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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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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다드 현지 보고서
음.. 아무도 안 올려서 올립니다.
이동화의 바그다드 현지 보고서입니다.  (주석이 달린 내용은 첨부파일합니다.)


  
♦1차 바그다드 현지 보고서♦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라크, 바그다드의 모습




2003년 12월 12일 나는 바그다드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는 국경택시에 몸을 싣고 6개월 동안 정들었던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왔다. 당시 6개월간의 생활을 뒤돌아 볼 때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아쉬움, 안타까움 등등.......




2003년 3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 반하여 미국의 조지부시정권은 이라크전쟁을 일으켰고,  21세기 최초의 전쟁을 몸으로라도 막아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이라크로 모인 수백 명의 인간방패(휴먼쉴즈)들은 자신들의 힘의 한계에 절망했고 전쟁은 예상보다 빠르게 종결이 되면서 전후 복구를 위해 전 세계의 많은 ngo단체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이라크에 모였다. 그 중에 한명이 나였고 전후(戰後) 이라크에서 이라크 민중에 의한 민중지원을 하기 위해 6개월의 시간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보냈지만 정말 이들에 의한 민중지원을 했는지에 대해서 자문을 했을 때 그리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고 이는 다시 돌아왔을 때에 ꡐ어떠한 것들을 준비해서 와야 한다.ꡑ라는 개인적인 숙제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4년 6월 5일, 이라크는 여전히 전쟁 중이었고, 이러한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이라크의 어린이들을 위한 ngo설립과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라크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 다시 이라크행 비행기에 올랐다. 무엇보다 일회성 민중지원이 아닌 그들에 의한 ngo 건설에 같이 하기 위함이었다. 6월 6일 생각보다 빨리 바그다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은 황량한 벌판과 뜨겁게 불어오는 사막의 먼지바람, 내리쬐는 햇볕 등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 후 작년 12월까지 이라크로 들어오는 방법은 암만(요르단), 터키에서 국경을 넘는 택시를 타는 방법이 주를 이루었는데 최근에 암만에서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비행기 편이 생겼다. 특히나 암만에서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서 외국인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과 약탈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이 고속도로 안에 팔루자(최근까지 미군에 의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저항세력들이 가장 치열하게 미군과 교전을 하였던 도시)가 위치하고 있어서 외국인의 차량은 저항세력의 연성타켓(soft target)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암만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그다드로 들어왔다.




바그다드에 도착한 후 나는 6월 25일까지 약 20일간 짧은 생활을 하고 요르단 암만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김선일씨 사건이후 외국인에 대한 공격(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파병당사자국)의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고 6월 말일로 예정되었던 정권이양시기에 맞물려 저항세력들의 총공세가 예상되었기에 현지에서 ngo를 만들고 그들의 삶의 고통을 기록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같이 일하는 이라크인들이 한국인과 함께 일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저항세력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20일 동안 바그다드 내에서 지내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중심으로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치안 상황




종전 선언이 있은 지 1년이 훨씬 넘은 지금 이라크의 치안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점령당국과 이라크인들, 그리고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신기자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치안의 악화를 직접적으로 느낀 것은 작년 12월까지 거주했었던 바그다드 외곽에 위치한 알 마시텔 지역의 변화된 분위기였다. 작년 후반까지도 이라크의 저항세력과 점령군과의 교전은 계속적으로 있었고 점차 증가하고 있었던 추세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마을 내에서 느끼지는 못했다. 외부적으로는 많은 자살폭탄공격, 게릴라전, 공격과 반격이 있었지만 마을내의 분위기는 이와는 좀 다르게 나름대로 마을의 종교지도자가 실질적인 장악력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점령군과 점령군에 동조하지 않았을 시에는 안전했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알 마시텔의 지역의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올해 초 저항세력들의 잇단 외국인 납치와 참수, 그리고 무차별적인 공격(점령군 캠프와 정부관공서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 거리, 사원등에서의 폭탄공격)으로 인하여 친하게 지냈던 이라크 가정인 아부알리 집에서 내가 온 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내가 거주할 때에도 커튼을 쳐서 외부의 시각을 차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이라크인들 조차 저항세력의 공격에 안전하지 않은 지금에 저항세력의 연성타켓(soft target)이 될 확률이 너무 높은 외국인인 내가 밖으로 돌아다녔을 경우 발생할 불상사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누구도 저항세력에 대해서 정확한 구성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저항세력들이 다양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오랫동안 세이크(종교지도자)였던 아마르의 말에 따르면 ꡒ저항세력은 크게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저항세력과 외부 이슬람 전사로 나눌 수 있고, 이라크인에 의한 저항세력은 사담정권시절의 직할대, 페다인 사담, 잔존 군인들(이들은 대부분 수니파이기도 하다.) 쉬아파내의 급진파이자 강경반미투쟁을 했던 몰타다 사드르의 민병대인 마흐디군1) 으로 구성되고 외부 이슬람 전사는 알 카에다 세력과 시리아와 터키 쪽에서 넘어온 무장세력들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넘어온 이슬람 전사들에 대해서는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라크인들의 생명도 개의치 않고 공격한다.ꡓ라고 하였다.  




