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외교부장관의 ‘중동에 한국의 미래 있다’는 발언에 대해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등을 순방한 후 12월 3일 ‘우리나라가 앞으로 뻗어 나갈 길이 중동에 있다’는 발언을 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송 장관은 “중동 국가들이 우리나가가 특별히 선입관이나 야심 없이 자기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으며,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과 같은 중동 평화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이 올라가고, 나중에 경제도 잘되는 것’, ‘세계의 상당 부분은 아랍세계’, ‘우리나라가 덩치 값을 하면서 질적으로 수준 높은 국가가 되는 길이 중동에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것이 한 국가의 외교장관으로서 중동을 이해하고 국가 차원에서 침략당하는 중동 사람들의 고통에 다가서기 위한 것이라면 이 정도 인식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국익을 위한 ‘서두’일 뿐이라면, 혹는 국익을 위한 군사적 경제적 해외진출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중동 진출이라는 말은 ‘이해와 평화’와는 정반대의 의도가 도사려있는 발언이다. 실제 그의 발언 속에 함께 거론된 레바논 평화유지군의 파병, PKO법 제정 촉구 등을 미루어볼 때 오직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야심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구상은 이미 새로울 것 없는, 국가권력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추진되어온 일일 뿐이다.
송민순 장관은 ‘레바논 남부에 주둔한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에 우리 군대를 보낸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고 했다. 또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신속히 참여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자고 촉구했다. “외국에 군대를 보내는 것을 미국이나 유럽의 제국주의적 활동에 앞장서는 것으로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해 굉장한 저항감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며 “PKO 법을 제정하면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이 아닌 다국적군의 활동에 동참하지 않아도 될 법적 근거가 분명해 진다”며 PKO법의 조속한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PKO법은 국회의 동의 없이도 300명 규모의 병력을 정부가 마음대로 파병하겠다는 법이다. 지난 2005년 9월 국회에 발의한 ‘국군부대의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파견에관한법률안(일명 PKO법)’은 ‘정부가 파견부대 규모 300명 이하에 한하여 국회에 통보한 후 파견할 수 있고, 국회가 5개월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경우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100명 이하의 경우에는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의를 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의 송영선 의원은 심지어 유엔 결의 없는 다국적군 파병의 경우에도 ‘1개 연대(2000명)’를 국회동의 없이 파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대체입법안으로 발의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도대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국회 동의 없이 언제든지 군대를 해외에 파병하자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지적했듯, 이 PKO법안은 ‘군대를 파견하는데 국회의 동의절차조차 무시하겠다는 것이며’(심지어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일 뿐이다),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제 5조와 국회의 해외파병 동의권을 명시한 헌법 60조 2항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짓이다. 이는 한국을 군사주의와 관료적 편의주의로 지배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군대의 해외 파견 상의 편의와 재량은 무한대로 확장해 놓은 반면, 국제사회에 평화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민주적 합의 절차와 평화주의적 선택기준의 정립에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적 통제장치가 미치는 못하는 파병의 편의는 결국 초강대국, 특히 미국의 요구에 의한 우리 군대의 동원의 편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송민순 장관이 이같은 발언은 중동을 이해하기 위해 다가서는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와 지역의 평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만 높일 뿐 진정 군사력 없는 평화는 가로막고 있다. 매번 평화를 고려할 때 무기와 군사력을 중심에 놓고서 거기에 의존하게 만들고 익숙하게 만들어 군사력에 의한 평화만을 인정하는 ‘폭력적 평화’가 될 뿐이다. 설혹 군사 균형에 의한 안정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것은 평화가 아니며, 일시적인 긴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결국 더 크고 강한 군비 확장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어제(12월 7일)부터 5차 한-중동 협력포럼이 서울에서 진행됐다. 지금까지 규모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중동 18개국 60여명(카타르 교육부 장관, 모로코 외교담당 국무장관, 모리타니아 문화공보장관, 오만 국가경제담당 장관, 팔레스타인 경제부 장관 등 각국 장관급 인사들이 다수 포함)이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한단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중동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한-중동 간 교류확대 및 친선 강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반민반관'(半民半官) 형태의 `중동 소사이어티' 창설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한 바다. 아마 아프간 피랍사태의 외교 부족이라는 교훈에서 나온 발상일 것이다. 근데 현재 수준에서 보면 그나마 나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정부의 정책도 교육, 과학, 기술, 문화, 종교 등에서 한국의 수준높은(?)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오만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경제 이익을 누린다는 원대한(?) 구상이 숨어있다. 평화를 위한 기여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고민해주면 좋겠다.
12월 8일
평화바닥 염창근
5차 한-중동 협력포럼에서 축사하는 송민순 외교부장관
(사진은 뉴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