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바닥
[국제서명캠페인] 군비 대신 보건 의료에 투자하라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의달 공동행동
314 기후위기 비상행동 온라인 행동에 함께해요~
평화바닥 2020년 총회 합니다~(4/10)[재공지]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전쟁행위 규탄·파병 반대 평화행동(1/18)
[이라크와 중동의 평화]
[평화공부ㆍ평화교육]
[평화군축ㆍ평화행동]
[평화연구 군사주의대응]
[버마 어린이교육 지원]
[평화도서관 만들기]
[자료실]

[세월호 기억하기 도서] '잊지 않겠습니다'를 읽고
[세월호 기억하기 도서]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읽고
[세월호 기억하기 도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세월호 기억하기 도서] 가까스로 인간이고자 하는 12개의 이야...

바닥의 시선 Sights of Ground


0
 122   7   2
  View Articles

Name  
   평화바닥 
Subject  
   [날맹] 위계질서와 닫힌 관계


위계질서와 닫힌 관계

날맹





수용자 취사장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 새 3주, 곧 한 달이 되어갑니다. 하루 세 끼 식사를 일주일 내내 공급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재소자들의 식사시간에 맞추어 배식을 하려면 그전에 저희도 식사를 마쳐야 하지요.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밖에선 생각해보지 못했던 식당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삶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막상 이곳의 질서 한가운데로 던져지고 나니 인간들이 집단을 이루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 배식 나갔다 돌아온 통들을 모두 씻고 나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설거지를 마친 “신입”들이 부랴부랴 자신들의 빨래를 하는 시간입니다. 빨래터에 모여 앉은 남자들의 수다는 노동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수단이 됩니다. 같은 작업장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자유에 대한 뒷말들을 서로 나누다보면 어느새 모종의 연대의식마저 생겨나는 기분입니다.

  결국은 교도소에 똑같이 수감된 ‘을’들인데 이 ‘을’사이에 또 다시 갑을 관계가 만들어지는 이곳에서 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에 처음 며칠은 많이 허둥댔습니다. 수시로 저를 찾는 ‘선임’들이 제게 반말로 건네는 ‘명령’을 들으며 눈물이 찔끔 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왜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힘들어 어안이 벙벙했던 저는 우연한 기회에 들은 한 교도관의 말 덕분에 나름의 이해와 명료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강제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묘하게 제 마음이 진정되는 효과가 발생하더군요. 물론 강제노동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똑같이 고생했는데, 억울하면 먼저 들어오든가”라는 말을 수긍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있습니다.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이라는 역할이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우열이 정당화되는 것이 ‘닫힌 교육’의 특징이라고 했을 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이 곳의 위계질서는 이 닫힌 관계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곳 역시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노동의 숙련정도에 따라 먼저 배운 자의 경험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배운 자와 나중에 배우는 자 사이에 인격적 우열까지 자동으로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먼저 고생하고 지식을 획득한 자에 대한 존중과 보상이 타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제가 생각하는 공평함, 인간에 대한 존중과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 군대의 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단순히 군사주의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 만의 특징인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인간성에 속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계 서열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지향하는 앎의 양이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요구됩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관점이 하나로 정해져 있고 그 하나의 관점만이 권위를 갖는 곳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명확합니다. 해당 지식을 이미 획득한 교사-전문가는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반면 진리가 아닌 관점 이외의 지식, 배움을 좇는 학생-비전문가는 열등생 혹은 이단아로 배척을 받습니다.

  다양한 관점의 소통과 경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하면 기존의 일원적 권위체계가 붕괴할 수밖에 없으므로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위의 근원인 한줌 알량한 지식을 신성화하는 한편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한정된 지식의 공간은 태생적으로 새로운 배움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대화를 통해 서로 변화할 수 있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자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 익히면 되는 곳에선 각자의 지위에 맞는 특정한 역할만이 주어집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관료제의 특징은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이 질서 속에서 튀면 안 된다는 것을 익혀 ‘성공’한 자일수록 개인의 양심이나 책임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해진 것만 배우면 되는 곳에선 ‘창의성’ 역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군대-관료 사회에서 창의성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왜”나 “무엇”에 대한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테크닉 혹은 기능주의적 성격을 띌 것입니다.

