자인 주체(Self)와 여성화된 종속자 타자(Other) 사이의 정형화된 관계를 통일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쉬리>이다. 영화<쉬리>는 오랜 역사동안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비인간화시켜왔던 반공주의를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기반으로 성별화시키고 있는 경우이다.


4-1. 여성화된(feminized) 북한과 남성화된(masculinized) 남한

먼저, <쉬리>가 표현하는 북한과 남한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북한은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암시하듯이, 원시적인 폭력성과 잔인함, 조국통일을 위한 개인희생, 고집불통같은 확고한 의지의 특징들로 표현된다. 남북한의 2002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리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분단의 역사적 책임을 기존 정치가들에게 돌리며 남북한의 대통령들을 살해하고자 계획한 북조선 8군단의 대장인 '최민식'의 통일관은 아사 직전에 처한 대다수의 인민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나, 상당히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이라는 점을 남한의 OP요원인 '한석규'를 통해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최민식'과 8군단 요원들은 다소 근시안적이고,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융튱성 없는 인상을 준다. 북조선의 인물묘사는 8군단 단원들의 무표정함에서 극단화되는데, 이는 그들의 투철한 통일사업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면서도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도 도구화될 수 있다는 것을 다소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반면, 남한의 OP요원인 '한석규'와 '송강호'는 합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며, 거시적인 안목, 치밀한 논리와 분석력을 갖춘 인물로 구사된다. 특히 두 집단의 대조적인 인물 특징의 표현은 그들이 등장하는 배경에서도 드러나는데, 남한의 OP 사무실은 어항을 인테리어로 장식할 만큼 여유있고, 인간적이고, 세련되었으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첨단 장비들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의 훈련장면은 현대적 무기장비 실행이 아닌, 원시적인 육체적 훈련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살육의 피 튀기는 장면과 함께 비인간적인 과정으로 묘사된다. 또한 북한의 군사력 현실은 그들의 작전수행을 위해서 남한의 CTX 액체포탄을 절도하여 이용할 만큼 열악하고 열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적이고, 지적이고 문명화된 남한, 그리고 야만적이고, 육체적이고 원시적인 북한의 대조적 묘사는 여주인공의 이중적 여성상과 결합된다. <쉬리>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김윤진'은 두가지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비밀첩보요원인 '이방희' 역의 강인하고 일의 목적성이 투철한 여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한의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이명현'역의 애교스럽고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이방희'는 남자들도 견디기 고된 군사훈련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결국 북한 8군단의 비밀첩보요원으로 남한에 파견된다. 그 군사훈련은 참으로 잔인하고, 극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악발이처럼 생존해야하는 실제훈련으로 연출된다. 이러한 훈련을 바탕으로 '이방희'는 단 총알 두발로 주요인사들을 암살하는데 성공하고, 이러한 그의 철저한 테러행위는 남한의 OP요원들에게 악명높은 공포가 되기도 한다. 그의 모습은 목적의식적이고, 철저한 사명의식과 한치의 실수도 없는 일 솜씨, 강인함, 냉정함, 대담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방희'가 위장한 남한 여성, '이명현'은 '한석규(애인 역) 없이는 한시도 못살 것 같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의 사랑에 대한 고상함은 '키싱구라미'라는 관상용 물고기의 특성에서 대신 표현된다. '키싱구라미'는 상대 짝이 죽으면 자학을 해서라도 따라 죽는 열녀같은 특성을 지닌 물고기이다. '이방희'는 애인의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면서 애인과의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여인이다. 그는 헌신적이고, 밝고 명랑하며, 예민한 물고기들의 특성을 다 기억하고 돌보는 섬세한 성격으로 연출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남한여성 '이명현'의 사랑스러운 여성 이미지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남한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반면, 북한여성 '이방희'의 강한 여성 이미지는 원시적 폭력성과 무모한 북한사회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표1> 성별화된 북한과 남한의 이미지


4-2. 남성화된 남한의 통일로    

첩보원인 북한여성과 OP요원인 남한남성은 마치 통일의 미래상을 그리듯 서로 결혼을 약속하며 애정을 나눈다. 그런데 북한여성은 시간이 갈수록 이 사랑 앞에서 첩보요원인 '이방희'라는 여성과 위장된 '이명현'이라는 여성간의 갈등과 충돌에 직면한다. 이 갈등은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북한여성상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세련되고 섬세한 남한여성상을 선택하느냐 하는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갈등은 애인인 '한석규'와의 맞대결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서로 총을 겨누고 선 두 남녀의 대결의 긴장감은 결국 세련되고 섬세한 남한 여성상, 사랑 지상주의를 바탕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상의 선택으로 끝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원시적인 타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승리이자 문명화된 남한으로의 흡수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북한 신세대 첩보요원의 과격한 통일관을 열정적으로 영상화함으로써 기존의 반공주의가 보여 준 적대감 보다는(권혁범, 2000) 좀 더 세련되게 재현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북한의 이미지는 여전히 야만스럽고 폭력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은 남한이 개발하고 구원해야할 타자일 뿐이다.
둘째, 북한여성의 목적의식적이고 강인한 여성상은 여성의 본래적 모습이 아니므로, 사랑스럽고 고운 남한 여성상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남한여성상은 정상적인(normal)인 여성상으로 간주되고, 냉정하고 대담하게 과업을 성취하는 북한여성상은 비전형적인 여성상으로 가치절하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전투적인 여성상은 폭력적인 북한의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본래의 여성의 모습이 아닌, 변종된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진짜 여성상'은 남한여성처럼 남자에게 헌신적인,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마지막 나레이션에서 여주인공의 정체성에 관하여 자문한다. 여주인공은 분단의 역사가 낳은 '이명현'이도 아니고 '이방희'도 아닌 '그냥 나'이고 싶음'을 표명한다. 그러나 '그냥 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따스하고 화사한 스웨터를 짜는 여인임을 암시한다. '그냥 나'로서의 여성이란 국가나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적인 여성, 남성의 상대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자율적인 여성이어야 할텐데 (김은실, 2001: 46-47), 영화 <쉬리>는 '그냥 나'이기를 원하는 여성을 여전히 남자와 태아와의 관계에서 위치지우고 있다. 나아가 분단의 현실이 한 북한여성을 '진짜 여성됨'으로 만들지 못하고 머리가 9개 달린 히드라 여신으로 만들었다며 분단역사의 아픔을 고백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이 '그냥 나'로서 있지 못한 원인을 성차별적 가부장제 사회가 아닌,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만으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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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군사주의

