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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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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기억하기 도서] 가까스로 인간이고자 하는 12개의 이야기


가까스로 인간이고자 하는 12개의 이야기

-『눈먼 자들의 국가 』
  
백승덕

  
1. 한국의 가부장주의는 가정을 두고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그러나 IMF 사태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가족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이 가족임금을 벌어오면 나머지 식구들이 그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정부는 대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다. 가부장주의 역시 몹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가부장들은 거리에 나앉거나 ‘기러기 아빠’처럼 고립되어버리곤 했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가족은 집(家)으로 묶이지 않은 것이 되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런 걸 '가정의 붕괴'라고 불렀다.

최후의 보루로서의 가정은 무너졌지만 그 뒤에도 가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가 이혼을 해도 각각 따로 자식들과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들의 가족도 화상통화로 매일 연결되어 있었다. 이혼 가정의 경우는 집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식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기도 했다. '부모-자식'의 관계가 '엄마-자식-아빠'로 변하는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 양측 간의 갈등도 적절히 중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 '정상'이라는 통념이 강하게 자리 잡은 사회에서 이처럼 낯선 관계가 자식들에게는 큰 짐이 되기는 쉬웠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 한에서 가족은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선 가족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가능했다. 자식에게 미안해서 돈을 벌고, 자식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심지어 가족을 위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투쟁도 해나갈 수 있었다. 어쨌든 가족이라는 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안부를 묻고 투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라는 더 큰 관계도 중요했다. 사회를 더 낫게 바꿀 수만 있다면 내 가족의 삶 또한 낫게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죽게 되었다면, 더 이상 사회의 변혁을 통해 가족의 삶을 낫게 바꾸려는 기대가 곤란해진다. 사회는 더 이상 변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존재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할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을 이어가고 있을 때 이 나라의 보수언론들은 그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일부러 강조했다. 딸들을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유가족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가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뉴스도 추가로 이어졌다. 김영오라는 사람 옆에 붙은 ‘유민 아빠’라는 수식어 대신에 ‘종북좌파’ 같은 낙인을 붙이려는 전략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가 목숨을 내놓으면서 '국민 모두의 각성'을 요구했던 것은 가까스로 만나고 있었던 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IMF 이후에도 가까스로 이어가던 그의 소중한 가족이 사라져버렸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금속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에게 사회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냐는 것이었다.

2.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서 얼마 전 아내와 다녀왔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자리에 그간 나가질 못했던 터라 미안한 마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내는 여느 때처럼 장모님께 안부 연락을 드리며 어디에 다녀오는 길인지 말씀드렸다. 아내의 말에 장모님이 가볍게 타박하셨다. “무슨 마음인지는 알지만 자꾸 돈 안 되는 데 가서 시간 뺏기는 거 아니냐…” 아내는 염려하시지 말라고 웃으며 답해드렸다. 하지만 장모님이 만약 내게 물으셨다면 마땅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을 듯하다.

사실, 장모님은 혼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오셨다.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느라 악세사리를 떼다 팔거나 식당을 차리는 등 어떻게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만저만 애쓴 게 아니었다. 수입이 적은 달에는 집 대출금을 낼 생각에 막막해서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주위에서 누가 돈을 대신 내줄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는 고립감을 오로지 혼자서 견뎌야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장모님이 우리에게 건넨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집도 구하고 앞으로 아이도 낳아 기르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벌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주위에 신경을 좀 덜 쓸 필요도 있기는 하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영부영했다간 아무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을 거란 공포도 매일 느끼면서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책에 대해 서평을 쓰기로 하고서도 고민이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돈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써도 되는지, 스스로를 타박하며 묻기도 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 어영부영하다간 살 집도 구하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직전에 벌어졌던 '세 모녀 사건'이 보여준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냉혹함 아니었던가. 나는 생존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슬픔을 나누어 짊어지기엔 내가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아보였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을 계속 가져도 되는 것일까? 일부러 눈을 돌리지 않아도 왜 자꾸만 세월호 참사가 눈에 밟히는 것일까? <눈 먼 자들의 국가>에 참여한 12명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3.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맨 먼저 나오는 김애란의 글을 프롤로그 삼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김애란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에서 2012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 가족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 자리에서 사회자가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이창근씨의 아내 이자영씨가 담담하게 답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사회에 호소했지만 고통을 공감 받기 위해선 더욱 노력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스무 명이 넘는 해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이 이어졌지만 그 책임은 오로지 해고자들 각자가 져야만 했을 뿐이었다.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마음껏 해고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책 덕분이었기에, 해고자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해고자들의 가족들은 강요된 죽음 앞에서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사회에 이야기했던 것이다. 제발 죽이지 말라, 함께 살자….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공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기도 했다. 참사 그 자체보다 더욱 끔찍한 사회적 무관심. 누구도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글에서 박민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국민을/구조하지 않은/‘사건’이다.” 사건은 사고와 달리 ‘의도’가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이어진 거짓말이 그 의도를 증명한다. 모두 구하겠다고,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다 바꾸겠다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이처럼 많은 거짓말들이 숨기려고 하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냉혹한 사회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취약계층의 삶을 체계적으로 삭제하는 반反평온의 참극이 되풀이되는 환상적 안전공동체, 특정 집단을 조직적으로 배제하면서 생존한 자들을 중심으로 안전의식이 강요되는 신화적 안보국가.” 전규찬이 ‘영원한 재난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라는 글에서 말하듯 “세월호는 신자유주의의 파국적 예외가 아닌 파멸적 상례에 불과하다.”

이처럼 파국적인 안보국가의 신화 속에서 사회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공감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세월호 참사라는 ‘사건’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눈 먼 자들의 국가>에 참여한 작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말의 무력함과 무의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 누구든 여기에 우리가 공통으로 속한 ‘사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작가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제각기 애쓰고 있다. 이들은 소설가이기도 하고, 문학평론가이기도 하고, 사회학자이기에 적잖이 다른 결을 가진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목표가 있다. “우리 자신의 무능력의 극복은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공적 재현 행위와 그 실행과정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진실’에 다가가는 말을 해보고자 애쓰는 절실함이다.

이런 점에서 김애란의 글은 마지막에 읽어도 좋다. 이 잔혹한 파국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때 그가 가까스로 발견한 점이 시작점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애란은 이자영씨를 만나면서 우리가 고통 받는 당사자들의 내부에 투명하게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순전히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그 고통 앞에서, 그는 일단 그 고통의 ‘바깥’에 서기를 권한다. 어쩌면 위태위태한 ‘바깥’에서 점차 ‘옆’으로 옮겨갈 수 있을 때 우리는 가까스로 숨 쉴만한 삶의 터전을 만들 수가 있지 않을까. 고통을 호소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있는 그곳을 우리는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서야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으로 살아가길 꿈꿔볼 수도 있겠다.


* 이 서평은 2016년 4월 평화도서관 나무의 <세월호 기억하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서평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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