  “담당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직접적 책임을 면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조직의 명령 뒤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바로 그 문화가 있었기에 나치의 유대인 절멸 계획도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용산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과 군인들도 따지고 보면 단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국가의 입장에선 칭찬할 만한 존재인 셈이죠. 위계 질서가 확고한 닫힌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사문화를 거부하고 이곳에 왔다가 다시 군대와 동일한 위계질서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저는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적개심이나 두려움으로 제 시야를 스스로 가두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제 자신과의 연결을 잃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좀만 참으면 너도 편해질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에 실망하여 그들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철회하기 전에, 인격적 존중을 받고 싶은 제 마음을 떠올린 후 다시 상대의 인간성과도 연결을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두려움, 우울함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한치 앞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정신줄을 놓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바깥에서 보내주는 편지 그리고 면회는 제가 기운을 추스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운이 다시 생길 때마다 이곳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곤 합니다. 외로움을 달래는 저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간 병역거부를 한 4185명이 살아낸 6473년의 시간 속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징역을 견디는 저마다의 지혜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제가 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프리모레비나 무기수로 20년을 산 신영복 선생을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제 자신을 투사적 진지함으로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저의 징역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나리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간 또한 지나가리란 믿음 그리고 이 시간을 경험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으로 하루하루 후회없이 보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밖에서 저를 비롯한 병역거부자들을 걱정하고 지지해주는 분들의 일상에로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평화바닥 회원인 날맹님은 <평화도서관'나무'> 등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병역거부로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 1년6월 수감생활을 하는 날맹에게 편지를 보낼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53-600)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837번 문명진 앞
* 날맹 후원까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cafe.daum.net/copeace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 31호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bbs/zboard.php?id=www_letter





no
subject
name
date
hit
*
102
  [여옥] "집속탄 '부끄러움의 전당' 5위 한국, 국제적 관심 받아"

평화바닥
2011/10/04 2851 279
101
  [성주] 영화 <천안함>과 KAL858 : ‘경합하는 진실’에 대한 사유

평화바닥
2011/04/24 2790 280
100
  [여옥] 포스코, 인도의 '용산'을 만들려 하는가

평화바닥
2010/02/24 3350 282
99
  [임유진] 당신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평화바닥
2011/04/06 2553 284
98
  [염창근] 제주 강정, 지금 이대로가 평화 [2]

평화바닥
2011/08/31 3408 284
97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의 문제들

평화바닥
2013/07/09 4314 286
96
  [여옥] 몸보신이 필요할 때 <채식속으로 Go!Go! 4편> [1]

평화바닥
2009/05/31 2503 288
95
  [날맹/염] 세계 최대 집속탄 피해국 라오스,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평화바닥
2010/11/24 2840 289

  [날맹] 위계질서와 닫힌 관계

평화바닥
2011/08/15 2851 290
93
  [염] 벽들 : 예루살렘, 베들레헴, 잘라존의 벽 - H에게

평화바닥
2009/12/16 3169 293
92
  [여옥]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채식속으로 Go!Go!5편>

평화바닥
2009/08/08 2811 306
91
  [여옥]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물음

평화바닥
2010/07/31 3380 313
90
  [물꽃] 피임, 임신 공포, 낙태, 산부인과...에 관한 이야기

평화바닥
2010/09/03 2665 317
89
  [물꽃] 나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과 풀리지 않는 대답 ―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를 걷다

평화바닥
2009/10/07 2603 319
88
  [여옥] 다른 존재의 고통을 딛고선 삶을 돌아보며 <채식속으로 Go!Go! 3편

평화바닥
2009/03/17 2461 320
87
  [물꽃] 귀화 외국인에 대한 ‘서약서’ 강요

평화바닥
2011/01/07 2814 322
86
  [날맹/염] “나는 지뢰ㆍ집속탄 금지운동에서 젠더 문제가 가장 중요해졌다”

평화바닥
2010/11/24 3081 324
85
  [임유진] 이게 다 주식때문? 우리집에 '볕뜰날'은 없다!

평화바닥
2012/01/20 4335 327
84
  [염창근] '아이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돌아보며

평화바닥
2010/02/20 3308 328
83
  [염창근] 아래로부터의 국제법

평화바닥
2012/03/09 4248 337
[1] 2 [3][4][5][6][7]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
평화바닥 |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3-2 망원동새마을금고 5층(월드컵로25길55) | 찾아오는 길
070-7723-0320 | peace-ground@hanmail.net | http://peaceground.org | 회원가입
후원계좌 | 국민 527801-01-109307 염창근(평화바닥)ㆍ우리 526-227273-02-101 염창근ㆍ농협 079-12-711224 조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