PEACE MAKING (이화여대 여성학과)

다음은 여성학과 소모임 PEACE MAKING의 페미니즘과 군사주의에 대한 연구논문입니다. 논문은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논문에 대한 의견은 세 번째 논문 맨 끝에 나와있는 e-mail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Ⅰ.페미니즘과 군사주의에 대한 시론
김정미(여성학과 석사 졸업), 정추영(여성학과 석사 4학기)

1. 분단, 남성적 폭력성, 군사주의

PEACE MAKING은 이름 그대로 여성중심의 평화에 관심을 갖고 시작된 모임이다.
우리는 한국여성의 상황이 평화롭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평화를 무엇으로 정의하건, "한국여성의 평화를 저해하는 조건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우리의 초기의 문제의식은 분단이 여성의 삶에 질곡이라는 점에 천착하였다. 그래서 분단, 통일과 관련된 논의들로서 '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송두율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이우정 외 [여성, 평화, 생명], 또 하나의 문화 통일소모임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 '등을 읽었다.
그런데 이들 논자들이 분단의 극복을 논의하는 방식은 대부분 체제가 벌이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다루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통일의 당위성, 분단이 낳는 모순, 통일의 방법론 등과 같은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둘 뿐 사회문화적 통합의 중요성은 부각시키지 않았다. 다만 '또문 소모임'이 체제가 아닌 남북한 사람들의 사회문화적 통합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외에 통일논의에 여성이 개입할 때 여성스스로를 규정하는 특정한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여성, 평화, 생명]{{) 이 책은 교회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쓰여졌는데, 통일과 여성문제를 최초로 제기하고 운동차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주로 교회쪽이란 걸 생각하면, 이들의 관점은 앞으로 여성과 통일과정에 개입하는 다수이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어머니로서 여성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성역할의 고착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어 염려되며 이들의 추이를 지켜볼 만하다.}}에 나오는 '통일의 주체로서 여성민중, 생명의 담지자로서의 여성, 평화를 이루는 여성, 민족의 어머니'와 같은 식이었다. 이것은 군축논의에 여성이 개입할 때에도 똑같이 반복되었는데 여성을 일차적으로 어머니로 규정하면서 이것과 연관된 속성, 즉 인내, 희생, 돌봄수행자의 역할을 전사회적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이들이 어머니와 연관짓는 특정한 속성들이 결국 이들 자신들이 비판하는 가부장적, 전통적 여성상과 유사하다는 것에 우리는 의아심을 품고 분단과 통일 관련 논의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민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여성학적 이해가 요구된다는 판단하에 그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본 글들은 정현백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김은실 '민족담론과 여성:문화, 권력, 주체에 관한 비판적 읽기를 위하여', Zillah Eisenstein 'Hatred' 등이다.
이 글들을 통해 민족주의 운동 내에서 여성이 주변화되고 수단화되는 현상에 접할 수 있었다. 민족주의 담론 내에서 여성은 때로는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는 희생자로, 때로는 민족전통의 원형으로 상징되는 등 남성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중적으로 정의되는 수단적 존재한 결과 민족개념 자체가 남성중심적이며 민족주의 역시 성차별적 이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족주의가 여성을 동원하고 수단화하기 위해 특히 가부장적 여성성/남성성과 민족성을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측면을 통해 우리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에 착목하게 되었다. 초기부터 관심을 유지해 왔던 분단상황의 유지와 강화 역시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과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였다.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과 그것의 정당화 및 강화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이 글에서처럼 분단체제에 대한 논의를 통할 수도 있을 것이며 민족주의 관련 논의를 하는 가운데서 다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이들 셋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대적 관계인 북조선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민족전통을 수호하는 일이 여성성/남성성의 절대적 이분법을 정당화하고 강화하였지만 그 유기적 관계가 여성중심으로 연구되거나 공론화된 적은 거의 없다. 이런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분단상황과 민족전통을 수호하는 일에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 공통적으로 결부되게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게 하는 '그 무엇'의 존재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민족성을 수호하는 일과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의 정당화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므로 특수한 조건으로서만 분단을 염두에 두지만 분단이 아니었다면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분단상황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은 존재해 왔고 그것이 민족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분단사회의 성격으로 인해 인해 특히 부각된 것이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과 그로 인한 성차별, 가부장적 여성성/남성성과 민족성의 동일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달리 말하자면, 분단된 남한의 수호와 민족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가부장적 여성성/남성성을 비호하는 것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무엇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둔다.
분단으로 인해 남한사회는 적으로부터의 자기방어를 위해 조직적 폭력을 준비해야함을 사회적 각성제로 사용하여 왔다. 6·25 내전을 겪은 이후, 반공주의가 이룩한 것은 반공을 내걸고 자행되는 폭력의 행사가 정당하다거나 혹은 그것이 폭력의 범주에서 제외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체제수호를 위해 정당화된 폭력행사와 그 준비기관인 군대에서의 남성사회화는 정당한 폭력의 범위를 결정하고 그 범위를 확대시키는데 골몰했다. 이런 노력들은 폭력에 대한 불감증을 낳았으며 적대적 관계를 상정하는 물리적 폭력성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변종들을 만들어 냈다. 반드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적대적 관계를 연상시키는 흑백논리, '나'만이 옳다는 생각,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타자화 등이 그런 예들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폭력성은 남성성의 속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폭력적 남성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적 남성성이란 남성의 폭력행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남성다움의 속성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이성적 남성, 감성적 여성의 매치가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것처럼 폭력적 여성(성)보다는 폭력적 남성(성)이 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폭력성이란 주로 육체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물리적 폭력성을 의미한다. 여성 역시 조직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폭력적 남성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이 같은 결연이 분단상황에서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여겨지며 물리적 폭력의 행사자가 되기 힘든 약자(흔히 여성)를 열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군대 내에서만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아닐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한국사회전체의 지배적 사고가 되는 것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의 삶에도 왜곡을 가져올 수 있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흑백 논리, 나만이 옳다는 아집, 약자에 대한 타자화 등은 주로 남성이 생산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리적 폭력성이 학교·군대·가족 등에서의 사회화를 통해 남녀 모두에게서 자행될 수 있도록 문화적 외피를 입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얼핏보면 이런 문화적 폭력들이 몰성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물리적 차원에서의 폭력적 남성성이 모든 사회적 관계들에서 실현될 수 있는 일상문화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앞서 말한 흑백논리 등은 폭력적 남성성이 문화의 탈을 쓰고 나타나 전체사회를 폭력성의 영향 아래 두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단순히 폭력적이라 부르는 행위와 사고방식들이 사실은 남성적인 것에서 파생된 '남성적 폭력성{{) 한국사회가 남성적 폭력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평가하는 조형은 남쪽 사회구조가 일상적으로 표출하는 분단체제적 속성, 특히 상징적 폭력성을 문제삼는다. 그에 따르면 " '우리' 아닌 '남'을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적대시하는 경직된 흑백논리는 전형적으로 남성적인 논리이며, 이것이 폭력성과 결합되고 보편화된 것은 분단체제와 무관하지 않다(조형 1997)."고 한다. 여기서 차이는 나와 우리를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에 따라 지역, 계급, 민족, 성, 학력, 연령 등이 다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특히 성에 의한 차이가 어떻게 사고되는가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가부장적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에 분단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폭력적 남성성을 정당화시키며 나아가 사회전체를 남성적 폭력성의 지배하에 놓이게 만드는 군사주의를 통해 남성성/여성성의 조작과정을 이해하려 한다. . }}(조형1997)'인 것이다.
물리적 폭력성이 상대적으로 쉽게 성별권력관계의 관점에서 논의되는 반면, 문화적 폭력성은 비교적 몰성적인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폭력성이 성별의 권력관계에서 유래한 것을 발견하기 힘든 것은 왜일까? 이런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적 폭력의 동원을 준비하도록 하며 그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사회적 신념인 군사주의에 대해 여성주의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문화의 형태로 나타나는 남성적 폭력성에 남녀 모두가 익숙해지고 그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결여하게 만드는 것이 일상화된 군사주의의 영향이라고 판단에서이다. 이 경우 군사주의가 용인하는 폭력성이 남성적 폭력성이라는 것은 군사주의가 본질적으로 성차별적 이념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하며 이런 측면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개입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폭력성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사실상 남성적 폭력성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우리는 군사주의의 의미와 그 작동을 여성주의 입장에서 설명함으로써, 반공주의를 필두로 한 남성적 폭력성이 사회의 지배적 성향이 되었던 것과 그로 인해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폭력이 자행되었던 것이, 일상문화의 형태를 띤 남성적 폭력성을 조장하는 군사주의의 작동임을 말하고자 한다. 달리 말해 한국사회에서 문화적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된 배경에는 성차별적인 이념인 군사주의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군사주의가 문화적 폭력성의 양상을 띰으로써 얻는 효과는 일상의 영역으로 침투하여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사고와 행위를 군사주의적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물론 군사주의는 군대제도, 조직운영방식, 전쟁의 조장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고 그 성차별성 역시 다각도로 지적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는 군사주의의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들을 논의하고자 던지는 물음은 "여성의 입장에서 군사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신념이 무엇인가?", 또 "만약 군사주의가 성차별적 신념 혹은 남성우월주의를 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국사회의 어떤 특징에 기인하는 것인가?"이다. 다음 장에서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군사주의와 그것에 대한 페미니즘의 해석을 염두에 두고 이 질문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하겠다.

