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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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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사서 서평] 감각의 미로

감각의 미로
김하운


나에게 냄새가 거부할 수 없이 강한 기억의 촉발제라면, 시간은 기억과 상관없이 떠도는 개념 같은 것이고, 장소는 하나씩 제 발로 내 꿈에 찾아와 기억을 떠올리라고 요구하는 성질 센 사람 같은 것이다. 사람마다 기억과 같는 연결고리가 다르겠지만, 이 책 혹은 타르 벤 젤룬 혹은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 가리브에게는 성격을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며 사연을 만드는 주체가 장소, 그러니까 도시 나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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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책의 한 축은 장소가 주인공이다. 나폴리는 그 자체 속에 무질서와 질서가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온갖 사연과 충돌과 삶과 죽음이 들어있다. 나폴리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비유를 들어야 그 성격이 드러나는 상대방과 같다. 등장인물들의 삶은 그 성격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다. 그 도시를 그렇게 만들고 그 도시가 그렇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의 일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뿌리인 또다른 도시인 모로코의 탕헤르와 이어져 있다. 왜 이들이 탕헤르가 아닌 나폴리에 모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살풋 엿보일 만큼만 설명한다. 그 가려진 이야기는 우리가 궁금해하고 알아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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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폴리를 버리고, 그 도시를 잊고, 내 인생에서 그 도시를 지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아니다. 나폴리는 결코 잊혀지는 도시가 아니다. 나풀리는 정신착란과 강박관념이 될 정도로 쫓아다니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도시다. 나폴리는 마음 속 깊이 감동시켜,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방비 상태가 되게 만들어버린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어째서 나폴리는 그곳을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일까? 탕헤르 역시 그런 도시다. 사람들은 탕헤르를 떠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사히 벗어나지 못한다. 수많은 신비에 싸인 도시들이 있는데, 그 도시들은 마침내 신이 없는 신화적 도시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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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축에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시인과 여인의 이야기. 더욱 정확하게는 아랍 시인과 창녀의 사랑이야기다. 아랍 시인과 아랍 창녀와 아랍 사랑이야기를 백 번쯤 접하면 가닥이 잡히는 어떤 성격이 있는데,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굳이 표현하자면, 자기 방식대로(하지만 너무도 우주적으로 보이는) 사랑을 지키고 상대를 치유하려는 완고한 시인과 우주의 방식대로(하지만 너무도 세속적으로 보이는) 사랑으로 삶을 삶답게 돌리려는 여인이 있고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비껴가는 것이다. 비껴가는 언어들. 그 책임이 뚜렷하게 보이는 쪽의 반대에 우리의 경험과 정서가 공감하는 것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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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얘기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해 얘기를 할 때면 저항에서 시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주 나왔다. 총알 대신 잉크촉을 들었다는 시인들은, 점령은 더욱더 견고해지지만 더 이상 인티파다는 없을 것 같은 시기에조차 총알과 잉크에 대한 비유를 버리지 않았었다. 시란, 어떤 이에게는 대중들을 일으켜세울 힘을 가질 때서야 총알 대신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아랍에서 미치광이와 예언자 사이에 있는 시인의 지위를 이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고, 어떤 이에게는 문화행사에 있어줘야 하는 필수 항목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 시가 말하는 모든 현실을 그저 언어유희로 바꿨을 뿐인 어설픈 사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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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시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삶은 커다란 저항이고, 매 순간 그것을 마주하는 우리들이 어떤 태도로 얼만큼 나아갈 것이며 그것을 후에 어떻게 기록하거나 혹은 기록하지 않느냐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얽혀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결정지을테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을 옭아매었던 도시 나폴리는 그들로 인해 한층 더 견고하게 성격을 유지하게 되었다. 개인의 아픔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가 그만큼인 걸까. 아름다운 언어에 감싸여 있어서 그런지, 무책임하고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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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한 축에는 에르네스트의 스케치가 있다. 그 스케치는 그저 삽화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이다. 시인에게 변명거리를 주는 또다른 완고함 혹은 유희로 보이지만,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쪽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게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노력과 그리움이 온전히 자신일 때 보이는 것과 상대 혹은 세상과 마주했을 때 보이는 자태는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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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벤 젤룬 (지은이) | 이원희 (옮긴이) | 프레스21 | 2000-07-25 | 원제 Labyrinthe des sentiments


* 평화바닥 회원인 김하운님은 평화도서관 나무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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