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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 신념 앞에서의 머뭇거림


신념 앞에서의 머뭇거림

임유진


저는 현재 고기를 먹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 블로그에도 몇 차례 포스팅된 적 있던 비육식,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또 꺼내려는 건 아닙니다.) 2003년 쯤이던가, 대학 때 육식 관련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육식’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고, 심하게 불편한 일도 없었습니다. 굳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을 꼽자면, 어디 몸이 안 좋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고기를 안 먹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가족들 잔소리! 되겠습니다.^^;; 첫문장을 ‘현재’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시작한 것도 저희 오빠가 언제라도 제 입에 고기를 넣을 것만 같아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한테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그 장면 있지 않습니까, 왜!!ㄱ-)

*

비육식을 한 지 6,7년 쯤 되는 것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저는 주변에 저를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름 편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그런 생활이 몸에 붙어 꽤 자연스럽게 되었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저의 이런 행동들을 돌이켜 볼 때 그것들이 정말 무얼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때때로 저를 덮쳐옵니다. 뭐랄까, 내가 하는 행동이, 내가 행위로써 지키고자 하는 나의 어떤 믿음이, 그 내용과 알맹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고기를 빼달라고 주문했는데 베이컨은 사뿐히 얹어주며 고기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황당함을 넘어 제가 잠시나마 느꼈을 경멸(부..부끄럽습니다ㅜㅜ), 그리고 육류를 빼달라고 해도 ‘가공품’인 햄류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문득 저는 저의 소위 신념이란 것 앞에서 머뭇거렸던 것 같습니다. 고기를 안 먹는 주변 친구들이 한두 명 생겼다는 사실에 자위하며 마치 그것이 대단한 뭐라도 되는 양 굴었을지도 모를 저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는 또한 그 소위 신념이란 것 앞에서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고기를 빼달라고 했는데 그 주문을 따르지 않았다고 음식을 돌려보내고 새로 해 받을 때, 전에 만들었던 그 음식은 어디로 갈까……. 내가 고기 안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많은 음식 쓰레기를 만들며 사는 걸까. 그리고 내가 뭐라고 저 점원들을 이토록 쩔쩔매게 만들까…. 그리하여 비육식은 때때로 저에게 굉장한 모순으로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제가 비육식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머뭇거림의 순간들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뭔가 제가 확실히 옳다고 믿으면서 따라왔던 제 의식과 행동들을 흔드는 사건들과 꾸준히 충돌해 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순간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진실보다는, 말로 뱉어 놓은 제 신념이라는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에 맞게 행동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늘 개운하지 않은 마음, 어쩌면 죄책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음, 뭐랄까, 지금 명료하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이라크 전쟁이나 팔레스타인 침공반대 배지들을 가방에 붙이고 다니던 대학시절, 영어로 쓰여 있던 제 배지들을 보신 동네 어른들이 그게 뭐라고 하는 거냐고, 뭐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거냐고 물었을 때 뜨끔했던 기억과 약간은 연동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가장 막역한 가족의 이해도 구하지 못하고 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무슨 신념이고 실천이고 혁명인가 하는…. 일상에서 작동하지 못하는 나의 어떤 믿음에 따른 실천 혹은 행위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건가 하는…. 

이제 지금보다 조금은 더 어리숙했을 대학시절을 지나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변한 걸까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일인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만큼 분명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요. 어렸을 때는 심지어 다른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에 대해서 ‘다르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으니까요. 하하;; 아무튼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생각, 사람들, 그 모든 경우에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다 뭔 소용이냐, 뭐 이런 마음은 아닙니다. 혹여 ‘신념’에 따라 자신의 삶과 존재에 충실하게 살고 계신 분들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았나 걱정이...-_-;;)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익숙하고 편하게 살아왔던 지난 삶과 단절하고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 때문에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신념, 뭐 이런 걸 떠나 ‘다른’ 행동이 일으키는 긍정성을 봅니다.) 고병권 선생님 말마따나 그것이 바로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고, 정말로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겠지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아, 이 사람은 우유를 안 먹지’, ‘아, 이 아이는 이걸 못 견디지’, ‘아, 저 사람은 저걸 싫어하지’ 하면서 그렇게 1만 2천 모두에게 당연한 일을 한순간에, 꼭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익숙한 일을 낯설게 만드는 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은 ‘신념’이라 이름붙여진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의 관계 속에서 그야말로 믿음[信]과 마음[念] 혹은 애정으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이 좀 이상해지기는 했는데 애초에 우리 자신이 따르고자 하는 ‘신념’(그런 게 있다면)은, 신념을 위한 신념, 행위를 위한 신념이 아니라 정말로 그 신념과 실천을 통해서 좀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적극행동이어야 할 것입니다.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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