2. 군사주의(militarism)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

{{) 이 장에서 이야기되는 군사주의는 인로(Enloe)의 저작들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고 정리한 내용들이 많다. 그녀는 국제정치학자로서 국지전의 사례들을 통해 여성이 전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이 과정에 민족주의와 군사주의가 결합하여 여성을 수단화하는 측면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주장은 단일민족국가로서 민족의식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우리 사회를 면밀히 조명할 수 있는 분석적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
군사주의 이론, 군사주의적 현상으로 이해되는 것들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을 위해 먼저 군사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해 방식을 알아보기로 하자. 군사주의로 지칭되는 현상들이 일반적으로는 군국주의로 설명되는데, 이는 'militarism'이 맥락에 따라 달리 번역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제도 중심의 사고를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의 제관계들을 적대적 관계로 상정하며 경제적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유기적 관계를 설정하는 맑시즘 내에서
군국주의{{) 물론 맑스주의자들의 글인 아래의 인용에서는 군국주의라 지칭하였지만, 우리는 이 인용에 제시된 군국주의에 대한 설명이 내용상 군사주의로 대치하여도 큰 차이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성별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맑시즘 자체가 성별의 문제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는 적대적 계급 사회에서 그 사회를 지배하는 착취 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내외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만든, 반동적이고 호전적인 지배체계 및 조직 체계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징적인 것은 군국주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걸친 삶 전반을 지배한다는 점이며, 이러한 가운데 중앙 집권적인 국가 권력을 토대로 군사적 조직 형태에 의한' 명령과 복종'의 원리에 따라 군사력을 사용하여 대내외적으로 호전적인 정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 권력 자체가 군부 출신의 집단에 의해 관리되는가 혹은 민간인 출신의 집단에 의해 관리되는가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이다. ..군국주의가 제국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사회정치적 발전의 합법칙적 결과로서, 단순한 군사적 활동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군국주의는 "처음에는 군대 자체로서 나타나며, 다음에는 이것을 넘어서 군대조직망과 반(半)군대조직망으로 전사회를 엮어 내는 체계로서....급기야 우리의 모든 공적, 사적 일상 생활 전체를 군대식의 사고방식으로 침식하는 체계로 나타난다. (철학대사전 1989. 164-165)
이같은 이해가 군사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방식이라면, 여기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개입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한국에서 군사주의의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군비증강을 통해 민족국가의 군사대국화를 우려할 때가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군사주의는 민족국가 내에서의 지배권력의 작용, 군사적 무장으로 이해되기보다 국가간의 침략적 성향의 문제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상한 현상은 한국 내 군비증강이나 한국군이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군사주의의 관점에서 논의되지 않는 점이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 군사주의로 호명되는 것은 외국의 경우를 설명할 때에 한해 인정된다.
이를테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들이 그 곳 여성들을 강간했던 사실은 한국인의 군사주의적 행태로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군의 사례는 단지 개인남성들의 부도덕한 행위의 차원으로 이야기될 뿐, 여성에 대한 집단적·구조적·체계적 폭력으로서 공론화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한국군의 성범죄에 대해 침묵하는 것과 달리, 일본군의 성범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현상에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군대가 여성을 성적존재이며 욕망의 배출구로서의 의미를 갖도록 조장함으로써, 일신의 자유를 애국심의 달성이라는 명분을 위해 구속받는 군인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군대자체의 존립을 이어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군의 이런 성범죄에 대해 집단적으로 침묵하는 우리 사회는 집단적 폭력의 동원을 정당화하는 군사주의가 지배적인 사회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이 경우 군사주의가 정당화하는 폭력성은 남성에 의해 행사되며 남성의 이익을 추구하는 남성중심의 폭력성이다. 이것에 의해 한국군의 성범죄는 범죄로서 부각되지조차 않는다.
두 예의 실상은 남성적 폭력성이 유발한 범죄이지만, 국가의 제국주의(혹은 패권주의) 성향에 의한 범죄로 거론되게 만드는 것이 군사주의의 작용이므로 이 점은 여성주의의 비판을 통해 바로잡혀야 할 부분이다. 기존의 군사주의라는 자로 잴 수 있는 현상은 부분적 사실일 뿐이다. 무엇이 군사주의가 남성중심적 이념인 것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폭력성을 남성다움으로 인식하는 것의 문제이거나 성차별에 대한 인식결여일 것이다. 혹은 군사주의가 일상화되어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발생한 의도적 효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군국주의(軍國主義)로 불리며 국가 간의 침략적 성향, 군비경쟁 등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이론적 논의도 성별의 관점에서 현상을 파악하지 않게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군대문화/군사문화/군국주의/군사주의 등으로 불리우는 일련의 현상들에 성별의 관점을 개입시켜 해석해야 하고,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 두 예를 재해석한다. 군사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개입시키는 것은 위의 베트남에서의 사례를 전혀 다르게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언급한 바대로, 이 사례는 남성군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군대가 이들의 다양한 욕구배출의 경로를 성관계로 집중시킨 결과 여성들이 군인들의 욕망의 배설구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역사적 사례이다. 유사한 사례로서는 일본군위안부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이 쟁점화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자들은 일본군위안부의 문제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군위안부제도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을 군사화에서 발견하는 연구(강선미·야마시다 영애 1993)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연구는 성폭력의 범위를 집단적·구조적 폭력의 범위로까지 확대함으로써 한국인 군위안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일반적 폭력임을 말하고 있다. 즉 군사화된 사회구조에 의해 여성에 대한 집단적 구조적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을 주장한다
