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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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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평화캠프 때 발제한 '반전평화운동 돌아보기' 요지글

2007평화캠프 - 반전평화운동 워크샵
: 활동 돌아보기 (염창근/8월 20일)



0. 엄청 많은 문제의식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IPT는 경험이었나 계기가 되었나? (중요한 시도로서 인정하는 것인가? 이후 전개와 연결될 계기로 받을 수 있나?)
- 평화운동에서 ‘성과’란 무엇이고 성과와 한계의 기준들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것들은 합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제각각 다른 기준과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
- 다시 돌아보면, 얼마든지 벌어질 전쟁에 앞으로의 적절한 방책은 무엇이고 어떤 선택들이 있을까?
- 현지연대운동이란 무엇이고 이것은 우리의 방책이 될 것인가? 현지연대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면 그 준비는 무엇이고 준비의 수단과 경로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그리고 충분한 준비란 어떤 것인가?
- 현지연대에서 관계 설정의 목적은 어디에 둘 것인가? 온건파와 연대하고 급진파(강경파)는 격리할 것인가? 그렇다면 온건파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일까? 다른 방법을 취한다면 강경파는 태도가 누그러지고 달라질 것인가? 온건파와 급진파의 기준은 무엇인가? 서구가 만들어온 인권 기준인가 아니면 이슬람의 기준으로 볼 수도 있는가? 급진주의 운동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것을 기준점으로 삼아야 하는가? 유엔 인권 조약은 그들에게 적당한가 아니면 그들의 주장대로 서양의 가치 체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집단마다 사람마다 다른 관점과 가치는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 누군가 적절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그 일은 여전히 다양한 관점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한 운동을 다루는 일임을 명심해야 함! 즉 관계에 대한 것임!!!


1. 현지 연대운동 (IPT, 인간방패, 민중지원운동)

(1) 과정

○ 배경
- 2002년 유가족들 이라크 방문, 미국 한 평화단체의 ‘이라크피스팀’ 참여 호소 (이 단체는 96년부터 오랜 경제제재와 전쟁의 고통 속에 처한 이라크인들을 방문, 함께 목소리를 내는 활동, 조사활동했음)
- ‘이라크 민중들과 외국인들이 인간 띠를 형성하자’ : 많은 외국인들(10만명 목표)이 있으면 전쟁을 벌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미국(북미)과 유럽의 평화운동가들과 좌파 및 아나키 그룹들이 참가 (크게 피스팀과 휴먼쉴즈팀이 있었음)

○ 과정
1) 1시기 : 팀결성과 출국 및 현지 결합(2개월)
- 한국에서 02년 12월부터 지원자 모집(병역거부자, 주변 활동가들) 시작
- 그러나 막상 들어가려던 그 때(2월)은 이미 회의론이 많이 확산. 사전 예방 실패설(전쟁 시작된다 소식 팽배)
2) 2시기 : 반전운동 및 휴먼쉴드로 전화(1개월)
- 후세인 정권은 이용하려는 함 : 관광 형식으로만 참여 인정, 남고자 한다면 휴먼쉴드로 배치 강요(일부는 이를 거부하면서 계속 남음-민중이 없다는 이유). 여러 가지 평화행진, 촛불시위 등 각종 반전행사를 진행
- 마지막 17일(3일 전) 미국이 최후 통첩(유엔 조사단 긴급 철수), 대부분 철수 시작
- 일부는 요르단에서 반전활동 및 전쟁 알리기, 현지에서는 휴먼쉴드(전력시설, 식량창고, 정수시설 등) 및 조사활동과 봉사활동(미셔너리 오브 채리티, 알 하난 장애아동 시설, 알 누르 시각 장애인 학교, 고아원 등에서 자원활동)
- 학교들을 방문하며 한국에서 보내준 아이들 편지와 그림 등을 전달
3) 3시기 : 모색-논쟁기/구호운동(1개월)
- 학살자 처벌운동이냐 증언운동이냐 민중지원운동이냐
- 전쟁 피해 조사 등을 진행해 보고서 내기 : 올드바그다드․뉴바그다드․사담시티 등 바그다드 내 빈민지역, 이라크 남부 바스라, 북부 모술․키르쿠크․티크리트․도훅․술래이마니아 등지를 돌며 이라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등 진행
- 들어오는 구호단체들 안내
-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 파견한 의료진 20명(1-7차)과 함께 의료지원(진료, 의약품) 활동
4) 4시기 : 민중지원운동/현장활동(2개월~)
- 민중지원활동이라는 이름으로 5개 마을 위생 개선 등 환경개선활동, 학용품과 유아 분유 지원사업
- 알마시뗄 공부방․놀이터․도서관 만들기 사업, 알마시뗄 보건센터를 보수 및 지원
- 국경지역 난민 구호활동을 알아보고, 현지 엔지오 설립을 도움

