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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 이게 다 주식때문? 우리집에 '볕뜰날'은 없다!


이게 다 주식때문? 우리집에 '볕뜰날'은 없다!

― 삼십 년째 주식투자 본전생각 중인 아빠와 사금융을 귀여운 무과장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엄마
  
임유진


  

엄마는 아직도, 고등학교 때 잠깐 담임이었던 여선생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저주에 가까운 욕을 하신다. 그보다 더 열심히 교회를 다닐 수 없을 정도의(?) 교인이면서, 누군가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 학비지원을 받았다. 누구라도 다 알게끔 돈 없는 애들을 전교방송으로 불러 지원서를 받아가도록 했다. 고2때던가, 원래 담임이셨던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두시면서 몇 개월 동안 우리 반을 맡기 위해 어디선가  정치 선생이 왔다. 담임이 되자마자 아이들을 하나씩 불렀다. 새로 온 선생과 상담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책상에 엎드려 몇시간이고 울었다. 어떤 애는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내내 우느라 책상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내 차례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그 선생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돈 없어서 학비지원받는 주제에 옷은 잘도 갈아입네?”

그때나 지금이나 옷이 많았던 나. 겨울에 교복 위에 입던 외투가 자주 바뀌는 걸 눈여겨 본 그 여선생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학비지원을 받는 것과 갈아입을 옷이 여러 개인 것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학비지원과 착용복장과의 상관관계를 굳이 밝혀 준 것 외에도 그 선생은 '모멸감'이라는 단어를 책으로만 배우지 않을 수 있도록, 한국어의 속살을 몸으로 직접 익히도록 상처대는 말들을 쏟아내며 모멸감을 내 귀와 몸에 내다꽂았다. 왜 나의 친구가 책상에 엎어져 일어나지 않는지 참으로 잘 알겠더라만, 나도 같이 엎어져 울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저렇게 하나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 말을 전했다. 다혈질 엄마의 입에서는 더블시옷의 욕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그 일로 속상해서 울었던 것은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였다. 나하고 있을 때는 부러 힘주어 억센 아줌마마냥 소리를 질렀지만, 몇 년 후에도 그 얘기만 나오면 울먹울먹하는 엄마를 보건대 그때 아마 엄청 속상해서 나 없는 곳에서는 많이도 울었나 보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 여자의 전화번호를 당장 알아오라는 엄마의 지독한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그녀를 내 안에서 우스개로 만드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패션센스가 좀 난감했다, 그 여자. 그걸로 그냥 놀려대고 말았다.) 어떤 교육철학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여자를 보면서 '저 여자는 알이에스피이씨티라는 중등 단어를 과연 아는 사람인가' 혼자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자기의 아이는 존중하고 남의 아이는 존중하지 않는 그 교육관은 도대체 뭐람) 아이들과 모여서 욕을 해보기도 했다. (주로 성대모사를 하면서 그 여자를 희화화하는 게 다였지만.)

가난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한 그 여자, 뭐 꼭 그 여자 핑계를 댈 건 아니지만 갑자기 닥쳐온 (더욱 심해진) 가난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가난에 대한 태도를 정하지 못한 나에게, 전교방송으로 지원받는 아이들을 호명하는 학교의 무신경함은 꽤 상처로 남았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내가 모르는 잘못이 혹시 있었던가?) 방송이 나올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기를 바랐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는 왜 나를 이 얼마 되지도 않는 학비지원을 받게 할 정도로 망하고 만 건지(IMF, 너야?) 원망스럽고 밉고 아무튼 그랬다. 부자이길 소망한 적은 없지만, 시혜받는다는 그 느낌만큼은 다시는 느끼지 않기를 소망했다. 나이가 좀더 들어 어느 주간지에선가 학비랑 급식비를 지원받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존심을 너무 상하게 해 그냥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학교 다니던 시절을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의식하지 않고 있던 그 감정의 덩어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이것저것을 하던 아빠는 주식을 사고 팔다가 결국 자신의 불행과 가난까지 팔았다. 선생이 바뀔 때마다 그 선생을 찾아가 우리의 형편이 얼마나 안 좋은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아빠가 학교를 다녀간 날은 하루종일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끔찍했다. 처참하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우리 애가 집안형편이 안 좋은데도 이렇게나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아빠는 주지시키고 싶어했고 그럴수록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게 그렇게나 싫어졌다.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 특유의 무신경한 잔인함으로 타인의 상처를 쉽게 건드리는 주변인들 속에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있어야 했던, 그러니까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자본주의 금융화를 가속시킨 추동력은 증권화된 새로운 부채 상품들의 대량 출시와 거래였다. 그런데 이러한 증권화된 부채 상품들은 난해한 수학 공식들과 고도의 계산 능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비한 수학 공식들과 계산에 능통한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자루에 쓸어 담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맥낼리, 『글로벌 슬럼프』, 166쪽
  