하지만 군위안부 문제가 대중적 관심을 얻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조선여성에 대한 침탈 즉 국가 간의 범죄 중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범죄라는 것을 강조할 때이다. 그래서 일본정부의 지시하에 군인들이 저지른 범죄는 군사주의(일반적으로는 군국주의)로서 논의된다. 이런 인식이 부각시키는 것은 국가이지 남성이 아니며 국가가 확장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여성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식의 결과론적이며 우연적인 판단이 사건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군위안부 제도가 일본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운영되었으므로,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의 강간사례보다, 가시화시키기 쉬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성범죄인 두 사례가 사회적 담론(discourse)으로 구성되는 방식은 군사주의가 이해되는 과정이 성별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결여한 채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군사주의의 작동이 성별의 관점을 배제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군위안부 문제가 한국정부에 의해 일본에 제기되기까지 존재했던 피해자 여성들의 저항감과 가해자 남성들의 침묵,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군의 베트남 여성강간에 대한 침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역설적으로 아마도 그것은 국가간의 범죄로 보여지는 현상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violence against gender)를 핵심기반으로 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나아가 이는 군사주의가 정당화한 전쟁이 성별의 이분화를 공격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나 이 현상의 의미를 단순히 국가 간의 범죄의 문제로 제한시켜 인식하게 하거나 개인 남성의 부도덕함으로만 이해하게 만드는 군사주의의 특징을 말해준다. 즉 군사주의는 무엇으로 일컬어지건 그것에서 성별의 관점을 배제한 채 인식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군국주의로 불리우는 현상들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군사주의'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어떤 차이를 낳는가? 우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군사주의를 재정의하면, 군사주의는 폭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남성성을 정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신념의 체계이자 제도이다. 군사주의를 내면화하는 성별은 남성에 국한되지 않으며 여성 역시 그 행위자가 될 수 있다. 또 군사주의는 군대{{) 일반적으로 전체사회의 일부인 군대집단의 문화는 군대의 경험을 공유하는 남성들의 문화이다. 따라서 군대문화를 향유하고 유포시키는 주체는 남성집단에 한정된다. 군대/군사문화가 전체사회문화의 하위문화로서 인식되고 그 문화의 직접적인 제조자가 남성에 한정되는 것은 여성이 그 문화에 포섭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군사문화가 지칭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현상을 포괄한다.
이런 것들과 달리 군사주의는 군대의 하위문화만도 군비 경쟁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이념만도 아니며 이를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현상을 지칭한다. 우리사회에는 군사주의보다는 군대/군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폭력적 남성성의 정당화와 확산을 설명하는 일이 더 흔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남성중심적 이념인 군사주의가 1세계와 3세계 남성들간의 위계 속에서 남성들도 피해자로 만드는 점과 여성들이 군사주의의 적극적 향유자가 되는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군대/군사문화보다는 군사화(militarization)와 군사주의를 도구로 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이 조장되고 묵인되는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군사화는 병력증강 및 군인의 정체성에 남성우월주의를 각인하는 과정이며 이것의 사회적 유포를 포괄하는 과정으로서의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군사화는 물질적 병력증강을 포함하여 정신적 세뇌에 이르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과정이다. 본 연구는 군사화의 결과 우연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비의도적으로 저질러지는 개인적 측면보다, 그 과정이 의도적으로 여성 혹은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점을 중요시한다. 군사화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묵인하는 가부장적 성별 정치학에 기반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군사화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군대가 개입된 역사적 사례에서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자행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다시 말해 집단적·개별적 폭력을 훈련한 군사화의 결과 '우연히' 여성이 폭력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군사화를 통해 구성되는 군사주의는 '남성우월주의적 성별정체성의 각인을 통해 공격성과 조직적 폭력동원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신념이자 제도'를 의미한다. 군사주의는 고정되고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가 군대를 정당화하면서 군대식 문화를 수용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각인시키는 군사화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한국에서의 군사주의 역시 성별화된 군사화의 결과인데,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배경으로 여성/남성,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와 가치체계에 대한 신념이자 그것의 제도화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성숙(1998)의 연구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녀는 한국의 충·효 사상이 군인을 통제하는 이념적 기제가 됨을 적적히 설명하고 있다.}}.

