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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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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사서 서평]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처음으로 읽었던 프리모 레비의 책은 『주기율표』(1978)다. 그가 글을 잘 쓰기도 하지만 과학자이기에 더 잘 읽힌 책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하면서 시간 순이 아닌 원소 주기율에 따라 글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이 에피소드에 왜 이 원소를 소제목으로 달았을까를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 때는 작가의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아우슈비츠라는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무게감을 갖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냥 읽었다. 다시 프리모 레비의 책을 본 것은 작년이다. 그의 마지막 책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가 오늘 이야기할 책이다.

이 책은 서문과 결론 외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 시간에 따른 적응과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동일하지 않은 권력의 차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의 괴로움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인간성을 파괴해가는 나치의 시스템에 대해 증언하고, 전쟁 이후 전쟁을 대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증언의 불완전성을 어쨌든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 증언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집요하게 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해 나간다. 구조된 자들은 ‘나치 수용소의 체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일무이한’ 것이라 증언하는 하는 것에 두려움(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과연 믿어줄까, 이해해 줄까하는 두려움)을 느끼고, 더 나은 사람은 죽고 더 못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들을 미화하거나 과도하게 일반화 하지도 않으면서 서술하고 있으며, 또한 살아남은 후 수없이 들었을 질문인, 감금된 사람이라면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저항, 탈옥, 자살 등)들을 왜 하지 않았나에 답하고 있다. 구조된 자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한 서술은 시대를 지우고 읽는다면 요즘 일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
크라코비아의 시계상이자 신실한 유대인이었던 하임은 죽었다. 그는 외국인인 나에게 언어의 어려움에도 나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사악함으로 가득 찬 첫 며칠의 고비에서 수용소의 기본적인 생존 법칙들을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과묵한 헝가리 농부 사보도 죽었다. 키가 거의 2미터여서 누구보다도 배가 고팠지만, 기력이 있는 한 더 쇠약한 동료들이 밀고 당기는 것을 도와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
반복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편한 개념인데,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을 읽고 여러 해가 지난 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차츰차츰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p97-99)

8장 <독일인들의 편지>는 자신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1947)를 읽고 독일 각지에서 보내온 독일인의 편지들을 소개한 장인데, 이 장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명백하게 일어났던 끔찍한 범죄를 개인과 사회가 재구성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사죄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사죄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부터 변명하는 사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함부르크의 T.H. 박사가 취한 정당화와 똑같은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쨌든 당시의 그 어떤 증인도 히틀러의 실로 악마적인 설득 능력, 정치 교섭에서 그를 빛내주었던 그 능력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정당화는 죄를 히틀러 한사람에게 국한시키려고 애쓰는, 그의 공범이자 거짓으로 뉘우치는 노인들로부터가 아니라,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 전체를 무죄라고 당연히 변호하려 애쓰는 젊은이들로부터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p233)

이 장을 읽으면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입장과 행태가 떠올랐고, 마찬가지로 별반 다르지 않게 베트남 전쟁을 대하는 우리가 떠올랐다(‘우리’는 명확하게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 전쟁에 참가하게 했던 사람, 전쟁의 참가로 이익을 본 사람,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모두이다).

프리모 레비는 단지 자신이 겪은 고통과 비극을 알리기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증언의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나는 책은 그가 쓴 첫 번째 책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작품해설(부록3)에서 서경식 선생이 표현한 것처럼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40여 년에 걸친 그의 사상적 고투’가 담겨있다. 그가 젊은 세대가 역사를 잊는 것을 우려하며,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비극들을 막아보려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여기에 쏟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이 책을 쓰고 나서 일년 후 그의 자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유대인이 전쟁과 인간 말살의 현장에서 겪은 집단의 기억을 받아들인 방법은 프리모 레비가 평생을 바쳐 해온 작업들에 완전히 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수용소의 기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동안 여전히 팔레스타인에서 진행중이다.

그가 우려하는 위기는 가까이 온 듯하다. 아니 이미 왔다. 역사를 통해 배우려 하지 않고,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려는 사람이 사방천지에 깔려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교육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고민하게 된다. 불과 일 년 전에 일어난 사고의 진실규명을 바라는 유가족들에게도 이제 그만하라고 피로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그래서 인간다움을 회의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인간으로 살고 죽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희망이 없다고 체념하고 정신을 놓아버리는게 더 나을 것 같은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1. 이 서평을 읽고, 그의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저작을 시간 순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어로는 7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2. 여기서 인용한 책의 내용 중 ‘무슬림들’이라는 단어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설명 :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프리모 레비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수용소의 고참들’이 ‘힘없고 무능력하고 선발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한 불운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로 ‘무슬림’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주를 달아 놓았다. 당시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의 관계를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프리모 레비가 실제 무슬림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부족한 관계로 개인적인 판단은 보류하였다. 부족한 정보를 정보를 채워주실 분은 언제든지 댓글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은이) | 이소영 (옮긴이) | 돌베개 | 2014-05-12 | 원제 I Sommersi e i Salvati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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