글쎄, 개미투자자는 안 된다니까 아빠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이를테면 여자애가 남탕에 가거나 남자애가 여탕에 와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어린시절부터 (그렇다고 내가 남탕에 갔다는 건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증권 뭐시기에 다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를 따라 그 뉴스에 보이는 숫자가 가득한 전광판이 있는 그런 곳에 다녔다. 몇년 전부터 아빠는 그 숫자들을 집 컴퓨터로 가지고 왔지만, 아무튼 지금도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가 없어졌다, 하면 거기에 가있는 거다.

간만에 전화를 해서 아빠의 목소리가 한없이 슬프게 들리는 걸 느낄 때, 무슨 이야기에도 기운차게 대꾸해 주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 그 많던 잔소리가 사라졌을 때, 이제는 '이게 다 주식 때문'인 걸 안다. 얼마 전에도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어서 아빠 주식 때문에 그래?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랬잖아 글쎄 개미투자자는 안 된다니까 하며 주식포기에의 권유를 물론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의무감에, 혹은 습관처럼 했더랬다. 그러나 아빠는 삼천만 원 손해를 봤는데 이거 모았다가 늬 오빠 가게라도 해주려고 그런 건데 하며 그래도 본전만큼은 돌려 놔야지 않겠냐는 말로 주식에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셨다. 아니 그만한 돈은 어디서 났대라는 생각도 들었다가, 그래 많이 손해보긴 했네 어느 정도는 돌려놓긴 놓아야겠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이러다 아빠 피말라 죽지(주식 손해가 클 적에 아빠는 밥도 안 드시고 술만 드신다) 그냥 그 몇천만 원 내가 성실히 돈 모으면 되는데 그냥 없다 생각하지 하기도 하다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끈풀린' 모습을 보면 돈이 무섭긴 무섭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빠생각을 끝낸다.

아빠의 딸은 그렇게 금융자본...이라고는 해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 그 욕망의 흐름에서 빠져 나오는 게 살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지금 기업가들이 도박판에서 잃은 돈이 아빠 같은 개미투자자(와 나처럼 충격을 같이하는 일개 소시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걸 알겠는데 아빠도 양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모르지는 않을 텐데 삼십 년째 저리도 꾸준히 자본증식에의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서글퍼진다. ‘자본’한테 진 것 같아서 (아, 이미 진 게임이던가) 분하기도 하다. 홈패인 공간에서 탈주하니 어쩌니를 읽고 이야기하던 내 눈과 입이 부끄러워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증권 뭐시기 프로그램을 어설프게 마우스로 딸깍딸깍 클릭을 하면서 텔레비전이라고는 매 증권채널만 보는 아빠가 안쓰럽다가 결국 화가 나기까지 한다. 저것만 포기하면 지금 딸과 한마디 말이라도 더 할 텐데, 저기에 마음 쓰는 것만 그만두어도 오빠한테 내는 짜증이 반은 줄어들 텐데, 주식 관두고 오빠랑 내가 조금이나마 벌어오는 걸로 가계를 재구성하면 매일 스트레이트로 소주 한 병씩 비우는 아빠의 밤도 달라질 텐데, 그러나 나의 말로 아빠의 삼십 년된 마음과 행위의 홈이 달라질 리는 없으므로 그냥 나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어떻게 해도 돈이 있을 수 없는 아빠가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서 무력감 내지는 허무함 내지는 처참함을 느끼는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교무실을 다녀가던 아빠의 뒷모습을 교실 창문으로 바라보던 그때와 여전한 것 같다. 너무 싫은데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해도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 약한 몸과 없는 살림으로 뭘 해보려 해도 할 수 없어 답답하니 그저 하던 대로 주식이나 해야지 어쩌겠느냐,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 말하는 아빠를 보면서 저 추악한 자본이, 혹 아빠가 돈을 벌게 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또 누군가는 아빠처럼 소주를 스트레이트로 원샷하며 피눈물을 흘리게 될 그 주식이라는 판이 아빠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 슬펐다. 내가 아는 형용사가 슬프다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슬프다는 말밖에 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얼레, 엄마는 사금융을 썼네