- 시기마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활동의 이분화, 성별분업, 나이-운동경험-위치 등으로 분업화 및 기능화, 도구화가 일정정도 생겨났음. 중요한 과제로 ‘최대한 알리기’와 많은 사업을 벌여내기. 급박함과 절박함이 지배. 의논하고 합의하며 준비하는 과정은 최소화하고 지침과 추진과 처리로 변화. 독점과 단순참가로 이분화 지속됨. 급박할수록 함께 공유하고 기획하는 공간이 되었어야
- 민중지원활동은 책임있게 활동하기 위해 긴 시간 봉사를 결의한 것에서 나온 것임. 수많은 문제제기와 대안적 모색들을 잘 정리하자는 의도도 있었음. 그러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반복이 지속되어 조기 종결함.
-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는 것에 즐거움과 고통의 당사자 현지인들과 전쟁에 저항한다는 뜻을 지니고 의미있게 생각하는 모습들 : 막무가내로 대하고 도구화했음에도 이에 대한 부분이 가장 컸기에 뭐든 가능했지 않았나...

(2) 이후의 반전운동

- 파병반대 활동과 평화행동들(피스몹, 길바닥 평화행동, 평화난장 등)
- 이라크평화네트워크 : 현지조사와 보고서, 뉴스레터, 깊이보기, 피스몹 등
- 이라크 모니터팀
-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 : 상설 연대운동, 미미하니 멀리보고 깊이있게 가자는 취지, 현장활동 염두
- 몇 개 단체들이 반전평화운동을 상설화했고, 진보적 언론인과 연구자와 작가들의 글쓰기
- 아프간/팔레스타인/레바논 등 반전운동


2. 성과 (보다 의미?)

○ 뭐가 성과일까? 잘 모르겠음
- 이라크 친구가 생겼다는 것?
- 이라크 상황과 이라크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생겼다는 것?
- 전쟁의 메커니즘과 중동-세계 질서의 흐름에 대한 사실적 분석력?
- 전쟁과 평화를 보는 어떤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 한국(국가, 민족, 우리)에 갇혀있던 관점(국민국가의 경계)을 깨고 우리 밖 ‘타자’와의 연대를 시도했다?
- 아마 이런 도전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또, 가능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운동의 과정 그 자체’는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 운동의 의미 : 어떤 의미가 있었냐가 중요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

○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활동의 의미는 전쟁의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일
- 활동의 방식은 크게 3가지 범주 : 인간방패/민중연대(현지)/민중지원
- 고통의 나눔의 과정 : 타인의 고통을 공감(이해)/함께 있기를 통해 고통의 나눔/고통을 기억하기
- 마이클 버그 씨의 경우 : 아들 사망에 대해 무장세력에 극도의 분노와 고통 → 어느날 아들의 죽음을 용납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주장과 명분도 이해하기 시작 → 거짓으로 일관하는 부시 정권에 분노 →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고 슬퍼해줌 → 집 앞에 ‘전쟁 부당과 중단’ 팻말을 붙임 → 이웃집들도 함께함 → 큰 위안을 느낌 → 반전 버튼을 달기 시작 → 고통의 기억를 알리고자 강연 및 증언 (고통공감→고통나눔→고통기억)
- 민중연대 및 지원활동의 이유가 되는 지점(치유나 사과는 아니었음, 고통에 다가서고 이해하기 위해)

○ 아무튼 남기고 있는 점은 있다(비판적으로)
- 다른 방식으로 고통에 함께하는 활동을 알게 된 것
- 고통의 역사와 매커니즘을 관념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이해하는 것
- 아무리 현실이 암담하더라도 미래를 낙관하는 여유도 필수적이라는 것
- 타인의 고통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계기이자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 (분쟁지역 활동의 의미)
- 언제나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음을 늘 염두해야 한다는 것, 규정내리는 것은 재단이며 문제를 발생한다는 것
: 우리는 한때 우리가 이라크 전쟁의 고통을 모두 아는 양 이야기한 적이 많았음. 착각일 뿐,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평화는 잃어버리기 시작할 지도...
-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 존중의 마음으로 인정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 다른 판단들을 존중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면밀히 하는 것 그리고 합의하는 것
- 하지 못하는 일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이라크인 스스로 해결해가는 일에 함께 하는 것
-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들에 대해 발화할 때 매우 유의해야 한다는 것 (예-이슬람주의 운동)
- 고통과 피해를 운동의 대의라는 명분으로 도구화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시혜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
: 물질 중심성이 아니라 고통에 함께하는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3. 한계?