점령군의 잘못된 점령통치가 계속되면서 이라크인들의 원성은 높아졌고 이라크인들의 눈에 비친 점령군의 모습은 아부그래이브 교도소 수감자학대, 팔루자지역의 민간인 학살, 수니삼각지대1)에 대한 잦은 진압작전, 무슬림의 전통을 이해하지 못한 체 벌어지는 민사작전으로 인하여 점령초기의 시각과는 완전히 달라진 최악의 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많은 이라크의 젊은이들은 몰타다 사드르의 반미무장투쟁에 호응하고 사드르의 마흐디군에 가입하고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종전 이 후 몰타다 알 사드르의 세력은 미비하였다. 알 사드르의 개인적 역량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인 모핫메트 바킬 알 사드르2)의 후광이 컸다. 2003년 10월, 몰타다 알 사드르는 쉬아 모스크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민병대를 모집했고 이에 미군에 의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은신처를 옮기면서 지속적으로 대외적으로 반미무장투쟁을 선언했고 이에 미군의 점령통치에 분노한 다수의 이라키들이 이에 호응하고 점차 몰타다 알 사드르의 세력은 커졌다. 그래서 종전 선언 이 후 세력이 미비했던 몰타다 알 사드르와 그 추종자의 세력은 이라크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존재로 부상하였다. 이는 그동안 미군과 점령군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쉬아파내에서 급진파 세력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의미 있는 현상이 된 것이다.




돌아와서 이라크 내의 치안의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는 종파간의 갈등과 종족간의 갈등이다. 이라크 전체 인구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쉬아파는 사담정권시절 억압을 받았었고, 많은 쉬아파 종교지도자들이 사담정권에 의해 죽거나 해외로 도피하여 반정부투쟁을 하였었다. 종전 선언 이 후 쉬아파의 정치적 역량과 발언권은 커졌고 미군정도 IGC(iraq governing council,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을 구성할 때 다수의 의석을 쉬아파에게 배분해주었다. 이에 이라크 권력내부의 투쟁이 발생했고 이는 쉬아파 종교지도자와 과도 통치위원에 대한 암살과 자살폭탄공격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도 수차례 쉬아파와 수니파 모두가 종교의식이 있는 금요일 예배가 끝난 후에 대규모 폭탄공격이 있어서 수십, 수백의 이라크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사망했다. 이러한 내부권력투쟁이 외부저항세력에 의한 이라크 내부혼란조성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고 또한 미군정에 의해 조작된 사고라는 음모설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라크 내부 종교지도자와 그 세력에 대한 공격은 이라크의 인들의 사고에 엄청난 혼란과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쿠르드 인과 쿠르드 정당에 대한 공격도 빈번히 있어왔다. 누구에 의한 공격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이 역시 이라크 내부의 치안 불안감을 높인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이렇듯 종전 선언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점령군과 저항세력간의 계속되는 전투, 미군을 위시로 한 점령군의 계속적인 민사작전, 저항세력의 외국인을 비롯한 이라크 민간인 공격, 종파간의 갈등,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현재 이라크의 치안상황은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전기상황