어린시절의 가난함과 자식들을 살뜰하게 잘 보살펴 주지 못한 것―내가 4살, 아니 어쩌면 더 어렸을 때부터 새우깡을 "새우(DHA)가 들었으니 좋은 것 아니냐"면서 박스로 사다놓고 먹인 사람, 우리 엄마―에 대해 낼모레 서른인 딸에게 평생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 존재 자체를 사과하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미안해할 수 없는데 아무튼 술김에 그러는 건지 이제는 습관이 된 건지 어떤 건지 엄마는 나에게 늘 우리집의 가난을 사과했다. 어렸을 때 집안엔 빨간 딱지도 종종 붙었고, 아빠가 또 누구 보증을 섰네 어쨌네 하는 큰 소리가 났고, 아빠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서 돈을 물어줘야 하네 보험이 어쩌네 하는 복잡한 이야기가 오고갔고, 또 외삼촌한테 손을 벌려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하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 아빠가 자기가 주식으로 해잡수신 것으로도 모자라 친척들에 친구들 돈까지도 다 해잡수셨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그랬다. 엄마가 미안했던 건 이중에 뭐였을까. (사실 내가 제일 싫었던 건 학교가서 친구들한테 빈대 붙으라던 아빠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던 말이었지만.) 집안의 풍파 내지는 가난을 자식에게 미안해하는 것은 사실 익숙한 구도다. 엄마가 못나서 너네한테까지 이렇게 흑흑 뭐 이런. 그러나 엄마는 가난을 사과하되 언제나 끝은 긍정적이었다. 지금은 이래도 엄마가 로또만 되면 너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정말이여 엄마가 정말 로또만 되고 살림만 피면 그동안 못해준 거 다 해줄겨 너는 뭐 젤 먼저 해줄까 말만 해 말만. 그래서 그냥 말만 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엄마에게 신은, 돈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지만 감사하게도 긍정성은 필요 이상으로 주셨다. 할렐루야.

아빠와 엄마는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둘다 가진 자본금이 없기에 한쪽은 주식으로 다른 한쪽은 로또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 마음은 같았다. 어려서 너무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다른 집 일을 해주고 책을 겨우 한번씩 빌려봤다는 아빠, 어떤 날은 책을 빌려준다고 해서 열심히 일을 해주고 몇 시간 걸려서 그 집에 책을 받으러 갔는데 그걸 빌려주지 않았다며 가난 때문에 공부를 맘껏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는 아빠. 어려서 형제들은 많고 외할아버지는 술마시고 노름하고 행패만 부리는데 할머니는 억세게 남의 집 일이라도 해주면서 애들을 뭐라도 먹일 생각은 안 하고 다같이 쫄쫄 굶겼다며, 세상에 몇십 년 전 이야기를 아직도 분노에 차서 할머니에게 쏟아붓는 엄마. 내가 서울에서 자취생활 10년 하면서 학교 다니고 돈 벌고 돈 모으고 그래 보니까, 그렇게 가난한 집에서 자란 부모님이 이 정도라도 사시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딱히 뛰어나지도 않은 딸 자식(*결정적 증거: 장학금을 한 번도 못 타본...쩝;;)을 타지에서 4년제 사립대학 졸업까지 시킨 부모님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맙소사 정말 나의 부모님 세대가 자수성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였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계급이동의 어려움 아니 불가능성을 깨닫는다.

