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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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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브러리앤리브로12월호.pdf (7.75 MB)   Download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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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12월호에 실린 평화바닥의 평화책 서평

도서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서평 요청으로
12월호 '이달의 테마북 : 책, 평화를 말하다'에
저희가 준비했답니다.

* 관련 웹페이지 http://onbooktv.co.kr/bbs/board.php?bo_table=L&wr_id=8
* 첨부한 PDF파일로 내용을 보실 수 있어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_ 서경식, 박광현 옮김, 창비

이것이 인간인가 _ 한아름
여전히 죽음당하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다. 죽는 자는 누구이고 죽이는 자는 누구일까? 다시, 쫓는 자는 누구이고 쫓기는 자는 누구인가? 나치에 의해 가혹하게 희생당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다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내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이 될 것인가. 민주화를 위해 싸운 자들이 이 땅에서 받은 고초는 또 어디서 어떻게 부유하고 있는가. 인간이 대체 왜 이러는가. 이것이 인간인가.
쁘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다. 저자는 쁘리모 레비의 자취를 추적하면서 가해자의 책임보다는 인간 ‘공통’의 책임을 강조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치욕감에 가능한 한 민감해지길 권고한다. 그래야 ‘인간으로서의 원칙적인 수치심’을 공유하고 정서적인 연대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피해자의 경험에 심취해 그들의 생명과 자유, 재산 등의 상실을 토로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때론 그보다 너무 단순히 취급되는, 지옥을 경험한 자들의 공포, 고통과 억울함, 절망을 읊고 있다. 더불어 겸허함을 잃은 인간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레비를 찾아가는 길은 컴컴하다. 절망이 깔린 어둠이라기보다는 그를 따라 침잠해가는 영혼의 묵직함이 그렇다. 길은 말할 수 없이 고요하다. 더 게울 게 없을 지경으로 구토한 직후 경험했던 검고도 환한 의식처럼, 마치 진공상태인 것처럼, 고요하다. 여기서는 어떤 종류의 저항도 기원도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섣부른 위로도 금세 흩어져 버리고 오직 심연에 깊은 고통과 질문을 안고 가만히 듣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저자는 후기에서 쁘리모 레비라는 척도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는 척도를 잃어버린 채 고뇌했던 레비를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인간성의 척도는 과연 무엇일까?


《히틀러의 아이들》
_ 수전 캠벨 바톨레티, 손정숙 옮김, 지식의풍경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 나의 길을 묻게 하다 _ 염샘
이 책에 등장하는 히틀러청소년단 아이들의 나이일 적에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들을 고용한 쉰들러 사이에 싹튼 인간애와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충격적인 영상과 역사적 사실 앞에 아마 내 가슴에 처음으로 인류애(?)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영화처럼 긴밀한 스토리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슴이 미어지는, 히틀러의 야욕에 나치로 길러진 평범한 십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 있다. 게슈타포, 홀로코스트, 히틀러유겐트 …. 우리는 히틀러나 나치에 대해 말할 때 너무도 쉽게 국가사회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의 아픔과 고통을 떠올리고 우월한 아리한 족을 내세우던 히틀러에 대해 분노한다. 하지만 《히틀러의 아이들》을 읽으며 더욱 경악했던 것은 히틀러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위해 충성한다’고 믿었던 히틀러청소년단의 맹종이었다.
교사로서 학기 초에 학생들을 만나면 서로 많이 다르고 그래서 어색하다. 가치관도 달라 쿵닥쿵닥 소소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한두 달 시간이 흐르고, 2학기가 되면 어느새 어우러져 나와 너가 닮아있는 서로를 발견한다. 눈빛만 봐도,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교육일진대, 유대인을 살육하는 병기로 길러진 아이들을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청소년들에게서 시작하련다'고 했던 히틀러의 말이 얼마나 예리하고 무서운 말인지 실감한다. 자신들이 행한 만행 앞에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고개 숙인 그 아이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금,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 나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_ 전쟁없는세상ㆍ박노자ㆍ한홍구, 철수와영희

