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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를 서구의 관점에서 보지 않기


아이티를 서구의 관점에서 보지 않기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 사람들에 대해 한국에서도 높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그라지지 않고 지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고, 뉴스에서도 연일 보도하는 등 관심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의 관습에 비추어 보면 일시적으로 증폭되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뉴스거리 정도는 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 언론도 한국 사람들도 이 세계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보도와 지원의 손길에 담긴 시선에 편향되고 왜곡된 관점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언론의 보도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보도에는 세계 최빈국에다 문맹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 아이티 정부나 국민이나 무능력하고 부패하다는 시각이 내재해 있습니다. 게다가 유엔과 국제사회가 아이티를 도우려 해도 구호품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 식으로 연일 보도합니다. 한마디로 정말 최악으로 못 살기 때문에 아이티의 국민 수준은 최저이고 국민성은 야만적이라고 전제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심히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세계 주류의 방식으로 계산하는 경제지표에서 가난한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주류의 관점, 특히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만 그렇습니다. 게다가 가난하다고 다 수준 낮고 폭력적이며 야만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 원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구호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이면의 모습 혹은 그 이유를 보아야 합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 즉 생존의 문제가 다급한 사람에게 타국의 군인이나 활동가가 모욕적으로 구호품을 나눠줄 때 과연 어떤 마음이 들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는 헬기로 구호품을 떨어뜨리거나 트럭에서 집어던지는 경우 그 구호품을 받을 사람의 심정은 어떨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호품을 투하하는 자들의 행위에서는 아이티 민중들을 인간으로 보는 시선을 잘 느낄 수 없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더라도, 한국을 포함해 미국 등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 대부분도 이런 생존의 처지에 몰리면 상황이 어찌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폭력 사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사회의 성숙한 관계가 어려움 속에 증명될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껏 집단적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자제하고 배려하는 아이티 민중의 성숙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난한 휴머니즘》이라는 책은 아이티가 어떻게 오랜 세월 외세와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더 깊은 직접민주주의와 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 잘 보여 줍니다. 게다가 세계 주류의 경제 질서와 세계화를 거부하고 어떻게 ‘가난한 휴머니즘’ 경제를 아이티 국민이 선택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군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군대를 해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입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환경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택한 아이티가 그 각고의 노력에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됩니다.

정말 길고 긴 세월, 많은 열강들은 아이티를 식민지로 삼기 위해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고 특히 미국은 자기 입맛에 맞는 아이티를 만들기 위해 군부정권을 지원해 왔습니다. 오랜 세월 아이티 민중들은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비폭력 투쟁으로 독재와 외세를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아이티를 민주와 평화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도전들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생긴 이번 지진은, 외세들에게는 다시 아이티에 개입할 빌미가 생긴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이티 같은 모델이 성공하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겠지요.

‘혼란을 막으려면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말들이 열강들 입을 통해 횡행하고, 구호 활동이나 지원 활동이 아이티 민중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한 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그 속내를 의심스럽게 합니다.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한국에서는 드물게도 존경받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이정우 교수가 〈세계자본주의가 만든 ‘빈곤국 아이티’〉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일면 세계 주류 경제가 아이티를 착취한 것을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도 역시 여전히 아이티 내부의 진지한 노력들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고 ‘빈곤’, ‘문맹’, ‘위험’, ‘불평등’ 등의 시선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티는 분명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는 과거 수백 년 동안 이번 지진보다 훨씬 극심했던 상황을 끊임없이 겪으며 견디고 투쟁하며 이겨냈던 힘을 간직한 곳입니다. 단순히 ‘빈곤’과 ‘문맹’ 따위의 기준으로 아이티를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물질적 도움과 함께 서구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더없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있는 아이티 민중과,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하려는 활동가들에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0년 1월 25일
평화바닥 염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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