○ 한계? 대단히 많음  
- 준비 문제 :
- 관점 문제 :
- 태도(자세) 문제 :

○ 연결되고 있지 않음
- 이어가고 있지 않음
- 그러나 경험이기 보다 계기가 되는 것이 중요 : 어떤 의미였나 보다 어떤 의미가 되고 있는가!


4. 생각들 몇 가지

* ‘연대와 과정에 관한 부분’에서 나옴

(1) 연대와 과정의 ‘상’

○ ‘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잘 알지 못함(혹은 표현상 같지만 각자에게는 다른 무엇)
- 반전평화팀 때도 그랬고 이후에도 반전운동들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주저/거부/싫증
: 결론적으로 말해 배제와 위계가 가동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음 : 전쟁 관련 문제들이 ‘왜’ 그런가는 빠지고 구호로 ‘저항하자’고만 말한다든지, 지루한 반복 또는 참여자를 객체화시키는 활동 문화, ‘연대’는 외치지만 짜여진 판에 참여만 하라는 식이거나 ‘자조직 우선주의 및 인입’하는 식의 일방통행적 연대활동 등
- 평화에 대한 대중적 기대는 높지만, 반전평화운동이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 담론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부정의 언어들로 권력에 호소하는 식으로밖에 전개하지 못한다든지) 활동 방식과 주장에 대해서도 평화적으로 펼쳐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참여를 기피하는 현상을 낳음. 그래서 사람들은 활동 전반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음.

○ 연대와 과정들은 준비될 수 있나
- 준비된 과정이나 체계는 거의 없었음
- 이라크에 대해 전혀 몰랐음(어떤 관계, 상황인지 모름). 급박함과 절박함에 갇혀 ‘어떻게’ 할 것인지만 사고함.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단순화-도구화시키는 경향. 이는 연대와 과정의 상실로 이어짐.
- 한편, 일부는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고 기존 방식에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는 하나 자조직 우선주의가 자리하고 있는 상태라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짐.
- 즉, 새로운 연대운동에 대한 상이 없었기 때문에 또는 그 상을 소통-공유-토론-합의하려는 시도를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참가조차 회피하게 되는 경향이 생김.(많은 참가자가 해당 조직과 단체에서 탈퇴하거나 아예 모임을 해소하는 경우)
- 결과와 목표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과정과 행위 속에서 목적을 바라보는 시도와 운동이 필요. 또한 관념과 당위를 넘어서 여러 현실 속에서 대중과 직접 교류하는 활동도 필요함. 그러나 여전히 괴리는 크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은 ?
- 다만, 반전평화운동이 ‘내가 맞으니 따라오라’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으며(생각들이 각자 다 있는데 주최측이 ‘구호’로 정리해 버리면 의사표출 통로는 봉쇄하는 것일 수도), 대의를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하려는 관성과 습관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부터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함. 연대의 공간을 갉아먹게 하는 결과를 낳지는 말아야 함.

