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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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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현장리포트] 병력 증파 : 데이비드 콕번의 스페셜리포트
[이라크 현장리포트]

'병력 증파 : 데이비드 콕번의 스페셜 리포트'(The surge: a special report by Patrick Cockburn)



- 영국 <인디펜던트> 전쟁전문 기자 패트릭 콕번. 2007년 8월 7일
* 본 번역은 <프레시안>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올여름 들어 상당한 의미가 있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기념일을 보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3년 5월1일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한 이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
  거의 1세기 전에 있었던 대전쟁처럼 이라크 전쟁에서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으며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주장이 늘 반복되기는 마찬가지다.
  1917년 프랑스군 총사령관 로베르 니벨은 “승리의 방책을 갖고 있다”면서 프랑스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으나 궤멸당했다. 전선으로 투입 명령을 받은 부대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동물의 처지가 되자 거세게 항의하다가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1월10일 부시 대통령도 '승리의 방책'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과시했다.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소위 '병력 증파'(the surge)라는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이라크에 2만 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니벨 장군처럼 부시 대통령도 오판에 물든 열정을 갖고 기존의 바그다드 안정화 정책이 실패한 이유와 새로운 전략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전에는 미군과 이라크군이 반군을 소탕한 뒤 철수하면 반군이 다시 돌아왔는데, 앞으로는 미 연합군이 계속 주둔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적과 충분히 마주치지 못한 듯이 부시는 이란과 시리아를 반군을 지원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란과 시리아는 테러리스트들과 반군이 이라크를 넘나들도록 그들의 영토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이란은 미군 공격을 위한 물자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지난 1월23일 국정연설에서 "시아파 극단주의자들은 미국에게 (알카에다만큼)적대적이며, 중동을 지배하려고 작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군이 이라크 민족주의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강력한 시아파 무장단체 메흐디 민병대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의 근거지로 200만 명의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살고 있는 사드르 시티 같은 지역에도 들어갈 것임을 의미했다.
  지난 2월 중순 미군의 증파가 개시된 지 6개월이 지난 후 이 작전은 1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공세작전처럼 참담하게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력 증파 후 오히려 반군 공격 사상 최고치로 증가
  미 국방부는 지난 6월 기준으로 미군과 이라크군, 시민군, 기반시설 등에 대한 공격이 하루 평균 177.8회로 2003년 5월 말 이후 월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매일 아침 거두는 시체들의 숫자는 작전 초기에는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했다. 대부분의 시아파 자살부대를 공급하는 메흐디 민병대가 사드르의 명령에 의해 해산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다드에서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부시가 뭐라고 말하든, 이라크 주둔 미군 지휘관들은 수니파에 대한 진압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메흐디 민병대와 시아파 거주지를 공격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병력 증파 작전도 지난 52개월 동안 미군이 (뒤따라 얼쩡거리던 영국과 함께) 이라크에서 실패로 끝난 성공의 방책과 꾸며낸 승리의 전환점 목록에 추가되는 모양새다.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됐다. 6개월 뒤인 2004년 6월 이라크의 주권이 회복되었다. 부시는 "자유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며 한껏 고양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지껏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미국의 허락 없이는 몇 명의 병사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라고 한탄하고 있다.
  2005년 시아파와 쿠르드 정당이 낙승을 거둔 두 번의 선거가 있었다. 부시는 "백주대낮에 살해위협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1200만 명의 이라크 주민들이 희망과 연대를 찾아가는 모습으로 투표에 임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그 감동을 금세 잊어버렸다. 1년 뒤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초대 시아파 총리 이브라힘 알-자파리를 축출했다. 당시 미국의 잘마이 할릴자드 이라크 대사는 "부시는 자파리가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지지하지 않으며,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새로운 구상을 펼치면 그때마다 6개월 정도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이번 병력증파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할 무렵 안바르 주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수니파 부족들이 알카에다에 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알카에다가 이라크 이슬람국가로 불리는 반군 산하조직을 설립하는 등 지나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수니파 지역에서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청소부를 살해하거나, 덮개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살해했으며, 한 집에서 젊은 남자 한 명씩을 병사로 차출하려 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수니파 부족 민병대가 라마디 같은 반군 거점에 있는 알카에다와 싸우자 이 곳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 행정부는 이런 양상을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았을 수도 있었다. 이라크에서의 반란은 알카에다가 주로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이라크 전문가 앤서니 코즈먼은 자살폭탄 공격의 80~90%는 알카에다의 소행이지만 이라크 전체에서 벌어지는 공격에서 알카에다의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니파 정권 축출 후 수니파 민병대 양성하는 미국