군사주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같은 접근은 국가나 민족이 우선되는 기존의 논의방식이 현상에 내재한 성별 정치학을 은폐한다는 여성주의적 인식을 반영한다{{) 군사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론은 인로(Enloe 1994))의 견해에 따라 이해해 보기로 하자.
기존의 군사주의자들의 논의는 국가중심의 이론과 자본중심의 이론으로 구별된다. 이런 두 경향은 군사주의를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관계를 경제적 관계로 인식함으로써 군사주의의 맹아와 군사주의를 영속화하는 자원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논의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호기심도 결여되어 있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그 무시된 영역들에서 군사주의의 맹아와 그것을 영속화하는 자원을 발견하며 군사주의를 만들어내고 재생산시키는데 여성성/남성성이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권력에 관한 이들의 분석은 여성성/남성성의 조작이 군사주의의 결과일 뿐 아니라 군사주의의 원인이 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런 분석은 군사화/군사문화/군사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할 때 가부장적 성별정체성을 중심잣대로 활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군사화를 성별화된 과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여성성/남성성의 개념적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시대적 배경에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을 뜻한다. 즉 남성성과 군사주의 사이의 연계와 그 연계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문화에 속한 남성들이 국가에 의해 형성된 여성성/남성성의 개념을 가지게 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