○ 3자의 평화운동? 연대운동? 타자와 연대하는 운동? : ‘진짜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 3자? 타자? : ‘타자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문제
- [나 : 타자]가 [우리(동일자) : 외부(타자)]가 되거나 [나(우리) : 적]이 되는 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 ‘우리’라는 언어정체성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말고 적극적 문제제기 필요. 난관은 ‘우리’에서 시작되기도 함.
- ‘우리’는 ‘나’를 ‘국가/정부/기업/국민/가족’ 등으로 이어지게 하는 언어(동일자, 동일시). ‘우리’는 추상된 실체이자 허구이며 얼마든지 깨질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지만 강제된 ‘우리’는 쉽게 깨지지 않으며 그 열망도 높아지기 쉬움.
- 그러므로 [우리 : 타자]로의 구분은 타자가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배태시킴. 이는 단지 ‘우리 일’과 ‘남의 일’을 나누어 보는 것만을 뜻하지 않음. 폭력은 그 대상과의 소통불가능을 전제할 때 발생하므로 [우리 : 타자] 구도 속에서는 폭력 작동도 용인할 수 있음을 내포하게 됨. 이런 단절적 인식이 전쟁과 폭력 작동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권력들은(특히 국가) 이를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음.
- 배타적 ‘우리’라는 인식은 역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함. 이를 극복하는 노력과 돌아보는 노력이 항상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것임
- ‘나’ 이외에는 ‘타자’가 있는 것이며 ‘타자’로 일단 인정해야 함. 문제는 ‘타자’와 어떻게 살아가고 상호의존된 사회 속에서 공존해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일이 제기될 수 있음. 즉 어떻게 ‘타자’와 친구가 되고 연결되어 ‘네트(워크)’가 될 것인지 질문하기 필요함. (‘나’와 ‘타자’는 원래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공동체나 사회 또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우리’가 먼저 있고 ‘외부’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함)
- 따라서, 운동이 여러 문제들에 대해 당위만을 설파하거나 결의로 돌파하자는 것은 ‘타자와 연대하는 운동’이 되기 어렵게 할 것임. 오히려 신뢰 형성을 가로막게 하고 합의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기 쉬움 (합의는 합의 노력을 해야 합의이지 처음부터 합의된 것처럼 전제할 수는 없음)

○ 그러나 여전히 명확한 ‘연대와 과정의 상’은 불분명, 그러니 ‘&’ 필요
- 따라서 많이 의견을 개진해야 하며 또 들어야 함. 담론은 연구자와 전문가의 영역이 결코 아니며 평화를 꾸려가고 싶은 자들이 ‘말’과 ‘글’과 ‘행동’으로 이야기하며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대와 과정의 상’도 형성될 수 있음.
- 수다한 학습과 토론, 평화주의 인식을 위한 노력과 삶의 태도, 각양의 의제들의 교류 등이 요청됨

(2) ‘어떤(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볼 것인가?’ 하는 점

○ ‘평화의 시선 ?’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 모두가 ‘평화’를 말하고 있다!
- 평화가 각각 다름을 다 안다고 할지도 모름, 그러나 중층적이고 복합적이어서 명확히 파악된다고 할 수 없음.
: 오히려 다 안다는 바로 거기에서 위험 또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음 (관계를 놓침, 알고 있으니까 무시되는 경향 낳음)
: 그래서 매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어떻게’ 하지 부분에만 몰두하게 되는 경향 (늘 맴돌고 반복만)
- 또한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이분법과 수많은 이미지들 이면에 있는 인간의 현실에 대해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 그들의 ‘평화’ : 미사일과 함께 ‘인도적 지원’을 투하하는 자들의 시각
- 폭격과 공격을 ‘평화’, ‘인권’, ‘정의’ 등으로 설명하고 ‘인도적 지원’을 따라붙이며 정당화함. 고통을 공감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가해자의 언어이기도 함(“독재-폭력-테러세력들에게 당한 고통을 덜어주겠다.”)
- 이는 지도의 시선이기도 함. 지도 상으로 환원되는 시선은 인간과 자연을 추상적 존재로 만들기도 함. 지도에는 모든 것이 점과 면으로 표시되며 테러조직의 거점, 군사목표물, 석유매장지, 송유관 등이 중심이 되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통째로 취급됨. 즉 폭격 대상이거나 착취의 거점에 지나지 않고 작전 대상이 됨. ‘인도적 지원’ 역시 이를 위장하는 명분이거나 거래. 전쟁의 손익계산과 분석과 진단은 어떤 의미를 제공할 것인가? 이런 방식에 길들여있는 건 아닐까?
- 이러한 시선이 반전평화운동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전평화운동이 전개되는 와중에 ‘우리가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생각’과 ‘평화의 전파자라는 생각’ 혹은 ‘현지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생각’들이 생겨날 수 있음. (예- 실제 많은 운동단체, 종교단체, 구호단체들)
- 이는 숫자로 설명하고 바라보는 것이기도 함. 숫자는 평화운동의 시선인가? 추상적 숫자는 파괴의 아픔을 그려낼 수 없음. 난민, 사망, 장애인, 실종, 유족의 아픔, 연행, 구금, 어린이, 여성, 검문, 이동의 자유, 통금, 수색, 터전의 상실, 생계의 어려움 등 이런 것들은 숫자와 퍼센트로 환원해서는 평화적 시선에 다가갈 수가 없음.

