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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영화 <천안함>과 KAL858 : ‘경합하는 진실’에 대한 사유


영화 <천안함>과 KAL858 : ‘경합하는 진실’에 대한 사유

성주


“가끔 난, 우리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닥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이 알려준, 미국의 영화배우/감독 에단 호크가 했다는 말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만든 김도균 감독 소식을 접하고 이 말이 떠올랐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김도균 감독은 천안함 사건이 처음에는 그저 궁금했었다고 한다. “진실에 대한 갈증도, 사사로운 열정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사건을 영화로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가 감독에게 닥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정상 영화를 보지 못 했지만, 진중한 문제의식과 많은 고민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나로서는 영화 <천안함>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1987년 KAL858기 사건을 떠올렸다. ‘왜 이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공식수사 발표에 따르면, 북쪽의 공작원 김현희가 지령을 받아 남쪽의 항공기를 폭파시켜 1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다. 하지만 사건 직후부터 ‘쉽게 설명되지 않는’ 여러 문제들이 제기됐고, 결국 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조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안기부의 공식수사와 그 뒤에 이루어진 재조사에 대한 평가와 입장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고민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건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진실 개념’에 대한 사회적 물음

물론, 김현희-KAL858기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바로 신상옥 감독이 만든 <마유미>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작 및 개봉시기 등을 고려했을 때, 당시 공식수사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반북-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김현희는 1990년 4월 사면되었고, 영화는 같은 해 6월 개봉되었다). 따라서 사건에 대한 나름대로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깃든 영화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공중파 방송사가 제작한 또는 방송사를 통해 소개된 다큐멘터리가 있지만 이는 좀 다른 경우다).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내 자신이 이 사건으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KAL858기 사건은, (누구의 말이 맞느냐를 떠나)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 중요한 사회적 물음을 제기해 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진실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실체’로서 밝혀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 여러 가지 진실들이 ‘경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의 진실이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는가. 아니, 진실이라는 게 처음부터 있기는 한 것인가. 누가 그 진실을 ‘확정’하는가(한편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의 이런 고민은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최소한의 수준에서 일단 진실을 ‘찾아내야만’ 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진실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의 고민이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곧, 위치성의 문제이다).


‘눈을 뜬 채로’ 세상을 뜬 가족

“진실은 어떤 면에서 ‘상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이든 (구체적인 경우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고, 제시되는 증거가 또 다른 의문의 증거가 되고, 그렇게 확정되기 힘든 무엇들이 서로 공방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 생채기는 죽음을 앞둔 이의 눈마저 감지 못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KAL858기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해 왔던 어느 실종자 가족은  2006년 ‘눈을 뜬 채로’ 운명을 달리했다. 사람들이 눈을 감기려 했지만, 계속 안 감겼다고 한다. 그 분이 숨을 거두기 직전, 과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눈을 감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진실 문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혹은 그 경계를 이어주는 그 무엇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115명의 실종자 및 그 가족들만의 사건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KAL858기 사건은 ‘경합하는 진실’에 대해 어떻게 사유할 것이며, 누군가의 고통에 사회적 공명이 가능한가를 묻고 있는 나-너-우리-그들의 문제다.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져야 할, 그래서 더욱 공유되어야 할 이유다.


* 이 글은 <통일뉴스>에 실린 글을 조금 다듬은 것입니다.
* 성주 님은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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