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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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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 꽃다발을 싫어하는 여자


꽃다발을 싫어하는 여자


임유진


접니다, 꽃다발을 싫어하는 여자. 왜 갑자기 꽃다발이냐, 하면은 5월은 가정의 달, 성년의 날, 로즈데이(푸훕=_=근데 이건 도대체 왜 생긴 건가요?)다 뭐다 해서 꽃다발이 가장 많이 팔릴 것 같은 달이니까요. 예, 맞아요. 제 맘대로 오늘은 식물특집이에요(찡긋-* 제가 좀 ‘특집’을 좋..좋아해요).

저는, 밝음과 화사함의 대명사인 ‘아이들’이나 ‘꽃’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못됐다, 내지는 괴팍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사실 전 아이들을 볼 때, 어떤 표정으로 봐야 할지 망설여지고, 꽃을 받을 때 어떤 표정으로 받아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아이들은 사람이라면 응당 모두가 자기들을 귀여워 죽겠는 표정으로 볼이라도 살짝 꼬집어줘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애들이 별로 안 귀엽고(이구아나가 눈 꿈뻑거리는 게 차라리 더 귀엽달까요). 꽃다발을 받아들면, 냄새를 흠뻑 들이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아, 너무너무 행복해! 하는 표정으로 (자체적으로 슬로우모션을 작동해서)왼쪽 발을 뒤로 들어 살짝 구부려주면서 눈을 반짝여야 하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는 꽃다발이 안 예쁘고(일반적인 미감과는 좀 괴리되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꽃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꽃다발이야말로, 식물의 존재목적을 인간으로 고정하는 일이니까요. 흐음.

식물을,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란 것이 정녕! 그것의 뿌리를 잘라서 인간이 보기에 좋도록 꽃잎을 원래 있지도 않은 색으로 염색하고(아니, 꽃색깔이 무슨 배숙희라빈스도 아니고, 원하는 색대로 다 있어야 하는 거냐고요-ㅁ-!), 인위적으로 배합하여 포장하고, 얼마 후에 말라 버리게 하는 형태로밖에 가능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環(두를 환!)境(지경 경!). 그야말로 인간을 가운데에 놓고 다른 생명체들과 대지와 산과 풀은 인간을 ‘둘러싼’ 나머지로 파악하는, 다시 말해, 지구는 날 중심으로 돌아가!的 마인드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길을 지나가다가 예쁜 꽃이 피어 있으면 그것을 꺾고야 마는, 그래서 결국은 갖고야 마는 것이 그 꽃을 사랑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유욕이 사랑의 탈을 쓰고 표출되는 거라면 몰라도.

아, 그래도 졸업식과 입학식에는 모름지기 꽃다발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졸업식 때 늘어선 꽃다발들을 혹시 보셨다면, 식물도 지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포장지로,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낸 그 꽃다발들은 대목을 노린 꽃집 주인 여러분들의 야심으로 인해 애정없이 속성으로 만들어져 더욱 피곤해 보입니다. 흡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온 아저씨가 넥타이를 손으로 끄르며 소파에 주저앉는 모습을 하고 있달까요. 이 땅의 일만 이천 꽃집의 아가씨들께는 삼가 외람된 말씀이오나, 도당체 언제부터 꽃이 인간의 이벤트를 위해 쓰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저는 꽃다발이 싫습니다. 행사 때마다 기어코 동원대는 그 ‘꽃다발’들이요. 아, 그렇다고 해서 뿌리를 살려 놓는 화분은 괜찮은가, 하면 또 그게 그렇지만은……(이러다가 조경 및 화훼 협회분들께 혼나는 거 아닐까 모르겠군요-_-;;).

회사에는 스무 개가 훌쩍 넘는 화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화분에 물을 주고, 분무질을 합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해주지 않아 동사시키기도 하고, 물을 너무 많이 혹은 적게 줘서 죽이기도 하고, 누렇게 뜬 잎이 도무지 새파래지지 않는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하기도 합니다. 一대多의 관계이다 보니, 하나하나에 충분히 신경을 쓸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저는 새끼 손가락이 제일 아픕니다. 잘생긴 애(고무나무가 좀 잘생겼거든요)한테 특별히 마음(분무기!)이 가는 것도 막을 수 없다구요, 흑. 금방 말라 버리고, 그래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고, 또 겹겹이 포장지도 엄청 많이 드는 꽃다발보다는 훨씬 나은 형태로 둔갑하긴 했지만 화분도 어쨌거나 전자파 방지용․공기정화용․관상용 등등, 식물을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만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그들을 계속 보살피지 않으면 죽어 버리는 수동적인 생명체로 만들어 버렸지요.

어제는 길을 가다가 하수구 비슷한(비오면 물 빠지는 데 있잖아요, 왜) 곳에서 식물이 꽤 우람하게 자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벽틈에서 자라기도 하고, 깨진 보도블럭 사이에서 싹을 틔우기도 하는 그 식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강한 생명들입니다. 흙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아무도 보살피지 않아도 물과 바람과 태양이 있는 곳에서라면 쑥쑥 잘 자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조그만 단지에 담아 놓고 물과 바람과 태양에서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바람에 식물은 사람이 물을 주고 영양제를 주고 잎을 닦아줘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거죠.

저는 이것이 이십대 청년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침대에만 묶어 놓고, 자기 발로 걷지 못하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고 생각합니다. 심한 비유라고 뭐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서도-_- 만약 식물에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식물성植物性을 박탈당했고, 인간은 그것을 화분의 형태로 박제해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꽃과 나무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느껴지시나요? 저 역시 그 박제행위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 박제를 멈출 수 없다면, 우리 한번쯤 세상 각각의 존재들에게 제대로 된 관심이라도 가져 볼 일입니다. 무얼 원하는지,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혹은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런 의미에서 저는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책들 말고, 꽃과 나무를 아름답게 키울 수 있는 실용서적을 읽는 것이 적어도, “꽃을 사랑한다”는 것에 좀더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럼 이만 저는 화분에 물 주러 가야겠어요.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단행본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http://www.greenbee.co.kr/blog/)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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