감옥을 앞에서 평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_ 염창근
감옥만큼 사연이 많은 곳도 드물다. 누구의 말을 따르느냐에 따라 감옥은 인과응보의 결과가 되기도 하고, 제도와 법에 의한 피해와 누명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곳에 병역거부자들이 있다.
한낮에도 어둠의 건물이지만 한밤중의 감옥은 듬성듬성 전등 하나씩만을 켜놓아 가라앉을 것만 같다. 낡을 대로 낡아버린 육중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감옥은 켜켜이 쳐진 철문들과 길고 긴 복도와 수많은 감옥문과 쇠창살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협소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545일의 낮과 밤을 살아가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사실 앞에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부여잡는 병역거부자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는 수십 편의 편지가 들어 있다. 이들의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이내 급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만다. 긴장과 무력감, 감옥이 주는 두려움과 초조함, 견딤의 괴로움… 이 낯설고 무거운 이야기는 감옥의 색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거기에 멈추게 하지 않는다. 결심과 고요함이 함께 담겨져 있다. 감옥에서 길어 올린 편지들은 평화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떨리는 마음을 잔잔히 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결국 감옥을 향하는 이들의 걸음은 한국 사회의 견고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에 틈새를 만들고, 병역의무와 군대라는 성역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의 장을 열었다. 지금도 이들은 도전한다.
그래서 이들이 칠하는 평화의 색채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저에게는 진정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꿈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지구상에 전쟁과 가난의 고통이 사라지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총 든 군인이 아닌 자원봉사자로 만나, 인류의 꿈과 희망에 대해, 지구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웃으며 어깨동무할 수 있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_ 아키 유키오, 김원식 옮김, 부키

비폭력주의자가 되는 방법 _ 강서희
2003년 가을, 명동거리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분필로 명동거리의 아스팔트 바닥에 ‘No War’ ‘파병반대’를 쓰고,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10여분 후 일어나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행동을 피스몹(Peace Mob)이라 불렀다. 이것은 ‘다이 인’(die-in, 땅바닥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동)으로 비폭력 행동 중 하나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는 말 그대로 비폭력 행동을 위한 지침서다. 일본을 배경으로 했지만 한국 상황이라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1987년 일본에서 출판됐지만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폭력’과 ‘비폭력’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리적인 폭력부터 구조적인 폭력까지. 그러나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비폭력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하기보다 비폭력주의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소개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비폭력은 생명을 존중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독자들에게 직접 ‘비폭력 행동’을 준비해 보자고 제안한다. 90여 가지의 행동의 실례를 듣다보면 비폭력 행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항의메시지를 쓰고, 1인 시위를 하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불매운동을 하는 모든 것들이 비폭력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비폭력적 삶의 방법도 쉽게 다가온다. 비폭력을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밥 딜런, 존 레논 등 노래를 통해 반전ㆍ평화를 호소한 음악인들도 있지 않은가. 당신이 부당한 일에 ‘반대’와 ‘대안’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 당신도 비폭력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누구나 쉽게 비폭력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250여 컷에 달하는 삽화와 부록으로 달려있는 ‘경찰과 이렇게 친해지자’ 코너다. 읽어보면 안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_ 아시아네트워크, 한겨레출판  

아시아에서 사는 우리, 아시아를 아는가
_ 성혜란
‘비폭력 사도’ 마하트마 간디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위대한 영혼’인가? ‘킬링 필드’의 비극은 전적으로 폴 포트의 책임인가? 코리 아키노는 과연 필리핀 민주주의의 상징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머뭇대며 대답을 망설이거나, ‘그렇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십 몇 년 동안 학교를 통해 접한 아시아는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가 대부분이었거나, 서구 역사의 한 부분이며 대상으로만 언급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시아를 모른다.  ‘아시아는 우리를 모르고, 우리는 아시아를 모른다’는 전제 하에 <한겨레 21>에 연재되었던 ‘아시아 네트워크’를 한데 모은 이 책은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 인도, 팔레스타인 등 13국의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어 엮어낸 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현재이다. 이 생생한 결과물은, 서구의 시선으로 아시아를 바라보고 ‘아시아를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무심함과 무지함을 짚어간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아시아 각국에 끼친 영향을 살피며 아시아와 대한민국의 오랜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계급과 신분 제도에 관대했던 ‘위대한’ 간디, 여성 총리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아시아 각국의 씁쓸한 속내,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헌신, 카마수트라를 창조해 낸 인도에서의 억압적인 성 문화,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과 미국과 일본의 조직적인 아시아 유물 강탈. 역사ㆍ정치부터 문화ㆍ성(性)까지 이 책이 아우르는 아시아의 모습은 다양하고 그만큼 새롭다.
거대한 대륙,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 넓은 아시아 곳곳의 아픔과 희망을 조금씩이나마 알아가는 여정에 이 책은 작은 나침반이 될 수 있었다.  