  미 백악관이 사태 진전의 조짐으로 내세우는 이라크의 여러가지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수니파 부족 민병대를 모집하는 것도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실 위험을 동반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무부에 따르면 수니파 민병대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경찰은 갈수록 더 많은 시체들을 발견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단순히 시아파 주민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많다.
  수니파 부족 민병대원들은 미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미국이 강화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정부와 군, 경찰의 권위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수니파 민병대가 저지르는 잔인한 장면이 휴대폰에 찍혀 이라크 웹사이트들에 게시되기도 했는데, 이 영상물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겁에 질려있는 조그만 몸집의 남자 한 명을 총을 든 남자들이 수갑을 채우고 때리면서 차에서 끌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휘자로 보이는 한 남자는 잡혀 있는 남자에게 '할리드'라고 불리는 사람을 그가 죽였는지 자백하라고 다그쳤다. 몇 분 뒤, 그는 두 남자에 의해 끌려가 쓰레기 투기장에서 가슴에 총알 세례를 받고 처형되었다.
  이것은 백악관이 병력 증파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니파 전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 중에는 1920 혁명여단과 이슬람군처럼 반미 저항조직 출신들이 적지 않은데, 부시는 지난 4년 동안 이런 조직들을 이라크 국민의 적인 살인집단이라고 맹비난해 왔다.
  이라크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쿠르드 주민들 앞에서 미국은 자체적으로 수니파 민병대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을 방지(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하는 주된 명분)하기는커녕 미국은 이라크를 분열시킨 살륙에 가담한 분파주의 살인자들을 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아직 병력 증파가 성공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기라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과 라이언 크로커 이라크 주재 대사가 다음달 제출할 치안보고서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전략이 이라크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전략이 부시에게 가져다 주는 주된 효과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점을 늦춰주는 것이다. 부시가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에게는 재앙이 되는 일이다. 따라서 미군 철수를 대선 이후까지 연기할 수 있다면 네오콘들은 승리가 목전에 와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군대를 철수시키려 한다고 민주당의 등에 비난의 칼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부시가 병력 증파 계획을 담은 국정연설을 한 지난 1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이라크인들은 처음부터 병력 증파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이스말리라는 한 친구는 어두운 표정으로 "1만 6000명 정도 증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니파인 그는 당시 바그다드 서쪽에 있는 그의 집에서 빠져나왔는데, 대부분의 수니파 주민들처럼 그는 제복을 입은 시아파 자살부대로 여겨지는 무장요원들에게 체포돼 고문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종파간 분쟁으로 공포에 질린 이라크 주민들
  바그다드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운전수들은 임시검문을 받을까 공포에 떨었다.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차에서 끌려나와 살해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그다드는 온통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하는 얘기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상황에 따라 수니파나 시아파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도록 적어도 가짜 신분증 하나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증만으로는 충분한 대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일부 시아파 검문소는 주민들을 심문하기 위해 신학자가 작성한 종교적 질문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미군과 이라크군이 수도 중심부조차 거의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린존 북쪽 수니파 거리인 하이파 스트리트는 미군이 장악하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한 곳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안회사 블랙워터 소속 헬리콥터가 격추되었는지 바그다드 중심지인 알-파드힐 지역에 떨어졌는데, 반군은 미군이 그들을 잡으러 오기 전에 생존자들을 처형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적 분쟁은 알카에다 자살폭탄대원들이 수니파 주민들을 표적으로 삼았던 2003년 8월에 시작됐다. 그 후 2년에 걸쳐 이 분쟁은 격화되었지만, 바그다드에서 시아파가 수니파를 며칠 만에 1300명을 살해한 대학살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6년 2월22일 사마라에 있는 시아파 사원을 파괴한 폭탄이 터진 사건이었다.
  두 종파가 이후 바그다드를 장악하려는 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 1월 무렵에는 시아파가 거의 장악했었다. 살아남은 몇몇 수니파 친구들은 메흐디 민병대로 통칭되는 시아파 무장대원들이 남아있는 수니파 거주지들을 완전히 소탕하는 '최후의 바그다드 전투'를 전개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라크 주둔 미국의 취약점은 항상 자기들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적의 힘은 과소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쿠르디스탄을 벗어나면 미군이 의지할 우군이 없다. 시아파건 수니파건 이라크 아랍인들은 미군의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근 미군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반군이 미군 병사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한 무기들 대부분이 미국이 이라크군에 공급한 최신식 무기들이라는 충격적인 결론이 나왔다. 이들 무기들은 반군에게 빼돌려졌거나 팔린 것으로 추정됐다.
  미군 지휘관들은 발 밑에서 땅이 꺼져가고 있는데도 스스로의 선전에 도취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그다드 북서쪽 주도인 바쿠바에서 미군과 이라크군 지휘관들은 화상 회의를 열고 그들의 전과를 자랑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들은 일부 언론들의 비관적 전망을 일축하면서 "바쿠바의 상황은 고무적이며, 통제되고 있는데도 나쁜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화자찬하는 이런 소리에 역겨웠는지 수니파 반군들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쿠바로 쳐들어와 시장을 납치하고 관사를 폭파해 버렸다.