이라크에 살면서 가장 피부로 불편을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전기상황일 것이다. 전쟁 직 후 이라크는 하루에 정전이 2시간 단위로 약 3~4번 정도 있었다. 그 빈도는 차츰 늘어나다가 이내 조금씩 나아졌다. 하루 24시간 중 전쟁 직 후에는 약 8시간 정도 정전이 되었다가 차츰 전력사용이 급증하는 2003년 여름철(7~8월)에 약 10시간 정도 정전이 되었다. 여름철이 지나고서 라마단이 시작되는 2003년 10월말 즈음에는 하루에 절반인 12시간이 정전이었고 당시 2003년 11월 저항세력의 총공세가 있었던 시기에는 2~3일 동안 전기를 전혀 공급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CPA와 이라크 임시정부의 발표는 계속 전력시설을 복구해 나아가고 있고 연말에는 전력공급을 하루 16시간 이상 공급할 수 있을 거라고 TV를 통해서 확언했다.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라크의 전력사정은 놀랍게도 작년 11월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악화되었다. 그래도 하루의 절반은 전기가 들어왔는데 지금은 하루에 14시간정도 정전이 되고 그 이외의 시간에만 전기가 들어왔다. 일년 이상 전력공급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을 CPA와 이라크 임시정부, 그리고 이라크인들은 서로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점령당국 측에서는 계속되는 저항세력들의 발전소의 공격이 가장 큰 이유이라고 설명했고 전기선의 도난이 계속이어지고 있어서 전력복구가 늦어지고 있고 때로는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수의 이라키들은 전력난의 이유가 점령당국의 무성의로 인한 것이고 그에 대한 추가설명으로 91년도 걸프전 때에도 비슷한 전력난이 있었지만 사담정권은 단 3개월 만에 원상태로 복구시켰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소수의 이라키들은 이러한 전력의 난은 점령당국의 통치수단 중 일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바그다드 내 기술대학에 재학 중인 하이달은 ꡒ점령당국은 저항세력의 공격이 치열할 때 전력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여서 이라크 민중들의 고통을 증폭시키고 이에 대한 선전을 저항세력의 공격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서 저항세력과 이라크 민중들간에 이간질을 하려는 술책이다.ꡓ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계층은 이라크 민중들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자체 제너레이터를 구입해서 자체 전기를 조달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이라크민중들은 제너레이터를 구입하기 힘들기에 그냥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지냈었고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끼리 스스로 얼마씩 모아서 공동으로 제너레이터를 구입하여 3암페어, 5암페어씩 끌어서 쓰고 있는 상황이다. 1암페어당 매월 3달러 이상하니 적어도 각 가정마다 매월 10달러에서 15달러이상 전기를 추가로 공급받기 위해서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5암페어 정도의 전력으로는 간신히 집안의 전등이나 냉장고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여서 냉방제품을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여름철 한 낮의 온도가 50도 이상 올라가는 고온의 환경인 이라크에서 정전이 되었을 때에는 이라크 가족 식구들이 자신들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에 모여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버티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제네레이터도 잦은 고장으로 인하여 원활하게 전기를 공급받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높은 실업율




현재 이라크에서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치안상황과 더불어 높은 실업율이다. 여러 조사기관에 의한 실업율의 수치는 제각각 다르지만 대부분 50%이상으로 산출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실업율이 생긴데 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이다. 사담정권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21개월 동안,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3년 동안 의무복무기간이 있었다. 복무기간이 끝난 후에는 정권에서 많은 부분의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책임지기도 하고 알선해주기도 했다. 또한 정권당이었던 바트당은 많은 수의 이라크인들의 일자리가 되곤 했다. 그리고 외국계 기업은 극히 적었지만 이라크내국기업들과 정부산하기업들이 이라크인들의 일자리를 책임졌었다. 그리고 자영업이 성행했었다. 현재 무직의 상태에 있는 살람(바그다드 거주, 사담정권당시 무역업에 종사했던 이라키)의 말에 의하면 ꡒ사담정권당시에는 많은 취업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ꡓ




전쟁 이 후 CPA와 이라크임시정부는 기존의 바트당과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새롭게 행정체제를 개편하면서 기존의 공무원보다 훨씬 더 적은 이라키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살인적인 높은 실업율의 가장 큰 이유는 이라크내의 불안한 치안상황과 맞물려있다. 계속되는 저항세력들의 공격과 이에 대한 점령군의 반격, 이라크내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할 경찰과 군인들은 미처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과 점령군에 부역한다는 이유로 저항세력의 타켓이 되었고 이에 자체 방어를 하기에 급급했고 이는 미군과 점령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이라크 사회 내 치안상황이 좋지 않자 자연히 기업들의 활동은 축소되어지고 특히 외국계기업은 전 후 복구사업의 이익을 위하여 초기에 많이 이라크에 들어와 활발히 사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항세력의 타겟이 되면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연기하고 이라크를 빠져나가고 있다. 또한 현지 이라크인들 마저 밖으로 나다니기 어려운 지경의 불안한 상황이 되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고 있다. 현재의 이라크 내부의 치안상황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고서는 지금의 살인적인 실업율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의견이다.







