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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 도로록 도록 타닥 타다닥 ― 《나비, 사바나로 날다》를 읽고


도로록 도록 타닥 타다닥

― 《나비, 사바나로 날다》를 읽고  
  

  
예쁜 그림의 표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펼치는 것은 많이 망설여졌다. 나는 세세하게 묘사하고 흐름을 알기 쉬운 소설에 익숙한 편이라 뭔가 짧고 간결한, 그러면서도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시는 어렵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뭔가 읽고 나서도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은 나에게 시를 접근불가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하물며 시조 소설이라니...

미리 고백하건데 솔직히 이 책의 작가이신 강영 선생님이 내게 직접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읽지 않았을 것이다.(선생님 죄송해요~) 받자마자 읽어야지 했다가, 그 다음에는 요 책만 읽고 나서 바로 읽어야지 했다가, 그러다 또 미루면서 계속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혀있는 선생님의 책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1월에 읽는 마지막 책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의 형식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자신 없는 생각을 했지만, 어느 순간 아 이 구절은 정말 좋구나 하며 곱게 책 한쪽 귀퉁이를 접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도로록 도록 타닥 타다닥’ 의도하지 않았건만 리듬을 타며 읽게 되어 시조의 운율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읽히도록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구나 하며 감탄했다. 겁냈던 것이 미안하게도 괜찮은 책이야!

《나비, 사바나로 날다》는 대추리의 한 집에 살고 있는 3대의 이야기다. 그들이 세상과 만나는 이야기가 딸 여정이의 말로, 딸과 엄마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여정이의 할아버지가 평생을 일구신 논의 한가운데로 미군기지를 위한 하수구 공사가 진행되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나중에 알고 보니 군기지 확장 이전을 반대하는 삼보일배를 가신 거였지만), 어머니는 전에 잠시 돌보았던 ‘사마르’라는 아이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라크로 떠났다. 이 외에도 학교의 폭력문제나 사회 보장 제도의 허점이라든가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소비에 갇혀있는 생활 방식에 대한 문제까지 책은 쉽게 넘길 수 없는 주제를 여정이의 말로 담담하게 담고 있다.

결국 삶의 터전에서 나와야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혼자 대추리의 집을 지키며 고립되어 있는 아버지, 이라크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린 함다냐 마을에 있었던 어머니의 죽음. 처음에는 부담이었던 ‘시조’라는 형식이 지금에 와서는 이 책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읽으면서 울컥하게 되는 현실이 딸이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가 딸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적절히 운율을 살려서 표현되지 않았다면, 사실을 전하면서도 서로에게 애정을 담아 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너무나 가혹한 현실에, 어찌됐든 그래도 소설인데 현실을 조금 비껴가며 나비의 밝은 노란색 같은 희망 섞인 결말을 하나쯤 풀어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화도 났었다. 하지만 내용을 곱씹을수록 내가 어디에 화를 내는 건지 분명해졌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그런 것을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얻으려 하면 안 된다고 질책하는 것 같다. 인터넷 기사를 보며 한숨만 푹푹 쉴 게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야, 그래야 네가 읽고 싶었던 소설의 결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대추리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여전히도 어지러운 이라크의 상황을 고통에 무뎌진 시선으로 바라보기만한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이 따라왔다. 당장에 여정이의 엄마처럼 이라크로 갈 수는 없지만, 아빠처럼 땅을 지킬 수는 없지만 나도 뭔가를 할 수는 있겠지. 미미하게라도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하고 살아야겠다.

아래는 내가 곱게 접어놨던 페이지 중에서 하나.

엄마가 어린 날,
봄이면 꼭꼭 제비가 와서 외갓집 추녀 아래에다 가정을 꾸렸단다.
엄마의 꿈은 그 제비 가족이 밑그림이 된 거 같아, 이제 보니.
제비는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 그 어떤 의심이나 변덕이 없었구나.
제비처럼 단지 자신의 가정만을 위해 사는 것도 한편으론 행복해.
새끼가 놀고 있는 내 가정을 보는 일은 정말로 천국이었구나.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의심을 품고 말았구나.
나는 제비인가 사람인가, 얼마나 놀랐던지.
엄마는 제비처럼만 살 수는 없었단다, 제비가 아니니까.



* 평화바닥 회원인 햄님은 <평화바닥> 사무국, <평화도서관 '나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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