  지난 2월 병력 증파가 진행됐지만, 처음부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메흐디 민병대와 미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위험을 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지휘관급 요원들을 바그다드에서 떠나게 하고, 부하들을 해산하고 그 자신도 사라졌다. 그의 행선지에 대해서 미국은 이란으로 갔다고 하고, 그의 측근들은 쿠파와 나자프 같은 성지로 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안전한 바그다드" 보여주기 위한 억지 연출
  수니파는 바그다드에서 증파된 미군 병력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바그다드 동쪽 알-아드하미야 같은 지역은 봉쇄되었다. 하지만 기대한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드하미야는 상업지구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절반은 다른 곳에 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라크의 대원들이 배치된 합동검문소가 곳곳에 세워졌으나, 효과적이지 못하고 병력만 묶어두는 꼴이 되었다.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과 민간 유력인사들은 병력증파가 성공적이라는 가시적 증거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바그다드에 와서 어이없는 주장을 했다며 비난했다. 매케인 의원이 바그다드의 치안이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대사관 직원들은 헬멧과 방탄복을 벗고 매케인 의원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이 그린존을 방문했을 때도 로켓이나 박격포탄 공격을 경고하는 사이렌 장치를 꺼두어야 했다고 한다. 경보가 울리는 장면이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말, 필자는 차를 타고 바그다드 시내를 지나가는 것이 좀 편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차창 안쪽으로 재킷을 걸어두고 뒷좌석에 앉아 있어 다른 운전자들이 필자를 보기 힘든 상태였는데, 군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게 되었다.
  한 병사가 차 안을 들여다 보면서 필자의 신원을 물었다. 필자 일행은 운이 좋았는지 그는 필자가 외국인 저널리스트라는 말을 듣자 놀란 표정을 짓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잘 숨어 있으십시오."
  숙소인 호텔로 돌아온 뒤 이라크 정부와 선이 닿아있는 이라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린존에서 살고 있는 그 역시 필자에게 "매우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무엇보다 군과 경찰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며칠 뒤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라크 재무부 청사 앞에 40명의 경찰을 태운 호송 차량 19대가 도착했는데, 그들은 건물로 쳐들어가 영국인 경비원 5명을 납치해 갔다. 그들은 이후 소식이 없다. 납치범들은 메흐디 민병대 소속인 것으로 추정된다.
  병력 증파로 바그다드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데, 전략이라기보다는 늘 일종의 잡탕 전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수니파 반군, 시아파 민병대, 이라크 정부, 쿠르드, 이란과 시리아 등 게임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변함이 없다.
  정말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을 두고 상황이 진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난 이라크 주민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곳 적신월사에 따르면 사마라 폭격 이후 10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내국난민(IDP)으로 전락했다.
  이보다 더 많은 220만 명은 국외로 탈출했다. 이런 엑소더스는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이 도주하거나 추방된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중동 사상 최대의 인구 이동이다. 이라크에 진정으로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신호라면 이러한 난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는 때일 것이다.
  병력증파는 결코 이라크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이런 방안이 정치적으로 미국에게는 항상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이라크에게는 그렇지 않다. 속도가 다른 '워싱턴 시계'와 '바그다드 시계'가 있다는 미국 정치인들의 말은 별 의미가 없는 소리가 되었다.
  이런 수사법은 이라크인들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태한 반면 미국인들은 항상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오만한 시각이 담겨있다.
  하지만 정작 다른 것은 시계가 아니라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이다. 미국인들과 이라크인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딜레마'는 걸프전쟁에서 비롯됐다. 1991년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자 했다. 하지만 시아파가 정권을 잡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다수파이기에 공정한 선거를 한다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아파는 미국의 입장에서 중동의 최대 적국인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는 더욱 우려할 일이었다.
  1991년 쿠웨이트에서 사담 후세인 군대를 격퇴시킨 뒤 바그다드까지 밀어부치지 않은 주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 후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한 때 이라크의 18개 주 중 14개를 장악했던 이라크 시아파와 쿠르드의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하도록 허용했다.
  2003년 이후 미국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해왔다. 미국 행정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부시 행정부가 어쩌다보니 중동 전역에서는 다수파이지만 이라크에서는 소수파인 수니파 바티스트 정권을 전복하는 혁명적인 사건을 저질렀다.
  부시 가문은 사우디 왕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조지 W.부시가 수니파 아랍권의 안보 균형을 깨버린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사담 후세인의 몰락 이후 이라크를 철저하게 장악하려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CIA가 이라크 정보기구 예산을 대주는 이유
  그들은 이라크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를 될 수 있는 한 뒤로 늦추기도 했다. 2005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시아-쿠르드 정부를 택했다. 하지만 미국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철저하게 통제하려 했다.
  현재는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이라크의 노회한 정객으로 인정받는 아메드 찰라비는 "미국과 영국은 바트당이 무너진 공백을 채우려는 정책을 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국과 영국은 철수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그들의 아랍 동맹국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바로 시아파의 득세, 그리고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강력한 영향력이다.
  지난 4년 간의 세월의 이면에는 미국이 수니파 반군을 진압하기는 원하지만 시아-쿠르드 정부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속사정이 있다. 한 손으로는 이라크라는 국가를 떠받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힘을 약화시키려고 누르는 형국이다.
  이라크 정보기구의 예산은 이라크 정부가 아니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고 있다. 이라크의 독립은 바깥 세계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시아-쿠르드가 거두는 승리를 한정하려고 하면서 이라크를 차지하려는 투쟁에 확실한 승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계속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전쟁에서도 이라크에서 빚어지는 희생자 규모와 폭력사태의 일상적인 수준에 대해서만큼 거짓말이 횡행한 적이 없다. 영국의 한 각료는 "군당국은 내각 기만용, 국민 기만용, 자기 기만용이라는 희생자 집계의 3종 세트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비꼬았다.
  이라크의 민간인 희생자 규모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비슷하다. 지난해 초당적으로 작성된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에는 미 군부가 미군과 이라크군이 93회의 공격을 받았다고 보고한 2006년 6월 어느날을 조사한 결과가 담겨 있 있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이 조사한 결과 실제로 공격받은 횟수가 약 1100 회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 정부도 폭격 현장에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병원이나 보건부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민간인 희생자 규모를 감추려고 해왔다. 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2024명의 이라크인들이 폭력사태로 사망했는데, 이는 이라크 정부가 밝힌 6월 희생자 숫자보다 23%가 증가한 것이다.
  이라크 정부의 발표는 축소한 수치임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 7월 26일 바그다드의 카라다 지구에서 폭탄 한 발이 터졌을 때 이라크 텔레비전과 서구 언론들은 경찰의 말을 인용해 25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다쳤다고 보도했지만, 1주일 뒤 시청 직원들이 집계해 문 닫힌 상가에 붙여놓은 목록에는 92명이 사망하고 127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은 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미군에 의해 살해된 이라크 민간인들의 집계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군 당국은 미군의 공습 후 발견된 시체들은 반군들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지 이라크 경찰은 미군의 강력한 화기에 살해된 민간인들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서구 언론사들의 현지 사무소 직원들이 사망자에 포함되어 있을 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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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의 정세와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7/11/21 2086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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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 분쟁지역 납치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라크팀
2007/09/10 2353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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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알림] 이라크평화활동팀 8차 모임 시간과 장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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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8 2466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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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평화배움터 기획안] 셀림과 살람의 초안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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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1 1822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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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소식] Polish soldier killed, six hurt in Iraq car bomb attack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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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소식] Najaf, Iraq Under Attack! Latest News Updates from Peace No War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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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3031 215
126
  [이라크소식/알자지라] 나자프에 집중폭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다