각설하고, 어느날 엄마가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던가 아무튼) 나에게 말을 했다. 너만 알고 있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정말 나만 알고 있으라는 말로 들리진 않았다.) 엄마가 돈을 빌렸는데, 사금융 같은 거야. 어? 체온이 갑자기 낮아지는 느낌. 엄마 미쳤어? (이쯤에서 엄마가 울먹였던가 그냥 콧물이었던가.) 아니 그냥 잠깐 급하게 필요해서. 아니 왜 멀쩡하게 아들딸 냅두고 그런 데 연락을 해? 엄마 정말 왜 그래? (이쯤에서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용처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난 원금 플러스 이자로 엄마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나에게 나만 알고 있으라 말했으나 나는 당연히 오빠에게 말했고 오빠는 당연히 아빠에게 말했고 어찌어찌 급하게 그 돈을 끌어다 끌어다 갚았다(고 들었다). 그로 인해 엄마는 우리에게 미안해할 게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과 말고 유머를 더 사랑하는 나에게는 비극이지만 아무튼 뭐 어딘가에서 나눠 준 전단지를 보고 괜찮은 것 같아서 전화를 걸었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놀랍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랬다. 무과장이 정말로 엄마의 곤란에 마음써줄 것 같았으려나. 엄마, 어쨌거나 웃기긴 웃겼어. 굿잡!  

돈이 사람을 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기 필요와 자아실현을 위해 돈을 굴려야 한다. 돈이 공동체와 인간관계로부터 분리되어 거꾸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데이비드 맥낼리, 『글로벌 슬럼프』, 「옮긴이 해제」, 387쪽


엄마는 몇십 년 동안 힘들게 살아도 펴지지 않는 살림을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신다. 아침부터 밤까지 도무지 쉴틈이 없는데도 그 사이사이에 로또에까지 신경을 쓰시며 최선을 다해 가정경제 부흥을 도모한다. 왜 하루종일 일하고 사치스럽거나 도박에 빠지지 않음에도 돈은 모이지 않고 빚만 느는가에 대해서 사고하거나 의문을 갖기에 엄마는 너무 바쁘다. 어린시절 학교 다닐 적에 그..곳의 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탓에 도시락으로 강냉이죽을 싸간 것이 너무 부끄러워 한숟갈 입에 떠서 넣고 도시락 뚜껑을 닫고 또 한숟갈 입에 넣고 다시 뚜껑을 닫고 그랬다던 엄마, 가난을 개인적으로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모님 탓을 하는 것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는 아마도 당신이 장독대에서 제발 엄마 밥좀 달라고 배고파 울며 보낸 자신의 가난한 어린시절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기에 나에게도 그렇게 나의 가난한 학창시절을 미안해하시는가 보다. 개인적으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엄마는 하나님께 엄청 간절히 기도를 올리거나 끈기있게 로또에 도전!한다. 그러나 사금융의 경험에서도 느끼셨겠지만서도, 자기 개인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거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위기 아니던가.

그러나 또 굳이 '신자유주의'와 '금융위기'라는 말을 책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내게는, '자유'롭게 사금융에서 돈을 빌리고 감당할 수 없게 불어 버린 이자에 화들짝 놀라 꽤 자유롭지 않게 간신히 돈을 갚은 엄마가 곧 신자유주의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경제학과 교수님이시냐고 할 정도로 경제에 빠싹하지만 정작 자신의 경제는 구제하지 못한 아빠가 바로 금융위기다. 글로벌하게, 혹은 로컬하게 매일매일 슬럼프를 실감한다.

  



* 평화바닥 후원회원인 임유진님은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그린비>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에 포스팅된 것입니다. http://greenbee.co.kr/blog/1628?categor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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