○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
- 바그다드 공습 당시, 이를 지켜보던 중동 사람들의 비통한 얼굴들의 경우. TV 모니터 앞에 모여 유력 언론 매체들이 분석해 보여주는 입체 지도를 우리와 똑같이 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엔 상념이 가득했음. 마치 미사일이 날아간 그 끝자락에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표정. 자기들처럼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삶과 터전이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음을 상상하고 있는 듯.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가?
- 이것은 ‘친구되기’와 같음. 그러므로 평화의 시선은 ‘관계’의 문제. 즉 ‘누구’의 시선인지를 의미함. ‘타자’를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시선은 ‘적’, ‘외부’를 문제시 하는 것이기도 함. 국가 틀이 기준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보는 시선. 따라서 ‘어떤 국가’가 아니라 ‘어떤 네트워크’인가를 모색하게 하는 일.
- 한편, ‘그들’도 ‘친구되기’는 열심히 진행시키는 중이며 오랜 관행임(부시, 노무현, 블레어, 자르카이, 말리키...).

○ 빼앗기는 평화의 시선
- 반전평화운동은 세계 3대 세력과 늘상 마주함. 1) 국제주의 국가정치세력과 지역 군벌, 2) 초국적 자본(기업), 3) 국제주의면서 초국적인 종교집단.
- 이들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국제주의’임. ‘국제주의’는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윌슨 미국 대통령이 대외 정책 기조로 내세운 용어이기도 함. 이들 세력들은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제주의’를 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되었음. 오늘날 ‘세계화(지구화)’, ‘신자유주의’ 등으로 계승 발전됨.
- 이들은 국제주의면서 초국적이지만, 이를 밀고 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가주의’라 할 수 있음. 이 모두는 ‘이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 즉, ‘국가주의’로 ‘국제주의’하는 것이며 국가(우리)의 세계화판이라 할 수 있음. 이익('국익‘)을 위해 국가(권력)은 세계 정치적 경제적 질서에서 가장 주요한 행위자로 나서고 있는 상황임. 즉 이들은 ‘국제주의’ 안 하면 안 되는 것임. 강대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는 바로 국제주의, 즉 국가를 넘는 국가주의였기 때문.
- 강대국들에게는 국외/국내의 구분이 거의 없어 보임. 세계 전체가 그냥 자기 국가로 삼고 있음(‘제국’). 반미-반서구 무장세력들을 범죄집단 취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음. 국외의 문제가 아니라 자국 내 ‘범죄’로 인식하는 경향(마치 국내에서 ‘진압’하는 것과 같이). 그러나 자기 말을 듣는 ‘국민’만 ‘국민’임. ‘테러와의 전쟁’은 이런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줌. (예- 미국의 빈 라덴 인도에 대한 탈레반에 응답(이슬람에서 재판을 하겠다)을 미국이 거부)
- 이들은 오늘날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음. 평화/인권/안정/지원/국제주의 등을 언명하면서 자기들이 뭔데 ‘치안’과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나서고 있는 것은 세계 관리-통제-지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함. 그것은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이익을 위해 세계에 자기를 관철하려는 것임. 특히 ‘산업’과 관련이 있음.
- 따라서 자유로운 ‘산업’을 위해(즉, 자본주의를 위해) 불복종하는 무장세력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 일부러 ‘타킷(악의 축, 테러지원국, 테러집단 명단 발표)’을 정해 진출(즉 국제주의)할 필요가 있었음. ‘타킷’을 정해 공격하면 ‘반미’가 득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실보다는 득이 커기 때문에 계속 반복함(대규모 국방비를 사용할 수 있으며 게다가 국민의 지지를 계속 받으면서 또 보수적 정책들을 관철시키면서 공적 사적 돈을 전횡할 수 있으니까.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특히 경제적 이익들은 광범위한 지지로 돌아오게 하기에 충분하게 만듦. 심지어 국가는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 내에서도 경제에 관해서는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을 볼 수 있음.
- 이런 질서 속에서는 언제나 승자는 권력임. 특히 국가와 산업(혹은 자본). 패자는 그 외의 모두. 경기의 승자는 선수가 아니라 주최한 회사이듯. 경제적 지구화의 군사적 모습!
- 그럼에도 이들은 ‘평화’를 참칭하는 세력들이며 반전평화운동은 이들에게 ‘평화의 시선’을 빼앗기고 있음. 예전엔 NGO에 의한 것들을 이들이 스멀스멀 흡수해감. 민간단체, 민간지원 등의 이름으로 혼합해서 진행하는 이유. 기업들의 기부문화나 평화자원봉사단 같은 것은 아름답게 여겨지게까지 함.
- 한국도 마찬가지임. 이들의 대열에 들어가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음. 그러나 대단히 미숙하다고 보여짐.