3. 군사주의의 작동

군사주의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 군사화의 필수적 논리인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 한국적 매개인 징병제, 군부통치의 경험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군사주의의 작동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일반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군사화를 유발하는 군사주의의 매개는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다. 군사주의의 작동은 남성으로 하여금 남성우월주의를 각인하도록 하고 이를 기반으로 여성 비하·성적대상화를 유도하는 것에서 발견된다. 이 방식은 군대에서의 사회화를 통해 전쟁부재의 시기에도 작동한다. 이는 군대가 남성들에게는 남성들이 그들의 우월성을 각인하는 동시에 여성을 성적존재로 폄하하는 장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군경험자들은 군대를 통해 많은 성지식과 음담패설을 배우고 여성을 오로지 성의 대상으로서 인식함으로써 여성비하의식을 당연시(조성숙 1998. 173)하는 것에서 그 점이 드러난다. 더욱이 한국의 병역제가 지원입대가 아닌 의무병제인 것은 이런 성향을 강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의무병제는 개인남성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남성우월주의를 각인시킨다. 지원병제인 미국에서 군인은 복지혜택이 탁월한 '직업'으로서의 의미를 갖지만(Enloe 1994) 우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심화시켜 이해하기 위해 군사화의 제도적 과정으로서 군대가 한국의 맥락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한국의 6.25내전과 군부통치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군대 및 군부와 관련된 영역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내전 이후 지속된 분단체제에서 군대의 필요성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으며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이 공유하는 군대에서의 사회화 경험은 전체 사회로 이식되기에 충분한 시간과 강도를 유지해 왔다. 적대적 인간관의 각인과 초인적 극기를 요구하는 육체적 훈련, 상급자에 대한 절대복종은 군대에서의 사회화가 달성해야하는 목표였다. 남성들의 군대 사회화 과정과 군부통치의 장기화는 전체 사회에 군대식의 삶을 이식하는 충분한 토양으로 믿어져 왔다. 그래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 내 문화와 사회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현상 등이 쟁점이 될 때, 일반적으로 그것을 군대문화와 군부통치의 영향에서부터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군사주의는 권위주의적인 의사결정 방식과 폭력적 문제해결로 일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위에서처럼 징병제, 군부통치와 군사주의의 관계를 검토한 것은 군사주의가 남성독점적인 군대와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군부통치를 통해 남성적 폭력성을 정당화하고 사회로 유포시키는 점에 기인한다. 이는 한국의 군사주의를 이해함에 있어 징병제와 군부지배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군사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경제적 관계, 제도적 차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탈피하여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징병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젊은 시절의 일정기간을 군대에서 사회화되도록 하며, 군대경험을 거친 남성들이 사회의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주체로 인정받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징병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박정희 정권 이후 지속된 군부통치는 군대식 시스템이 사회발전에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반공주의와 더불어, 전국민의 머릿속에 심어놓았다. 즉 두 요소들은 군사주의가 일상문화 속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한국적이며 대표적인 매개로 판단된다.
군대는 본래적으로 남성의 공간으로 인식되며 군사주의가 군대를 직접적인 유포의 수단으로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군대가 없어지면 폭력적 남성성과 군사주의의 정당화가 동시에 소멸될 것인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쉽게 해답을 결정하기는 힘든데, 폭력적 남성성과 군사주의의 결합은 단순히 군대에만 기원을 둔 것도 아니며 군부통치가 아니었다면 없어졌을 그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군사주의의 결합은 국가, 민족, 생산양식과 같은 체제의 측면이 아니라 일상에 침투하는 문화적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는 여성의 관점에서 이해되기 힘들다. 군사주의는 여성을 사물화시키고 대상화시키면서 작동한다. 대상화된 여성성의 반대편에는 주체로 구성된 남성성이 존재한다. 즉 군사주의는 이분법적 남성성/여성성의 조작을 통해 존재의 기반을 구성하지만 구성된 여성성/남성성을 통해 군사주의는 오히려 은폐된다. 즉 군사주의는 적대적 인간관계관에 기초한 폭력적 남성성과 남성우월주의를 매개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신념이지만, 여성성/남성성을 생물학적 남녀에게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으로 이해하도록 조장함으로써 그 작동을 드러내지 않는다.