반미, 반외국인 감정




종전 선언 이 후 처음부터 반미, 반외국인 감정이 높지는 않았다. 특히나 반외국인의 감정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다. 오랜 사담 후세인정권의 독재체제로 인하여 종전 선언이 있은 후 얼마동안은 상대적인 반(反)후세인 효과를 누렸다. 초기 세달 정도(7월 말)는 쉬아파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미군정과 미군정에 의해 임명된 IGC에 기대를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반후세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종전이 된 지 3달이 지나도록 전후 복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회간접시설(전기, 통신, 도로, 항만시설등)은 붕괴된 채 방치되어있고, 교육․ 의료서비스, 치안유지 등 국가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이라크인들의 삶의 고통은 가중되었고, 이 모든 원성이 미군정과 CPA, 그리고 미국에 의해 선출된 IGC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8월 23일 유엔본부3)에 대규모 테러 공격이 있으면서 저항세력의 본격적인 점령군 공격이 시작되었으며 이에 미군을 위시로 한 점령군은 무차별적인 대응공격으로 인하여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죽어갔고, 저항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명목으로 행해지는 가택수색, 체포, 구금 등은 이슬람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여러 요인들은 이라크인의 반미감정에 불을 지른 꼴이 되었다. 저항세력들의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미군정은 이라크와 이라크인들에 대한 민사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의 대부분을 저항세력에 대한 반격과 자체 방어에 집중하면서 이는 더욱 이라크인들의 삶을 방치한 결과를 빚었고, 이에 분노한 많은 이라크 젊은이들이 저항세력에 가담하게 된다.




사실 작년 12월까지도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느낀 반미감정의 수준은 그때보다 훨씬 높은 상태이다. 이에 중요한 계기는 아부그래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과 팔루자 지역의 학살 때문일 것이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집안의 가장을 위시로 한 가부장적 성격이 짙은데, 그들이 보았던 아부그래이브 포로학대 사실은 충격을 넘어서 무슬림들에게 치욕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고 그동안 공공연히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사실을 직접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4월에 있었던 팔루자의 학살은 지금도 정확한 사망자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으나 일부의 몇몇 보고서4)에 따르면 거의 1000명에 육박하는 팔루자 주민들이 미군의 공격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반미감정은 젊은 이라크인들에게 직접적인 반미무장세력으로 결집하게 하였고 이러한 부분이 기존의 반미감정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반외국인 정서는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나라에 대해서 더 극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미감정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보냈던 나라들도 동일시하여 보기 시작했으며, 특히나 이러한 나라들의 동향을 아랍방송에서 비중 있게 다루면서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이 자기나라에 어떤 나라의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고 어떤 나라들이 새로 혹은 추가로 군인을 보내는 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한국과 일본의 파병은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이 잘 알고 있고 왜 오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는 미군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에 다른 나라의 군인들에 의하여 더 깊은 상처를 새긴 셈이다. 작년 10월 중순 한국정부에 의한 이라크 추가파병이 결정되었을 시 이웃집에 살고 있던 젊은 대학생 하이달은 ꡒ한국의 전투병이 이라크에 온다면 나는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ꡓ그는 소위 말하는 저항세력도 아니고 급진 쉬아파세력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에 찼던 말은 미처 한국의 전투병이 오기 전에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실로 드러났다. 김선일씨 이전에도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파병국민들을 대상으로 이라크 현지에서 저항세력에 의한 납치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구금자(detainee) 및 일반 이라크인들의 인권상황




이라크 내의 구금자에 대한 인권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2004년 이라크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인 Occupation watch에서 발표한 ꡐ구금자 실태 보고서ꡑ에 따르면 미군과 점령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이라크인들이 체포, 구금당하고 있으며 이들의 수감생활 역시 비참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말부터 터져 나왔던 아부그래이브 교도소 수감자 학대문제는 현재 이라크인들의 인권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실제로 2004년 6월 15일 바그다드 ngo건물에서 만난 마홋메트 핫산에 의하면 ꡒ기자였던 나는 바빌 아덤이라는 곳에 취재차 갔다가 그 곳의 CPA요인에 의하여 체포되었고 2달간 아부그래이브에서 수감되었었다.ꡓ라고 하며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상대적으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으며 기자의 신분이었지만 뚜렷한 혐의없이 바로 아부그래이브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수감기간동안 잦은 구타와 육체적 고문을 당했으며 그 증거로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직접 보여주었다. 실제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명확한 직업이 있는 마홋메트 핫산도 뚜렷한 혐의 없이 아부그래이브 교도소에 2달간 수감될 정도이면 일반 이라크인들이 당하는 인권의 탄압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미군들이 탑승한 차량 및 탱크가 고속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앞의 이라크인의  차량이 비켜주지 않거나 와중에 끼어들면 미군차량에 승차하고 있는 무장한 미군은 총기로 위협을 하거나 심하면 직접 발포를 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인하여 미군은 주위의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을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대한다. 그러다보니 수십만의 미군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인권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언제든 그들의 사격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보며 ꡒ이것이 미국이 외쳤던 민주주의이냐? 이것이 미국이 외쳤던 인권보장이냐?ꡓ라고 하면서 항변한다.