○ 반전평화운동의 결절점은 탈군사주의-탈국가주의
- 따라서 오늘날 운동 과제의 내용은, 국가 또는 국가주의(내셔널리즘)에 대한 문제제기라 생각함.
-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활동임. 힘의 질서와 현실주의 속에서 이상주의라고만 치부되기 딱 쉬움. 인식 전환을 대단히 어렵게 함. 무엇보다 국가주의가 만들어 오는 이익에 대한 절대적 맹신이 도저함. (예-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한 악플(“국가를 곤혼스럽게 만든다”), 영화 디-워 논쟁 등 수도 없음)
- 한편, 이라크나 아프간이나 팔레스타인처럼 전쟁과 점령을 당하는 나라의 경우 민중들의 독립 요구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음.
- 이를 위해 평화운동은 ‘평화 대 안보(국가)’에 대한 구도로서 이를 명확히 제시해낼 수 있어야 함. 전쟁은 변화하고 있으며 국가들의 영토전쟁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과 같이 한 틀 속에서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는 평화운동도 기본적으로 국가 경계를 넘어서야 하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해 대안적 연대를 형성해야 함.  
- 그리고 ‘국제연대’나 ‘국제주의’가 아니라 그냥 ‘연대’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됨. 국제주의는 평화개념으로서 더 이상 가치가 없음. 우월의식과 소명의식 및 심지어 군사 공격도 국제주의라고 언명되는 상황이기 때문.
- 일부에서 제기되는 ‘평화국가 만들기’는 분명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함. 그러나 성격이 어떤지를 떠나 ‘국가’에 대한 문제 또는 위험성은 좀 더 면밀히 주의를 기울이고 봐야할 필요성 있을 것임.  

(3) ‘평화운동의 경합과 협상’ : 축소되는 ‘평화’를 극복하는 것

○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언명
- 별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맥락적으로 한반도에 갇힌 시야를 양산할 수도 있음. (예- 이라크평화팀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나 교황 등 평화를 대표한다는 인물들에도 참여호소. 교황은 반대 표명했지만, 김대중은 아무 말 못함, 근데 한반도 전쟁에 대해서는?)
- 이미 주류 정치권의 언어가 되었으며, 평화에 대한 ‘체제’론과 경로 중심성을 양산할 수 있으며, 민족주의에 기대게 하는 흐름을 배태하며, 심지어 한반도 중심의 평화담론은 군사주의와 상충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함. (예- 제주는 평화의 섬이기 때문에 해군기지는 있어야 한다?)
- 또한 ‘경협’과 같은 경제 논리에 담론이 포섭되고 있으며, 결국 국가주의 패러다임과 인식에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

○ 봉합과 축소
- ‘평화’는 다시 국가로 봉합되고 국가나 체제에 기대하거나 권력들에 호소하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인가?
- 현 주류 평화담론/반전담론들은 반국가주의-반군사주의운동이 되고 있지도 못하고 심지어 반영해내지도 못하는 우려가 제기됨. 점점 시민사회운동을 규율화하는 국가권력의 지배담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민족적, 국가적 틀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의 추진자인 정부와 주요 정당들은 PKO법, 테러방지법, 테러자금조달억제법, 통비법 등으로 ‘반전평화’를 법과 제도를 동원해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있음. 자기들이 말하는 ‘평화’ 말고는 평화가 아니며, 민중들의 평화연대를 부인하고 심지어 차단하려는 과정이 한 축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현실화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평화를 축소시키며, 나아가 평화가 아니라고 생각함. 반전평화운동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오히려 진짜 한반도 평화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아닐까.

(4) 필요로 하는 능력들

(5) 반전평화운동의 대안모델 잡아가기

○ 정확한 목적? 유용한 임무?
- 결과와 목표가 중요한 것이라기 보다 과정 속에서 목적을 바라보는 운동흐름이 필요함
- 위대한 업적, 많은 효과 같은 것을 계산하는 순간 ‘평화 상실’의 함정에 빠짐
- 3자의 평화운동 또는 타자와 연대하는 운동에서 어떤 대안모델을 잡아가야 하며 (현실에서 모델잡기는 일정정도 불가피하게 타협을 수반할 수도 있지만) 적절한 활동 모델은 기획되고 고안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봄.