3.1 이분법적 여성성/남성성의 각인

군사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분화된 여성성/남성성의 각인이 필수적이다. 실재하는 여성과 남성이 성별의 속성을 이분법적으로 내면화하지도 발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전투를 임무로 하는 군대의 구성원들은 주로 남성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처럼 전시체제하의 국가가 여성도 군입대를 의무로 하는 것과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투에 필요한 공격성과 육체적 힘이 남성에게 있음을 전제한 사고이며 생물학적으로 정당화된 신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생물학적 성차가 아니라 이에 기반해서 이루어진 남성과 여성에 대한 문화적 신념이다.
군대가 생물학적 남성을 가부장적 남성성을 내면화한 존재로 사회화시킨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사실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군대사회가 남성독점적이므로 남성중심의 문화를 형성하고 군부출신의 집권자의 통치방식이 남성중심적인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는 사회적 신념이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동어반복적 이해이다. 오히려 생물학적 남성들이 군대를 통해 남성우월주의적인 문화를 구성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그 무언가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물학적 남성/여성집단이 반드시 남성/여성중심적 문화를 형성하라는 법은 없으며 만약 군대가 남성만의 조직이라서 남성중심의 문화를 형성한다면, 군대에서의 여성비율증가가 성평등문화의 구축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여군이 아름답고 수줍어할 줄 아는 존재, 즉 가부장적 여성성을 갖춘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대중매체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군대 내 여성비율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생물학적 성에 따라 가부장적 여성성/남성성을 내면화하는 문화를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심지어 군대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진 서구의 경우, 군대에 가부장적 의미에서가 아닌 다른 어떤 여성이 '존재한다, 참여한다'고 인식되는 것의 허구성이 지적되기도 한다(Stiehm 1983). 군대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가부장적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를 통해 군사주의가 남성들로 하여금 가부장적 성정체성을 구성하도록 할 때, 생물학적 남성들이 우월한 가부장적 남성성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진급하는 계급체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급자의 경험이 어떠하였든 일단 상급자가 되면 과거 하급자로서의 경험은 주변화된다. 이들은 상급자로서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뿐 다시 그 경험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급자의 경험은 상급자로의 진입을 위한 전제조건 정도로 인식되며 진지한 사고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일쑤이다. 군대의 계급체계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므로 하급자는 곧 여성화된 위치이다. 하급자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위치이며 이는 가부장적 남녀관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갖는 의미와 동일하다. 징집된 모든 군인들이 이런 하급자의 경험을 거쳐 반드시 상급자로 진급하는 것은 어떤 함의를 갖는가? 상급자가 되었을 때 하급자의 경험을 돌이키기도 싫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타자화시킨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경험을 타자화시킨 결과 이들은 상급자의 위치만을 열망하며 곧 거기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본적 전제인 남성주체를 구성한다. 남성들은 하급자의 경험을 거쳐야만 상급자가 될 수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경험이 상급자로서의 그것에만 국한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듣는 타자가 여성일 경우 하급자로서의 경험은 무시되고 상급자로서의 경험만이 군인으로서의 경험으로 부각된다. 하급자로서의 경험이 이야기되는 맥락은 육체적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을 경우에 한한다. 하급자로서 겪었던 인간이하의 경험은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는다. 이처럼 군대에서의 남성사회화는 생물학적 남성과 가부장적 남성성을 결합시키는데 이는 계급관계에서의 하급자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급자로서의 경험은 성별관계에서 곧 여성의 경험과 유사하며 군대생활을 통해 남성은 하급자(여성적 위치)와 상급자(남성적 위치)의 경험을 순차적으로 하게 된다. 하급자로서의 비참하고 굴욕적인 과거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므로 군대생활 내내 보호자 남성으로서의 우월성을 세뇌받음으로써 군인들은 문화적 남성, 즉 우월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것이 군대사회화를 통해 남성들이 이분화된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확신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남성들이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한 폭력적 남성성을 내면화하는 것, 즉 이분법적 여성성/남성성을 각인하는 것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군대는 권력과 결합하여 남성성/여성성을 이분화시켜 구성하는 사회화의 공간이다. 조성숙(1998)은 남성성/여성성의 조작이 폭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군사주의를 유발함을 보여준다. 그의 설명대로 한국의 경우에도 초인적인 극기를 요구하는 군대생활을 이겨내게 만드는 정신적 장치는 남성우월주의의 내면화에 있다. 보호자로서 남성은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남성적이다. 군에서 강하다는 것은 곧 폭력과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남성성에 대한 강조가 강하면 강할수록 폭력은 조장되고 묵인된다. 또한 성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것이 보호자로서 남성의 정체성을 조작하는 군사주의가 동시에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용인하도록 만드는 경로이다.