교통상황




교통신호 및 도로의 상황은 6개월 전에 비하여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이라크 임시정부와 미군정, CPA(임시연합행정처)에 의하여 교통경찰들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고용이 되어 교통정리를 하고는 있었지만 문제는 계속되는 저항세력의 지뢰공격과 로켓공격으로 도로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점령군과 이라크 임시정부가 설치한 체크포인트와 군대기지와 관공서, 각 정당 사무실, 병원들이 자체경비를 위하여 도로에 설치한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으로 인하여 도로는 좁아져 있는 상태이다. 또한 매일 발생하는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인하여 미군과 이라크 경찰들은 도로를 봉쇄한다. 이렇게 되면 평소 10분 정도의 거리도 한 시간, 두 시간 이상 걸려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이러한 교통상황에서 이라크인들은 일년 이상 살아가고 있다.




그밖에.




이라크의 아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전쟁 상황에서 커가고 있다. 그들이 보고 듣고 접하는 것은 총성과 폭탄소리, 이웃집 친구들의 죽음소식,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군인들, 경찰들, 직업이 없어서 집에서 지내고 있는 어른들, 그리고 주위에서 구걸을 하거나 껌을 팔고 있는 또래의 아이들이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곳에서 살아남을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지하는 고민들로 가득차있다. 실제로 몰타다 사드르의 민병대의 구성원 중 나이어린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실제로 내가 거주하고 있는 가정집의 큰아들인 아홋메트(17살)도 사드르의 민병대에 가입하기를 원했지만 아홋메트 엄마의 강력한 반대로 가입하지 못하고 크게 다툰적이 있다.




많은 아이들이 화약놀이를 하고 모빌소총과 권총으로 놀고 있다. 그리고 또한 많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껌을 팔면서 돈을 벌기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도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바그다드 거리를 헤매고 있다. 또한 계속되는 전쟁 상황으로 인하여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있지만 이를 치료할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이다. 예전에 관계를 맺었던 알 마시텔 헬스센터(한국으로 치면 지역 보건소)에서도 의약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알 마시텔 헬스센터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의 담당자인 아마르는 ꡒ한국의 보건의료연합5)에 의약품 지원을 요청할 수 없겠냐?ꡓ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정리하며




6개월간의 이라크 현지 활동, 약 6개월간의 공백, 그리고 다시 찾은 바그다드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악화되어 있었다. 치안, 전력, 교통, 인권의 상황은 악화되었고 실업율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6개월 전과 비교해서 가장 바뀐 것은 나를 보는 시선이었다. 이는 종합적으로 미군정과 CPA, 그리고 IGC에 의한 잘못된 점령정책이 초래한 결과이고 더불어 미군에 요청에 의해 한국군 추가파병을 결정한 한국정부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6월 28일 미군정은 시급히 현재의 점령정책의 실패를 IGC에 넘겼다. 그리고 그들은 배후에서 그들을 계속 조정할 것이다. 현재 다수의 이라크인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이 떠들어대고 있는 민주주의 정착이 아니다. 전기와 치안, 그리고 일자리이다. 이제 형식적으로나마 주권은 이라크 임시정부에 넘겨진 상태이고 이라크 임시정부가 시급히 이라크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에 응답하여 조치를 내려놓지 않으면 그들은 미군정과 똑같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또한 한국정부가 추가파병을 취소하지 않으면 싸늘하고 분노에 찬 시선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제 2, 3의 김선일씨는 발생할 것이다. 다시 찾은 이라크가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이 안에서 계속 삶을 지속하고 있는 이라크인들을 생각하면서 더욱 힘을 내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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