○ 실질적인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
- ‘새로운 중동질서’, ‘새로운 세계’ 등은 너무나 거대한 문제이기도 하며 현실적으로 엄청난 힘들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들은 무력감과 거리감을 쉽게 느낄 수밖에 없음.
- 현안 분석 이상으로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 그러므로 연관성을 깊게 하는 것. 미시적 부분과 거시적 부분을 연결하고 구조적 문제와 개인 삶의 문제를 연결하지 못한다면 평화운동은 현실적 운동이 되기 어려울 것임. 게다가 저들도 ‘평화담론’과 겉포장과 수사학을 광범위하고 현란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평화는 빼앗기기 쉬움.
1) 현지연대의 측면
-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무장독립세력이나 강경파와 연대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님. 그럼 온건파와? 이라크 시민들(특히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시민)과 연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인가?
2) 연대운동의 측면
- 유명 인사들의 메시지가 아니라 각 삶의 현장에서 보내온, 구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보고들이 연대운동의 기본적 기반. 따라서 매스미디어 따위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운영하고 지원하는 어떤 네트워크. (예- 메일리스트 네트워크)
- 대항하는 연대의 언어는 구체성에 준거할 수밖에 없음(현재 언어가 없는 점을 넘어서기). 당장의 저항력(‘힘’)을 가지기 위해 주장을 편의적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함.
- 국가 경계를 넘는, 탈군사주의-탈국가주의 관계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함.


5. 이후(어떤 목표와 과제를 생각할 수 있을까)

* 준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함. 그동안(5~10년) 사이 반전평화운동은 상당히 원숙해졌다고 여겨짐. 그러나 여전히 깊이가 없고 관계를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있음.

○ ‘어떤’ 네트워크 만들기
- 오늘날 반전평화운동에 관점의 차이들, 태도의 차이들이 드러나고 있고 (예전에는 모두 뭉뚱그려져 있었다고 할 수 있음. 큰 범주로도 동의되어졌음) 따라서 더 드러내고 확인하고 (검증도 하고) 하면서 변화하고 변화되어야 함. 이제 어설프게 큰 범주로만으로 연대를 구성할 수는 없는 시기가 되었음. 따라서 보다 다양하게 분화-발전될 필요가 있음.
- 그러나 의제와 내용들이 너무 협소하고 분절되어 있음. 적절한 협력체가 필요함.
- 또한 ‘동시에’ ‘여러 사안’을 함께 이야기해가고 수용하고 통섭해갈 수 있어야 함.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네트워크.
- 피지배계급인 ‘나’를 (가능하지도 않은) 국가 같은 지배기구로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삶들의 연결로 확장해 가는 기반으로 작용할 어떤 네트워크

○ 예비할만한 활동들과 민간지원단
- 전쟁 (피해) 조사/기록과 보고 : 현지인 스스로의 진행에 함께 연대. 특히 파병 한국군의 실태에 대한 조사는 책임이 있음. 이 활동에는 ‘자세’의 문제(조사-기록자의 태도와 인내 등)가 중요할 것이며 수다한 난관들을 극복할 충분한 준비가 구축되어 있어야 함. 특히 피해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사-기록한다는 점에서 현지 삶에 대한 이해와 심적 공감능력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함.
- 피스 저널(리즘) : 어떤 의미에서 최소한이자 가장 중요한 활동일 수 있음. 고통에 대해 말하고 나누고 교류하면서 연대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 지배담론의 수사학을 걷어내기 위한 피스저널 네트워크.
- 현지에서의 직접행동과 연대활동 : 관계 만들기, 공감하기가 아니면 의미가 거의 없을 수도 있음.
- 현지 시민사회와의 연대 : 누구와 어떤 가치로 할지에 대해 같이 돌아보며 진행해야 하고 짧은 기간에 뭔가 이루려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
- 피해-생존자 지원하기 :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고통과 피해를 도구화하는 것,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것, 지원운동은 물질중심이 아니라 고통을 다가서고 함께하는 차원에서 진행해야 함.
- 가해자 처벌운동과 피해 배상운동 : 단순히 재판을 열고 보상을 받아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책임을 묻는 노력이고(지금까지 거의 책임을 묻지 못했음)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 그러나 매우 방대하고 치밀하고 전문적인 준비가 필요한 활동