3.2 이분법적 여성성/남성성과 민족성의 동일시

글의 시작에서 군사주의가 일상화되어 나타나므로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 이를 상기해 보기로 하자. 폭력적 남성성을 정당화하여 사회전체를 폭력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군사주의는 일상화될 필요가 있다. 일상화된 모든 것들에서 우리가 의미를 되새기기 힘든 것처럼 일상화된 군사주의 역시 비가시적이며 은폐되기 마련이다. 특히 생물학적 남성이 가부장적 남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폭력적 남성성을 각인시키는 군사주의의 면모가 드러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정체성의 조작이 군사주의의 주요한 기제임이 드러나는 것은 그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실은 은폐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군사주의의 작동이 가장 잘 은폐되는 것은 이분화된 여성성/남성성을 민족성과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에서이다. 이분화된 남성성으로 인해 남성은 민족의 수호자로 간주된다. 이분법적 여성성/남성성에 기반하여 전투의 남성성을 강조하고 폭력적 남성성을 옹호함으로써 남성들이 자민족 여성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남성을 민족의 수호자로 인정하는 이같은 사고방식은 민족성/민족주의를 외피로 하여 자신의 성차별성을 은폐하는 군사주의의 작동인데, 실상 전쟁의 예들에서 보았듯이 자민족 여성을 수호하는 남성이 타민족의 여성을 강간하는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즉 민족의 경계를 넘어가면 성폭력의 행사자가 되는 자민족 남성을 여성의 수호자로 간주하도록 몰아가는 사회적 담론 구성에서 군사주의의 작동이 발견된다.
남성을 민족의 수호자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에서는, 앞서 예를 든 타민족 여성에 대한 강간과 매매춘은 타민족 남성의 소유물에 대한 훼손으로 간주될 뿐이다. 일본군에 의한 군위안부 문제는 '민족의 딸'에 대한 범죄로 이야기되지만, 기지촌 여성에 대한 한국남성의 매매춘은 거래 행위로 여겨진다. 타민족 남성에 의한 자민족여성에 대한 강간과 매매춘은 자민족 남성의 분노를 자극하며 강간자의 민족주의적 동기를 구축하지만, 자민족 여성에 대한 매매춘은 참을 수 없는 성욕을 지닌 남성성의 발현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족주의적 범죄와 남성성의 발현을 가르는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런 사회적 불감증을 유발하는 것은 군사주의이며, '범죄'와 '어쩔 수 없는' 남성성의 발현을 나누는 기준 역시 군사주의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군사주의는 남성우월적인 정체성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의 동원을 정당화하는 신념이자 제도이다. 그러므로 한국여성이 일본군의 위안부였다는 사실은 한국남성의 우월성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런 패배를 섣불리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경계에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남성의 패배가 아니라 한민족의 패배로 위장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성의 우월성을 입증해야 하는 군사주의가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므로 남성이 민족주의적 동기에서 타민족 여성을 강간하는 것{{) 사회적 담론에서는 이 같은 남성이, 실재와 무관하게, 자민족 여성을 절대로 강간하지 않을 존재로 부각된다. }}과 남성다운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민족 여성과 매매춘하는 것, 이런 두 경험이 모순으로 부각되지 않는 사회적 담론구성은 군사주의의 작동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자민족 여성을 결코 성적 노예로 취급하지 않아야 하는 민족주의자 남성이 매매춘을 통해 여성을 사는 것이 용인되는 현상이 군사주의의 작동을 말해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민족주의'가 몰성적인 이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민족주의는 남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군사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요약하면,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인식에 민족주의가 개입하는 것은 이분법적이며 동시에 가부장적 남성성을 전통적 민족성의 현존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일상에 녹아 있는 민족전통이라는 회로를 타고 군사주의가 일상화되어 폭력적 남성성을 용인하도록 하지만, 민족성이 중간 엄폐물이 되어, 폭력적 남성성을 내면화한 남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군사주의에 속한 일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작용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처럼 민족성/민족주의를 개입시킴으로써 군사주의는 자신의 작동과 성차별성을 성공적으로 은폐한다.

4. 맺으며

이제까지의 논의는 우리는 분단상황과 민족전통을 수호하는 일에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 공통적으로 결부되게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게 하는 '그 무엇'이 군사주의임을 이야기하였다. 군사주의의 작동으로 인해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 각인되고 폭력적 남성성이 정당화된 점과 우리 사회가 문화적 형태를 띤 남성적 폭력성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점에서 시작하여, 그 성차별적 폭력성이 일상을 관통하며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드는 것 역시 군사주의의 작용임을 이해해 보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한참 생각해 보아야 답이 나올 듯하지만, 그 사실이 불만스럽지는 않다. 명확해서 말하기 좋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들 자신이, 거대하지만 가물가물한 분단체제가 발밑에 끈적끈적하게 녹아 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한 일일 듯하다. 분단, 폭력성, 군사주의가 우리와 가까운 곳, 우리 내부에서 조장되는 사실을 문화적 차원의 군사주의를 통해서 이해하였으므로 그것의 변화를 위한 우리의 실천 역시 그것과 무관해서는 되지 않을 일이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의 일상에서 폭력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양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말을 하는 당사자들 역시 군사주의적 폭력성이 일상화된 측면을, 독자들보다 더 섬세하게 파악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다만 우리들 자신을 일상에서부터 성찰하게 해주는 렌즈를 발견한 것 뿐이다. 그 렌즈를 들고 정확한 지점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이후 우리들 모두의 과제일 것 같다. 우리의 삶이 군사주의라는 렌즈를 통해 어떻게 달리 보일 수 있는가를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연구자로서 분단상황과 여성의 삶의 관계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며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인이기보다 자기가 속한 시공의 변화를 시도하는 그저 한 사람일 것을 우리는 원한다. 사실상 그저 한 사람이 되기란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있어 설득해야할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그릇된 설정일 것이다. 이 일에 있어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나'와 관계된 일에 대해 어떤 타인을 설득해야할 것인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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