《양지를 찾는 사람들》
_ 삠 끗사왕,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옮김, 아시아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
_ 염창근
버마인 마웅저 씨와는 4여 년 전에 만났다. 그러나 3년 동안은 그에게서 버마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건 내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버마에 관심이 없었고 그러므로 그는 말하고 있었지만 들리지도, 들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펼친 캠페인에서 처음으로 버마를 보게 되었다. 버마 어린이 사진과 이야기들을 …. ‘47년간이나 군사독재의 철권통치가 계속되고 20년이 넘도록 의회가 열리지 않는 나라. 평화나 민주주의, 심지어 인권이라는 단어도 모두 금지되어 있는 나라. 어린이의 40%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강제징병, 강제노동, 성매매를 강요받는 곳.’
세상에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많고, ‘자유’나 ‘권리’는커녕 자기가 고통받고 있다는 말조차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도 아직 많다. 하지만 버마는 그중에서도 최악의 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처지를 온몸으로 느끼던 한 태국 활동가가 이들을 인터뷰하며 목소리를 대신 묶어 냈다. 《양지를 찾는 사람들》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아닌 평범한 버마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힘겹게 엮어 내고 있었고,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버마의 목소리를 비로소 만나게 했다.
여기에는 극심하게 유린당하는 목소리들이 너무 흔해 가슴이 오그라든다. 군부의 군홧발 아래서 살기를 거부한다면 국경을 넘어야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착취 시스템이다. 결정판은 어린이 강탈. 버마 군대는 마음대로 어린이들을 데려가 소년병으로 부려 먹거나 성적 목적으로 이용한다. 그렇게 버마는 ‘말’ 없이 외면 속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양지를 찾아 투쟁하는 버마 사람들은 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평화와 자유의 뿌리가 무엇이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오히려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마음을 잇고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어야겠다.


《가자에 띄운 편지》
_ 발레리 제나티, 이선주 옮김, 낭기열라

가자에 띄운 편지, 유리병에 띄운 평화
_ 강서희
청소년 시기, 한번쯤 잘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군인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 사는 또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도 잘 모르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일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사는 소녀 탈 레빈은 2003년 예루살렘의 한 카페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를 목격한 후 공포의 일상을 보내다 희망과 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편지에 담는다. 그리곤 7살이었던 93년 9월 13일 가족과 함께 마신 의미 있는 샴페인 병에다 편지를 넣고 가자 지구에서 군복무 중인 오빠 에탄에게 가자 앞바다에 던져줄 것을 부탁한다. 93년 9월 13일은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화해의 악수를 나누던 날이었다.
‘이름 모를 너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받은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은 탈에게 답메일을 보낸다. 둘의 편지는 분쟁이 끊이지 않은 시공간과 민족성을 넘어 평범한 젊은이로서의 소통으로 이어진다. “막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우리 쪽과 마찬가지로 너희 쪽에도 당연히 뚱뚱한 사람들과 마른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과 못 사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가자에 띄운 편지》의 이야기는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사람이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은 다르게 표현되고 인식된다는 점에 보여준다. 그 차이로 인해 두 집단의 간극은 더욱 커져간다. 그러나 이해를 통해 다시 그 차이는 좁혀질 수 있음 또한 보여준다. 저자는 이 둘을 통해 서로가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서로 다른 두 집단이 평화를 만들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과 희망에 대해 편지를 띄우고 싶어진다.


《탈리반 -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와 전쟁》
_ 피터 마스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옮김, 박종철출판사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나
_ 염창근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이란의 대표적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한국 기자들에게서 다음 영화의 소재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곧 “아프가니스탄이란 뭔가요?”라고 되물어왔단다. 왜 그럴까? 아프가니스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2001년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한국은 군대를 파병했다. 그곳이 계속된 침략과 외세 개입으로 비참한 전쟁터라는 정도라도 알게 된 것은 2007년 한국인 피랍 사태가 터진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 이상은 알려 하지 않았다. 그곳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문화를 가진 땅인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세상의 무지가 부끄러울 만도 한데도 우리의 이해는 턱없이 부족했다. 탈레반(탈리반)은 왜 그토록 강대국 미국과의 전쟁 속에서도 저항할 수 있는지,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은 너무도 많아졌고 매년 ‘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는 비관이 유행한다. 나아지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파탄의 수렁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도 해결책이라고 제시되는 것은 언제나 탈레반 소탕뿐이다.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보는 걸까?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 나라를 전쟁터로 만드는가? 공습하는 자의 정찰 위성으로 바라본 아프가니스탄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지도와 설명을 보며 공격자의 시선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닐까.
《탈리반 -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와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무지에 일침을 가한다. 이들의 역사, 전통, 종교, 이슬람 운동들, 무자히딘과 탈리반의 이념과 운동 등 차례대로 조망하는 이 책은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프가니스탄을 만나게 한다. 평화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에서 겨우 시작될 수 있다. 마흐말바프의 다음 영화는 <칸다하르>로 발표되었다.