염창근
2004/08/24 2091 357
125
  [이라크모니터] 보고서 46호

2006/05/28 2120 368
124
  [이라크모니터 보고서] 51호 (~ 07년 4월 24일) [1]

모니터팀/펌
2007/04/29 2372 451

  [이라크 현장리포트] 병력 증파 : 데이비드 콕번의 스페셜리포트

염창근
2007/08/11 2410 323
122
  [이라크 모니터팀] 보고서 49호

염창근
2006/07/12 1902 332
121
  [이라크 모니터팀] 보고서 48호 - 학살 현장을 고발한다

염창근
2006/06/16 2244 384
120
  [이라크 모니터팀] 보고서 47호

이라크팀
2006/06/07 1849 338
119
  [이동화 농성일지] 12월 31일 마지막 농성일지

이라크팀
2005/01/03 2917 465
118
  [이동화 농성일지] 12월 26일

이라크팀
2004/12/28 2728 482
117
  [이동화 농성일지] 12월 23일

이라크팀
2004/12/28 2287 407
116
  [영상] 이번 인권영화제에 상영되는 팔레스타인 영화

2009/06/03 2508 378
115
  [알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지원을 위한 3차 모금(마지막)

사무국
2009/03/27 1839 314
114
  [알림] 자매단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가 해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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