- 민간지원단(민간지원 자원활동네트워크)
- 군사적 진출 및 개입에 대한 반대와 항의와 함께, 군사적 방법 자체에 대한 대안모델의 형성 제기. 비군사적 방법을 요청하는 일. ‘민간지원단’ 표현은 군사개입에 대당하는 사회적 표현이지만 이미 적극적으로 포섭되고 있는 중이기도.
- 민간지원단은 개인의 변화와 국제 관계의 변화를 연결하고 구조적 문제와 개인 삶을 연결하는 운동의 조직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음.
- 이는 국제 사안들을 상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하며,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삶을 일구는 노력들을 연결할 수 있고, 현지 상황과 감성에 기반하는 관점과 시선을 가지게 할 수 있으며, 시기적절한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음.
- 무엇보다 군사력 진출과 국익 논리와는 다른 ‘친구’라는 관점을 넓혀가게 할 수 있으며 군비증강 필요성의 근거들에 직접적인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을 것임.
- 또한 체험의 방식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가능하게 하기에 공감능력을 키우고 평화 감수성과 문화를 익히게 할 수 있음. 평화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할 때, 민간지원단 활동은 상호연결을 만들고 또 연결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전쟁체제를 의문시하게 만드는 현실적 실천양식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임.

○ 필요한 능력 갖추기 : 공감능력
- 평화는 능력?
-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연대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은 공감하는 능력. 그것이 평화를 바라는 같은 부류임을 증명하게 하기 때문. 그렇다면 공감한다는 의미는 무엇? 무엇을 공감하고 연대는 어떤 것?(예- 사라 러딕 : 타자의 고통 역시 감당할 수 없고 거부되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공감력 있는 통찰). 이해하기에서 시작(단지 사실들을 아는 것이 아님). 이는 누구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것. 그러므로 공감은 관계의 문제임.
- 진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전쟁과 폭력에서 발생하는 실제 감정과 갈등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그렇다면 구체적 삶을 연관시키는 정치적 시선을 가질 수도 있음.
- 그동안 감성은 국제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전문적이고 군사적인 이론, 국가이데올로기, 인종적·문화적·성차별적 우월함, 정의에 대한 환상 등에 의해 묻혀 있었음. 그러나 실제 평화를 위한 행위는 감정과 사유와 행위가 이미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감정은 반성을 요구하며, 반성은 행위를 요구하고 행위는 다시 감정을 일으킴. (예- 이라크 반전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던 것은 파괴의 아픔에 삶을 연결시킨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
- 그러므로 공감능력은, 한 사람의 생각일지라도 그 생각의 여건과 미치는 영향을 물으며 모두에게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갈 수 있게 함. 이 세계가, 서로 연결된 그물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함. 운동은 사실적이게 되고, 공감을 통해 전쟁 같은 절망 상황에서도 평화를 찾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임.
- 평화운동은 기존의 국제정치적 문제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타인의 고통 같은 감성을 통해 정치화하는 방식(물론, ‘저들’도 이렇게 하지만 모순). 따라서 문제의 거대함과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함. 물론 이러한 방식은 타인의 경험을 경청하는 인내와 공감력을 요청하는 일. 공포의 유대감 대신 평화의 유대감의 가능성.
- 그러나, 과도한 감성에 대한 주의가 필요(예- ‘미안해요’). 왜 미안한 것일까?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게 할 수도 있으며 연결의 설정이 잘 못될 수 있음. 즉 [국가-군대-나]의 동일화를 표현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음. 감성을 어디에 위치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 국가를 넘는 새로운 관계를 실제로 형성하는 가운데서 ‘미안함’도 의미있는 감성이 될 수 있음. 그러나 공감하기 어렵게 하여 금방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

○ ‘좋은 말씀’과 로드맵 또는 경로에 유의하기
- 전지적 관점에서 평화의 로드맵 또는 경로를 설정하고 말하는 것은 의미없음 (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무슬림을 사랑하라는 말이었음. 이것이 아니면 이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음)
-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고 다 말 할 수도 없음(원래 불가능).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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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2006 반전평화연대의 밤 '평화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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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화 회원이 후원까페에 올린 경과 과정 관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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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차모임 내용과 맡은 일! (새 팀장 선출~ 아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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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이라크 모니터링 및 분석, 브리핑 계획 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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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이라크팀 활동 계획에 관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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