《페미니즘의 도전》
_ 정희진, 교양인

군가산점과 여성징병에 대한 독해법
_ 날맹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군가산점과 여성징병 논쟁. 군사주의와 젠더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는 동시에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근대적 남성성을 극복해 보려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군가산점과 여성징병 논쟁은 매우 흥미롭고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져준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기에 깊이 있는 통찰로 페미니즘과 평화주의로 이끌고 있다.
특히 <군사주의와 남성성>라는 글은 군가산점 논쟁에서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경쾌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전통적 남성 집단은 일면 “가산점을 인정하라”고 주장함으로써 남성의 억압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상화하는 타자(여성)에게 차이를 강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이 대상화하는 타자가 차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동일화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가산제 논란의 본질은, 남성들 간의 계급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 즉 성별화된 구조로 치환-전가된 것이다. 실제로 군대를 가는 남성은 안 가는 남성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표출하지만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남성성에 미달되고 남성다움이 훼손된 존재로 인식하고 비하와 조롱을 일삼는다.
‘평등’의 의미가 결코 ‘같아짐’이 아닌 ‘공정함’의 문제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여성운동 일각에서 여성징병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근거로 제시하는 ‘성평등’의 의미 역시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여성도 징집이 되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건대 남성들과 ‘동일’한 군복무 수행이 여권신장으로 이어질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평화를 위해 축소되어야할 군대의 영향력이 여성징병으로 인해 도리어 확대되는 것은 아닐까. 군사주의가 본질적으로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기에 군사주의의 결정판인 군대에 여성까지 굳이 동원하는 것은 평화와 멀어질 뿐이지 않을까? 페미니즘의 도전이 탈군사주의 평화로 향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폭력의 예감》
_ 도미야마 이치로, 손지연ㆍ김우자ㆍ송석원 옮김, 그린비

겁쟁이여 연대하라
_ 문명진
생각해보면 ‘비겁하다’는 형용사는 남성들에게 붙여진다. 가부장 질서 하에서 남성은 ‘용감함’이라는 자질을 가져야 진짜 남자로 증명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1년에야 한국 사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병역거부자들은 바로 “신성한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비겁한 매국노” 혹은 “자신의 이상만 쫓는 겁쟁이”라는 식의 비난을 들어왔다. 그렇기에 초기의 병역거부자들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병역거부가 단순히 군대를 안 가려는 병역기피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중에는 역설적이게도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가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남성의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기존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에 문제제기를 하려 했던 병역거부자들이 도리어 가부장 질서에 부합하는 ‘용감한 진짜 사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런데 《폭력의 예감》의 저자인 도미야마 이치로는 “모든 사람은 겁쟁이”라면서 자신은 겁쟁이들의 연대를 생각하고 싶단다. 기존 가부장제 속에서는 별 볼일 없던 겁쟁이가 도미야마의 분석 속에서는 오히려 예감이라는 지각을 통해서 폭력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다. “겁쟁이의 신체에는 상처, 혹은 상처와 관련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하면서 “폭력에 대치하는 언어의 가능성의 임계를 발견”하고 폭력을 예감하는 것은 “방어태세를 갖춘(sur la defensive) 자” 즉 “겁쟁이”의 몫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도미야마의 논의는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제는 오히려 ‘유약한 남성성’을 자원 삼아 이 세계를 둘러싼 폭력을 감지하고 이를 새롭게 언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견고한 군사주의 프레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저항의 언어를 상상하는 것. 이로써 폭력을 예감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은 “겁쟁이들의 연대”로 가능하다는 새로운 인식을 만나게 한다.


《리언 이야기》
_ 리언 월터 틸리지, 배경내 옮김, 바람의아이들

흑인차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
_ 강서희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가 “흑인은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직업을 가장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어나는 이주노동자 차별 중에서도 흑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하다. 피부색이 차이가 눈에 띄게 보이기 때문이다.
《리언 이야기》는 1936년에 태어난 흑인 ‘리언 윌러 틸리지’의 증언록이다. 70여 년 전 미국 사회에서 있었던 끔찍한 인종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리언은 ‘껌둥이 촌’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리언씨네는 대대로 농장일을 했고, 리언 또한 농장일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른들은 이름을 쓸 정도만 교육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리언은 학교를 다녔다. 하굣길에 백인 아이들이 괴롭힐까 자꾸만 뒤를 돌아봐야만 했던 리언은 열다섯 살 생일날, 백인의 차에 아버지가 죽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흑인들은 경찰견과 KKK단원들의 추격을 피해 다니고, 핫도그를 사먹더라도 흑인 전용 창구에서 언제 나올지 모를 백인 점원을 기다려야만 했다. 리언은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흑인에게도 의사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피부색이 인간의 존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리언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의 인권을 위해 저항한다. 결국 흑인들에게도 ‘자유와 민주’의 시대가 찾아온다. 그 이후 리언은 파크학교에서 30년간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파크학교에서는 리언의 이야기를 학교 연보 한 페이지 가득 특별 코너로 다루고 큰 기념식을 열어준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 《리언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흑인 차별의 역사로 또박또박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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